날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그건 한나라당이 '부동산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사실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종부세와 재산세의 개념을 혼동한 채로 보유세율이 높아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세 부담이 커지니 보유세율을 낮추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 소속 이종구 의원(사진)이 현 정부의 장관급 이상 39명 중 15명이 2채 이상의 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참여정부의 8·31대책이 웬만한 중산층까지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며 8·31대책에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조선일보> 4일자 기사를 보면 이종구 의원의 활약상이 생생히 드러난다.
… 현 정부의 장관급 이상 39명 중 15명이 2채 이상의 집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대지 등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장관도 12명이나 됐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3일 보도자료를 내고 "장관급 이상의 25명이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거나 거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1가구 2주택, 실수요가 아닌 부동산 보유 등 정부가 내놓은 8·31 부동산종합대책의 '투기' 기준에 따르면 장관들 25명이 투기를 한 것이 된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 이 의원은 "이들 장관들이 모두 부도덕한 투기꾼은 아니겠지만, 정부가 무리한 대책을 내놓아 웬만한 중산층까지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며 "정부가 정책실패의 책임을 투기 세력에 떠넘기다 보니 '내가 하면 투자고 남이 하면 투기'라는 꼴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0월 4일자 「'2주택 장관' 15명」)
걸맞는 세금을 내라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 의원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혼란스러운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이 의원은, 현 정부의 장관급 이상 인사 중 상당수가 2채 이상의 집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전부를 투기꾼으로 매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2주택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들도 투기꾼으로 매도되어서는 안 될 터인데, 8.31 대책은 어지간한 중산층마저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에게 묻고 싶다. 8.31 대책 어디에 2주택 이상 소유자들을 투기꾼으로 분류한다는 말이 있는가? 8.31 대책은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 해당하는 주택과 토지를 소유한 부동산 부자들에게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 규모에 걸맞는 세금을 납부하라고 말할 뿐이다.
현 정부의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도 종부세 과세대상에 해당하면 지금보다 훨씬 증가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당연하거니와, 투기 목적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공동체의 기여에 의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부분에 대해서 세금-보유세 및 양도세 등-를 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참고로 이 의원이 밤잠을 못 이루며 염려하고 있는 중산층(?)의 수는 전체 가구수의 약 2%-종부세 과세대상-에 해당할 따름이다.
또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 의원은 종합소득 3600만원 이하인 60세 이상 노인이 보유한 주택으로 공시가격 15억원 이하에 대해서는 종부세를 전액 감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8.31 대책이 원안대로 시행된다고 가정해도 종부세 과세대상에 해당하는 주택의 거래가격은 적게 잡아도 1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10억원을 상회하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소득이 없을 리도 만무하지만, 만약 종부세를 납부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을 팔고 공기 좋은 곳으로 내려가 여생을 즐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물론 상속이나 증여, 매매 등 소유권 이전이 발생할 때까지 종부세 납부를 유예해주는 것은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노령층이라고 해서 면세나 감세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수혜가 노령층이라고 해서 빗겨가지 않은 것처럼, 공평과세의 원칙에서 노령층도 예외일 수는 없다. 더욱이 종부세는 소득세도 아니고 재산세인 바에야 더 긴 말이 필요 없을 성 싶다.
유감
주지하다시피 정부의 8.31 대책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제개혁 등을 통한 가수요억제-이를 바꾸어 표현하면 '실수요충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미 시장에서도 부동산 가격 안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8.31 대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법화가 필요하다. 그것도 원안을 전혀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핀 것처럼 8.31 대책의 입법화에 조력을 해야할 한나라당이 끊임없이 8.31 대책의 근간을 흔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언제쯤이나 한나라당이 소수의 부동산 부자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될는지 모르겠다. 또 다시 대선에서 패배를 맛보아야 그런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