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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운현궁.
천희연(千喜然)이 종이뭉치를 올렸다. 대원군이 몇 장을 넘기다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려놓았다.
"뭐 좀 특이한 것은 없었나?"
"전라도에선 감사가 천주쟁이 중 몇을 뇌물을 먹고 살려주었다 하옵니다."
"이조에 통보해 참고하도록 하고."
"곡성 군수가 부임 시에 가마를 타고 들어갔다 하옵니다."
"향소에서 알아서 하도록 놔 두거라."
"함경도에서 일부 유민들이 굶주림에 못 이겨 인육을 먹었단 소문이 흉흉합니다."
"그야 늘 떠도는 이야기고."
"경산 군수가 기생을 기적에서 빼내 한양으로 들어오려 한다 하옵니다."
"실행에 옮기면 그때 조치하도록. 그런 자잘한 것들은 천희연 자네가 알아서 하게. 내가 앉아 일일이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쓰겠는가?"
역증이 나는 듯 대원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송구스럽습니다. 대감."
"다른 건수는 없으렷다?"
"공충도와 전라 쪽에 화적의 창궐이 여전히 지심하다 하옵니다."
"병조와 호조 어느 쪽에도 그 같은 계는 없었다 하였는데?"
"조정의 명이 추상과 같으니 감영에서 거짓 계를 올리는 듯 하옵니다."
"크흐음…."
대원군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일전에 황해 감영에서 올린 계에도 청국인 사체 두 구가 표류해 온 것을, 난파에 의한 익사라 하였으나 금번 알아 온 소식으론 총포에 의한 타살이라 하옵니다. 무사안일에 빠진 지방관의 허위가 이와 같습니다."
"덮어 두어. 청국인이 연해에서 타살되었다면 청국의 아문에서 들고 일어날 일이 아니던가?"
"이상하긴 하옵니다만 한양 기찰포교가 직접 검안하는 것을 보았다는 자가 소식을 올린 것이니 틀림은 없을 것이옵니다."
"아직도 포삼 밀매가 근절되질 않고 있는 모양이지?"
"대대적인 추포가 있어 상당수를 참수하긴 하였사오나… 아직…."
"그래. 어차피 기찰포교가 그 자리에 있었다하니 추후에 자네가 그 소종래를 캐 보게."
"예. 대감"
"그나저나 한성 쪽은 이제 조용해진 듯한데…."
"영상 대감 사저에 김병기와 판삼군부사 김병국이 모인 적이 있사옵니다."
"그야 일가들이니 그럴 수 있겠지."
"하온데 조성하, 조영하가 끼었다는 것이 문제입죠."
"그래? 허허허, 모여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다 하는가?"
대원군은 별스럽게 않게 물으면서도 눈빛이 반짝였다.
"죄만스럽게도 소상한 내용까지는 알지 못 하옵는 바 되겠사옵니다요. 하오나 근간에 안동 김문과 풍양 조문이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는 듯 하옵니다. 도성 내의 일인지라 장순규(張淳奎)가 따로이 말씀을 올릴 것입니다요."
"그래… 주상의 근황은 또 어떠신가? 여전히 중전의 침소에 자주 드시는가?"
"예… 아뢰옵기 황송하옵게도 그러한 줄 압니다. 털끝만치라도 혈연이 있는 민씨들은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보려 하는 판국입니다. 이미 요직을 점한 일파도 꽤 되옵니다만… 자세한 것은…."
"장순규에게 물으란 말이지?"
"예…."
"왠지 내가 호랑이 새끼를 주워다 기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아이… 어쩌면 안동 김문보다도, 풍양 조씨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어."
대원군은 처음에 중전이라는 호칭을 쓰더니 금세 시아버지의 입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장순규가 궁궐 내 동태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습니다요. 민씨 척족의 관직 등용도 정확히 계를 내고 있으니 조만간 뭔 말이 있을 것입니다."
천희연이 군더더기 없이 대원군의 의중에 답했다. 대원군과 파락호시절부터 어울린 천출들이 대원군 집권 후 위세를 얻자 세간에서 그들의 성을 따 천하장안(千河張安)이라 불렸는데, 과연 대원군을 실무에서 보좌하는 최측근다웠다.
"그래 자넨 조선 팔도를 대상으로 한 소식을 모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먼. 보부상들의 수효가 얼마나 되나?"
"예, 한 3만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희연 자네도 늙는구먼. 예전엔 대략이라는 말을 쓸 줄 모르더니…."
"송구스럽습니다요"
"보부상들을 잘 관리하게. 임진, 병자 양란의 공로를 들추지 않더라도 작년 병인의 양요에도 그들이 동원될 수 있었기에 문수산 싸움과 정족산 싸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게야. 앞으로 자잘한 일 말고도 긴히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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