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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0대 여성을 일컬어 '위기의 중년'이라고 한다. 사실 40대는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점철된 삶을 강요받았던 50~60대 어머니 세대도 아니고, '가족보다 자아실현'을 중요시 하는 20~30대도 아닌 중간에 '낀' 세대다. 젊은 것도 아니고 나이 든 것도 아닌, 어중간한 40대. 그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표현할까. 40대 여성은 정말 위기인가. 그 인생의 절반 위에 서 있는 중년 여성 세 명이 모여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어느덧 사십 줄에 들어선 나를 발견하다

김정혜 "장을 봐도 꼭 한 가지는 빼먹고 안경을 벗어 놓고는 어디다 놨는지 생각이 안 나 몇 시간을 동동거리질 않나. 이제 슬슬 건망증의 포로가 되나 봐요."
ⓒ 김혜원
김정혜(이하 정혜, 42): "요즘 날씨 정말 좋죠? 근데 나이가 들긴 들었는지 가을바람이 작년하고 다르게 느껴져요. 약간 을씨년스러운 게, 이럴 땐 진짜 내가 40대 중년 '아줌마'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니까요."

김혜원(이하 혜원, 45): "말도 마요. 저는 40대 접어들고 나서 정말 목소리가 커졌어요. 물리적인 크기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까지요(웃음). 친어머니가 굉장히 조용하고 순종적인 분이셨는데 연세 드시고 나서 어느 날부터 목소리가 커지셨거든요. 아버지에게,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요즘 제가 예전 엄마 모습, 딱 그거라니까요.

다들 안 믿겠지만 저 20, 30대에는 조선시대 여인처럼 살았어요. 정말이에요(웃음). 남편한테 말 한 마디 못하고 옴짝달싹도 못했어요.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였죠. 엄마가 그렇게 하는 걸 봐서 그런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그래도 제 주장을 조금씩 펴나가고 있어요. 40대라는 나이에 얻은 보너스죠."

장미숙(이하 미숙, 41): "나이 먹으니까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아요. 40대가 되니까 건강이 아주 각별해져요. 40대 성인병에 대해 말 많잖아요. 특히 우리 주부들은 유방암이나 자궁암 위험도 크고…. 요즘에는 일부러 틈내서 운동도 해요."

혜원: "전 사십에 자궁근종을 발견했어요. 제 사십대는 그렇게 시작됐죠. 그렇게 사십대가 되고 보니 제약이 참 많더라구요. 삼십대에는 되는데 사십부터는 안 되는 것들…. 주부들이 그나마 쉽게 할 수 있는 모니터 같은 일을 하려고 해도 나이에서 걸리니까 아주 허무하더군요."

정혜: "전 요즘 점점 총기가 떨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TV에 예전에 본 것과 비슷한 장면이 나오면 그게 뭔지 가물가물하면서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장을 봐도 꼭 한 가지는 빼먹고, 안경을 벗어 놓고는 어디다 놨는지 생각이 안 나 몇 시간을 동동거리질 않나. 매일 전화하던 친구 전화번호도 까먹고…. 이제 슬슬 건망증의 포로가 되나 봐요."

우리도 한때는 꿈 많은 여성들이었다

미숙: "세월 가는 게 팍팍 느껴지니까 왜 그렇게 아쉬운 게 많은가 몰라요. 전 가슴이 다 녹아내리는 '불타는 사랑' 한 번 못해 본 거, 그게 그렇게 아쉬워요. 이십대에는 다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잖아요. 근데 막상 결혼했는데 남편이 제 이상형과 너무 거리가 있는 거예요. 한때는 너무 절망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어요. 이제 생각하면 철없는 짓이었지만."

정혜: "맞아요. 사랑에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젠 그런 사랑이 찾아와도 기운 없어서 못할 걸요(웃음). 전 30대 중반에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아직까진 나름대로 알콩달콩 살고 있어요. 전 사랑보다 공부에 대한 미련이 커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을 1년 다니다가 포기했어요. 물론 그땐 '다음에 돈 벌어서 대학 가야지'라고 생각했죠. 근데 돈도 공부도 뜻대로 되지 않았죠. 20대를 돈 번다고 다 보낸 것 같아요."

혜원: "저에게 20대나 30대가 있었나 싶어요.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 시어머니. 그 속에서의 나뿐이었어요. 30대 후반쯤 되니 갑자기 허무해지더군요.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아이들은 학원 갔다가 늦게 오고. 시간은 많은데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때 그 허전함이란…."

늘어진 젖가슴과 불룩한 아랫배는 아줌마의 훈장

김혜원 "30대 후반쯤 되니 갑자기 허무해지더군요.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아이들은 학원 갔다가 늦게 오고. 시간은 많은데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때 그 허전함이란…."
ⓒ 김혜원
정혜: "근데 아줌마니까 편한 것도 있는 것 같은데(웃음). 우리 남편은 어디 갈 때 저를 꼭 데리고 가요. 뭐, 든든하다나. 남자들은 물건을 사고 맘에 안 들어도 그냥 넘어가지만 우리 아줌마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꼭 자기 맘에 드는 걸로 바꾸죠. 식당에 가도 맛있는 반찬 나오면 남편은 더 달라는 소릴 못하지만 전 밥 더 달라, 반찬 더 달라 당당하게 말하거든요. 그럼 남편이 그래요. 아줌마가 되면 원래 그렇게 매사에 당당해지고 얼굴이 두꺼워지냐고…."

미숙: "사람들은 아줌마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아요.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없었다면 한국 가정의 절반은 붕괴되었을 거예요. 친구 중에 남편이 카드 빚 얻어 경마해서 망한 사람이 있어요. 당연히 이혼 소리까지 나왔죠. 근데 아이들 때문에 이혼은 못하고 남편마저 자포자기하는 바람에 빚은 물론이고 생계까지 책임지게 된 거예요. 어쩔 수 없이 건물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더래요.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 옷도 얻어다 입히고 버려진 물건도 주워 쓰고…. 그러면서도 '내가 이렇게 억척 떨지 않으면 내 새끼들이 밥을 굶는다', 그 생각밖에 안 나더래요. 그게 바로 아줌마의 힘이고 엄마의 힘 아니겠어요?"

혜원: "어느 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가 있잖아요. 지저분한 파마에 듬성듬성 난 흰머리, 축 늘어진 젖가슴과 불룩한 아랫배, 주름진 눈가와 굵어진 손마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잖아요. 전 그게 아줌마의 훈장이라고 생각해요.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겠어요? 남편이나 아이들을 우선시하다 보니 자기를 돌볼 겨를이 없는 거지."

현명하면서 섹시한 아내? 그건 남편들의 이기심

미숙: "근데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 현명한 아내인 동시에 매력적인 여자이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요즘 그 연속극 있잖아요. <장밋빛 인생>. 거기서 주인공인 맹순이 보고 그 못된 남편이 힐책하잖아요. '너도 여자냐?' 그러면서. 그거 보는데 어찌나 화가 나든지…."

정혜: "알뜰살뜰한 아내인 동시에 매력적인 여자가 되길 원하는 거, 그건 남자들의 이기심이죠. 결국 남자들은 슈퍼우먼 아내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것도 나이 들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까 아내 모습도 눈에 들어오는 거죠. 사는 데 아등바등했던 20, 30대엔 그런 게 눈에 들어올 새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이제 우리도 다시 여자로 태어나 보자구요."

혜원: "전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드라마 보면서 많이 자극 받아요. 마흔에도 아름다운 그녀들, 마흔에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그녀들을 보면 우리가 40대라는 나이에 지레 주눅 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데 말이죠."

고개 숙인 남편들, 힘들면 손을 내밀어줘요

장미숙 "주말부부인 친구가 그러는데,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이면 가던 남편이 어쩌다 하루 더 집에 있으면 그게 그렇게 갑갑하데요. 이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더군요."
ⓒ 김혜원
정혜: "여자들은 나이 먹으면서 더 활기차지는 것 같은데 남자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전 나이 들고부터 남편이 가엾어 보여요. 특히 뒷모습이 그렇게 신경 쓰여요. 베란다에서 담배 피울 때나 출근할 때 집을 나서는 뒷모습이라든지….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요. '이제 저 남자도 늙었구나, 중년이구나'하는 그런 짠함이랄까."

미숙: "저도 그래요. 요즘 들어 남편에게 너그러워지고 또 용서도 쉬워지더라구요. 의식적으로 부딪히려고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아등바등 싸워 봤자 뭐 할 거며 또 싸워서 이기면 뭐 할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라고 인정한다고 할까. 이게 남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걸까요?"

혜원: "젊었을 때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는데 한 이십 년 살아보니 이젠 기대기 편한 오래된 의자 같다고나 할까요? 낡고 볼품없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편안함을 주는… 때로는 못이 비집고 나와 엉덩이를 긁히기도 하고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 망치질도 해 줘야 하는… 나이 들어서 이 정도만 되도 성공한 부부가 아닐까 해요. 전 이런데 남편은 아직도 제 앞에서 강한 척을 해요. 겉으로는 강한 척해도 남편도 알게 모르게 많이 힘들 텐데…. 힘들다고 손이라도 내밀면 따뜻하게 잡아줄 텐데…. 끝까지 강한 척하는 그 자존심이 야속하고 밉기도 해요."

아줌마들도 때로는 혼자 있고 싶다

미숙: "주말부부인 친구가 그러는데,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이면 가던 남편이 어쩌다 하루 더 집에 있으면 그게 그렇게 갑갑하데요. 친구 말이, 예전엔 남편과 있는 게 '당연히' 즐거웠는데 이젠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더군요."

정혜: "저도 그래요. 옛날에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남편보다 먼저'는 아니었거든요. 요즘엔 내가 하고 싶은 게 우선이에요.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매력도 알게 된 것 같고."

혜원: "다 똑같네요. 요즘 저도 남편이 저녁 먹고 들어온다는 소리가 가장 반가워요(웃음). 여자들은 혼자인 시간이 드물잖아요. 늘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니까. 40대에 들어서니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결혼 전 가졌던 꿈도 되짚어 보고 싶기도 하고. 바라건대 우리 남편들이 저녁도 자주 먹고 들어오고 가끔씩 출장도 가 주면 정말 고맙겠어요~"

정혜: "나도 동감(웃음). 근데 참 이상한 게 남자들은 40대가 되면 더 애틋하게 가정을 찾는 것 같아요. 우리 남편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 낚시 가는 게 취미였거든요. 그것 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했는데 요즘은 가라고 등 떠밀어도 절대 안가요. 함께 갈 거 아니면 절대 안간데요. 친구들 술자리도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이젠 그것도 시들한가 봐요. 남편 친구들도 그렇고."

우린 남다른 40대를 살아가련다~

▲ 우리는 아직 젊다!
ⓒ 김혜원
미숙: "전 나이 들면 남편하고 시골 내려가서 살 거예요. 그러면 부지런히 벌어서 저축도 해야 하는데…. 이젠 가족보단 저를 위해 투자하고 싶어요.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문화생활도 누리고 싶어요.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여행도 하고 못다 한 공부도 더 하고 싶어요."

정혜: "마흔이 됐을 때 이런 계획을 세웠어요. '오십에는 글 쓰는 걸로 좀 더 확고한 자리를 가지자'고. 글 써서 고정적인 수입까지 있다면 더 좋겠지만요. 그래서 일주일에 적어도 책 3권은 읽자고 스스로 약속했는데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죠."

혜원: "우리 세대는 자식에게 의존할 수 없는 노후를 맞게 되겠죠. 전 노년을 위해 건강과 일, 경제력을 갖추고 싶어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계모임도 하고 남편 몰래 자투리 돈을 모아 딴 주머니도 만들고 있죠. 그리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러 다닐 거예요."

정혜: "누구는 40대는 뭔가 시작하기에도, 뭔가를 포기하기에도 참 어중간하다고 하던데 얘기를 하다 보니 40대보다 바쁜 때는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여자들은 40대에 갖게 되는 여유를 잘만 활용하면 더 활기차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혜원: "동감! 다들 '위기의 40대'라고 하는데 사십대인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또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있잖아요. 옛날과 요즘의 40대들이 느끼는 차이가 바로 이거 아닐까요? 예전에는 여자들이 오로지 자식과 남편만 위해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여유로워지는 것에 당황하면서 위기감을 느꼈지만 요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40대에는 여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미숙: "중요한 건 바로 그거 같아요.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간다는 자세. 내게 주어진 여건을 충분히 활용하면 마음의 낭비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예요."

정혜: "우리들의 40대는 '위기의 40대'가 아니라 '바쁜 40대'가 맞는 말이겠네요. 행복이 뭐 별거 있나요. 뭔가를 위해 바쁘게 사는 거, 바로 그게 삶의 행복이죠. 우리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자' 한번 외치죠."

혜원, 정혜, 미숙: "아줌마들의 행복한 40대를 위해서 아자! 아자! 아자!"

▲ 얼마 전 물길이 열린 서울의 청계천 구경에 나섰다. 저 밝은 표정처럼 중년을 헤쳐 나가길.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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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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