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문턱을 넘어선 지 벌써 초사흘이다. 세찬 물소리를 내던 계곡도 계절을 닮아 가는지 숨소리를 줄여가고 있다. 어쩌면 저 산들이 욕심을 내며 물기를 다 마신 탓인지도 모른다. 내년 봄 고로쇠나무를 찾아오는 산골 농부를 기쁘게 하려고 미리부터 담아두었으리라.
피아골로 향하는 작은 도로에도 지난밤에 떨어진 알밤을 주워 세는 까마귀 부부가 미처 숨기지 못한 밤송이들이 길가로 굴러 나와 터져 있곤 하는 출근길 아침.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 시간이면 짧은 휴식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내보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저 높은 하늘 속에 묻혀서 가끔 짖어대는 동네의 강아지들과 합창이 되는 시간.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어도 좋고 한잠 자도 좋은 점심 시간의 짧은 휴식이 주는 행복함!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3천 년도 더 사는 것 같이 생각된다"고 말한 에머슨처럼 책의 향기에 취하는 순간.
얼마나 오랜 동안 달려왔던가? 눈 깜짝할 사이에 20여 년이 지나 내 젊음을 먹고 자란 제자들이 큰 키를 자랑하며 달려오는 지금. 이제야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 삶의 들판에서 추수할 시간을 기다리는 농부가 되어 가을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을 하늘과 조용히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가끔 찾아오는 새소리와 잘 어울리는 우리 아이들의 예쁜 웃음소리는 영혼마저 맑게 씻어 준다. 요란한 오후 시간 벨소리도 종소리도 필요 없으니, 창을 열고 아이들을 부를 시간이다.
"얘들아, 다 잘 놀았니? 어서 들어와라. 오후 공부 시작하자."
마치 <내 마음의 풍금>과 같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잘 생기고 젊은 총각 선생님 대신에 엄마 같은 선생님이라서 아이들 입 속에 왕사탕을 넣어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곤 하지만...
알밤처럼 잘 여문 아이들이 되어 세상 속에 나가서도 지금처럼 웃으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짧은 가을 해를 아쉬워하며 나의 가을도 익어가고 있다.
"인생은 짧으니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줄 시간이 별로 없다. 오오! 지체 없이 사랑하고 서둘러 친절하라"던 아미엘의 말처럼 산그늘이 드리워지는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많이 사랑하고 따뜻해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알밤처럼 잘 여문 아이들이 되기를, 코스모스처럼 무리지어 피는 아름다운 어울림으로 서로 기대며 사는 아이들이 되기를, 벼논의 나락처럼 겸손의 미덕으로 아름다운 아이들이 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