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아침이 소란스럽던 지난 주 어느 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예전의 모습과 다르게 초췌해진 바깥 풍경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곱게 빗어 내리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억새가 누구에겐가 잡아 뜯겨진 것처럼 산발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침 준비를 할 때 시끄럽게 작업하던 포클레인 한 대가 생각났다. 집 앞 도로포장 공사가 얼마 전에 있었던 터라 공사 마무리 때문이겠지 생각했다. '이 새벽부터 왜 이리 소란스러워' 하는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아무래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억새는 뒤집히고 밟혀 사나운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고 폐타이어까지 어깨에 이고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진 길에는 포클레인 바퀴자국이 깊게 나 있었고 검은 흙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흙 색깔로 봐서는 어딘가에서 가져다 덮은 흙인 거 같은데 가까이 가보니 콘크리트 등 건축물 폐자재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흙도 기름에 오염된 흙같이 보였는데 속 색깔이 거무튀튀한 게 마치 시궁창에서 퍼온 흙 같았다.
흙더미에서는 비닐과 버려진 신발 등 갖가지 쓰레기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어 보는 내 속이 다 역겨워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길에 내 차를 보자 작업을 서둘러 마치고 황급히 빠져 나가던 포클레인과 빨간색 소형차가 생각났다.
순간 '아뿔싸! 차량 번호라도 기억해 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고 먼지가 뿌옇게 남아있으니 어쩌랴….
돈 몇 푼 아끼겠다고 합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불법으로 산속에 투기하는 그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가 될까? 그 돈으로 자식에게는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고, 휴일에는 간혹 산에도 올라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한껏 '야호' 소리 지르기도 할까?
'자연을 제대로 즐기고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 자격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구….' 속상한 마음에 짜증 섞인 말들을 쏟아내 불법투기한 사람들 대신 허공에 대고 몇 마디 던져봤지만 돌아오는 공허에 또 한번 몸이 떨렸다.
아침마다 거실 창을 열고 '밤새 안녕한지' 눈인사를 맞추던 억새는 허리 꺾인 채 아픈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올해 가을은 그래서 더 스산할 듯싶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여름에도 마을 계곡에 놀러온 사람들이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버리고 가기도 하고 마을 저수지 곳곳에는 일부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여기 저기 흩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소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함께 어울려야 할 자연이 인간에 의해 자꾸만 훼손될 때 자연은 병들고 결국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여러 천재지변을 통해 경험했는데도 불법투기 등 작은 반칙들은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습니다.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긴다면 제발 이런 불법투기는 하지 맙시다.
*권미강 기자는 경북 칠곡군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