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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80주년 기념 축하 공연 장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곡분교장 어린이들 모습. 참 예쁘죠?
개교 80주년 기념 축하 공연 장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곡분교장 어린이들 모습. 참 예쁘죠? ⓒ 장옥순
나를 가르치던 고전 무용 개인지도 선생님이 내 정성이 지극하다고 그의 제자들을 10여 명 데리고 오셔서 특별히 찬조 출연까지 하려고 대기 중이었는데 비로 인해 차비만 드린 채 공연을 하지도 못해 얼마나 속상했던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날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며칠간 몸이 아플 정도로 실망이 컸답니다. 학교 수업을 하고 오후 시간에 200여 명을 지도하고 퇴근 버스를 타고 광주로 오면 밤 8시인데 다시 한 시간씩 부채춤을 배우러 갔고 집에 오면 주부의 역할이 기다리니 밤 11시에 잠드는 일이 거의 한 달간 지속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고전 무용을 배우지 못했으니 가르치지 못한다고 떼를 쓰거나 뒤로 물러설 수도 있었는데 신참 교사라는 이유와 동학년 여선생님이 임신 중이어서 미룰 데도 없어서 작품비를 들여서라도 직접 배워서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그 일을 지금은 즐겁게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학교에 가서도 부채춤 공연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던 힘과 자신감이 그 때 생겼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공짜가 없다는 것을 그 아픈 시간들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부채춤 공연을 못하던 그날 나는 아이들처럼 엉엉 울어버렸고 시름시름 아팠으니 아이만도 못한 약한 선생이었나봅니다.

그 아쉬움을 동문 체육대회 때 아이들의 공연을 보여주는 것으로 갚았지만 지금도 그 기억은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날짜를 뒤로 미루면 미루는 만큼 연습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니 학습에 지장을 주게 되므로 비가 오는 경우에는 강당에서라도 치른다는 각오로 밀어붙인 행사였습니다. 운동회 연습 기간이 길면 다시 교실에서 공부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추스르는데 시간이 걸리고 학습결손까지 생깁니다.

전교생과 유치원생을 합해 17명이 바이올린 공연과 핸드벨 공연을 식후 행사로 따로 준비했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운동회 종목과 함께 연습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운동회 출연 종목 연습으로 인한 학습 결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아침 시간, 중간놀이 시간, 점심 시간, 하교 후 시간까지 이용하며 강행군했지만 즐겁게 참여해 준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챙겨야 하는 보따리들과 악기들을 실으며 우리 분교는 마치 서커스 공연단처럼 수시로 옷을 바꿔입느라 유치원 꼬마들도 살이 빠졌을 겁니다. 같은 색으로 각자 사입어야 하며 색깔까지 맞춘 나비 넥타이에서부터 하얀 실내화 하나까지. 자잘하게 손이 가는 꼬마들인 만큼 늘 누군가 한, 두 가지씩은 덜 준비해서 선생님들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전교생이 바이올린을 배우면서도 공연할 무대를 갖기 어려운 점을 배려해 주신 본교 이규종 교장 선생님이 야외 공연 무대를 위하여 마이크 시설에 방송 장비까지 임대 해 오셔서 준비를 해 주셨지요.

정성이 지극해서인지 학부모님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더 크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고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한마음으로 아이들을 지도한 교직원들. 비를 맞으면 감기가 든다고 나무 밑으로 넣으며 비를 피하게 해 주어도 나뭇잎 우산을 만들어 쓰고 다니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더 예뻤습니다.

개교 80주년 기념 축하 공연 장면(3년간 배운 핸드벨 입니다)
개교 80주년 기념 축하 공연 장면(3년간 배운 핸드벨 입니다) ⓒ 장옥순
가랑비 속에 시작했던 운동회의 주요 경기를 오전에 마치고 비가 와서 강당에서 2부 행사를 했습니다. 전체 학부모님들과 어린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오히려 더 재미있고 신나했습니다.

전교생이 참여한 청백계주의 묘미, 학부모님들이 대거 참여한 경기 내용으로 시종일관 강당이 떠나갈듯 함성을 지르고 박수가 끊이지 않았던 가을 운동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열심히 밀고 나가면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한 오늘을 아이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본인이 원하지 않는 비도 맞아야 하고 어려운 고비도 만나게 되지만 투덜대지 않고 과감하게, 다소 비를 맞더라도 소신껏 정성을 다 하면 처음의 목표보다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가을 운동회의 영상을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은 꺼내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늘 단 한 번뿐인 순간의 연속임을 잊지 않고 쉽게 물러서거나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준 운동회와 함께 했던 친구들과 가족들, 선생님들의 따스한 격려와 박수를 늘 잊지 않기를!

무사히 운동회를 마칠 수 있도록 큰 비를 내리지 않으신 하늘에 감사드리며, 퇴근 후 이 기사를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오늘의 기록을 올리는 숙제를 합니다.

단 한 번뿐인 순간의 기록을 남기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어두운 밤 다시 학교로 돌아와 타전하는 뜻은, 아이들이 먼 후일 인생의 비를 만나게 될 때에도 오늘처럼 의연하게 오히려 즐기는 자세로 그 언덕을 잘 오를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비원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기사를 올리려고 보니 잘 찍힌 사진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다시금 마음이 상하지만(아직 저는 디지털카메라의 왕초보이기 때문)두 장 밖에 건지지 못한 내 실수를 짧은 필력으로나마 채우려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늘의 기록과 영상이 마음 속에 아로새겨져서 함께 했던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님들의 따스한 손길이 담긴 가랑비 속 운동회를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기를!

축하 공연 후 임명희 선생님과 함께
축하 공연 후 임명희 선생님과 함께 ⓒ 장옥순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나눈 오늘의 추억을 기사로 남겨 아이들이 언제든지 열어보게 하고 싶어서 이 곳에 교단일기를 남깁니다. 오마이뉴스에 싣는 교단일기는 아이들과 우리 분교 선생님들의 앨범이랍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 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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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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