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할리우드 최고 미인 우피 골드버그 다음으로 잉걸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로버트 드니로.
할리우드 최고 미인 우피 골드버그 다음으로 잉걸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로버트 드니로. ⓒ 킹스미어 프로덕션(영국)
1986년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 영화 <미션>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잉걸아빠는 이 영화를, 개봉되고도 한참 뒤인 1987년에 봤다. 지난여름에 잉걸아빠가 쓴 기사, '세상에 이보다 더러울 수는 없다!'에서 잠깐 소개했던 친구와 함께였다. 원래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였다. 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 울고 있는지는 몰랐다. 나도 물론 간간 눈물을 흘렸지만 친구는 아예 손수건을 꺼내들고 있었다.

"아까 그 음악, 가브리엘 신부가 원주민들 앞에서 연주하던 곡 말이야. 동환이 너, 그 악기 알아?"
"오보에잖아. 그것도 몰랐냐? 만날 '포리너'나 '이글스'만 좋다고, 고전 형식은 진부하다고 하더니 왜, 반했냐?"

"음악이 사람 영혼을 흔들어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어."
"그러셔?"
"이기죽거리지 마. 나 지금 심각해."


다시 기억을 돌이켜봐도 마찬가지지만, <미션>은 참 대단한 영화다. 1750년 경,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 부근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주민 과라니족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벌이는 두 선교사의 고뇌에 찬 모습이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걸출한 음악가가 빚어낸 선율과 함께 투영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유는, 무신론자였던 내 친구를 독실한 신자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두 걸출한 배우의 과묵한 연기가 빛을 발한 영화.
두 걸출한 배우의 과묵한 연기가 빛을 발한 영화. ⓒ 킹스미어 프로덕션(영국)
영화 한 편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내 친구가 그랬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정말 '신에게 귀의한' 신실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영화 한 편으로 변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서구 철학에 깊이 빠져 잉걸아빠와 함께 존재가 어쩌고, 소유가 어쩌고 하며 어줍은 식견을 펼치던 친구가 신학 공부까지 염두에 두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대학 졸업한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네가 신학공부를 또 하겠다고? 미쳤냐?"
"뉴턴 얘기 기억 나?"
"그건 내가 해준 얘기 아냐?"


그랬다. 뉴턴의 일화, 그건 내가 해준 얘기였다. 뉴턴은 과학자였지만 유신론자였다. 주변 인물 대부분 무신론자인 과학 신봉자 일색이다 보니 뉴턴의 고민이 꽤 컸던 모양이다. 몇 달 동안이나 틀어박혀 뉴턴은 태엽을 감아 움직이게 하는, 지구를 중심으로 한 태양계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해 큰 잔치를 열었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모형을 보고 친구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뉴턴, 이거 정말 대단해. 어쩌면 이렇게 움직일 수가 있지? 만드느라 고생 많았겠어. 역시 자네야."
"만들다니 누가? 이건 아무도 만든 사람이 없어. 저절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야."
"이 친구, 취했나? 이보게 뉴턴. 이 정교한 걸 만든 사람이 없다니 자네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자네들, 아무리 내가 우겨도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군. 그렇다면 말이야. 이깟 모형물도 반드시 만든 이가 있는데, 이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교함의 극치인 우주를 만든 이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열심히 살았던 친구, 그러나...

먹고 살아야 하는 일은 반드시 1순위다. 가난했던 친구 역시, 신학공부를 하지 못하고 당시 강남을 거점으로 한참 뜨는 모 금융사에 취직했다. 잘 된 일이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증권 분야에서 자기 목소리가 분명한 회사였고 친구는 최연소 지점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IMF가 터지고 난 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 둔 그 다음 해에 친구는 자살하고 말았다. 마지막 만남에서 친구는 평소에 못 마시던 소주를 거푸 들이켰다.

천재라는 꾸밈말이 아깝지 않은 모리꼬네.
천재라는 꾸밈말이 아깝지 않은 모리꼬네. ⓒ 킹스미어 프로덕션(영국)
"마누라가 행방불명이야. 바람피우고 있는 것도 몰랐어. 일만 하느라고…, 알고 보니 집도 이미 내 집이 아니야.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그가 죽기 전까지 가장 좋아했던 음악이 바로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를 추억하며, 그의 호흡으로 오보에 선율에 빠져있다. 다시는 그런 영화음악 작곡가가 또 있으랴 싶을 만큼 존경심이 절로 이는 엔니오 모리꼬네, 그의 가락과 친구의 숨소리에 침잠하며 지금 잉걸아빠는 싸구려 한 올, 눈물방울 흘리고 있다.

추억은 아프지만, 나는 친구의 죽음을 지금도 슬퍼하지 않는다. 둘이나 되는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총총히 떠날 수 있을 만큼 하늘하늘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 월요일 쉬는 날, 나는 왕복 다섯 시간이나 소비하며 청계산, 청계사까지 걸어갔다가 왔다. 운동 삼아 갔지만 막상 극락보전 안에서 지극한 절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시큰했다. 친구 생각이 났다. 가슴이 짠했지만 그의 혼백을 위해 절하지 않았다.

청계산 자락, 청계사의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 안. 몇 번이나 친구 명복을 빌까 말까 망설이다가 괘씸한 마음이 너무 넘쳐…, 뒤돌아 서고 말았다.
청계산 자락, 청계사의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 안. 몇 번이나 친구 명복을 빌까 말까 망설이다가 괘씸한 마음이 너무 넘쳐…, 뒤돌아 서고 말았다. ⓒ 이동환

가슴을 치는 영화 <미션>은?

제작사 : 킹스미어 프로덕션(영국)
주연 : 로버트 드니로(Robert DeNiro),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Irons)
감독 : 롤랑 조페(Roland Joffe)
원작과 각본 : 로버트 볼트(Robert Bolt)
음악 :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주옥같은 영화음악(O.S.T에서)
TRACKS NUMBER
1. On Earth As It Is In Heaven
2. Falls
3. Gabriel's Oboe
4. Ave Maria Guarani
5. Brothers
6. Carlotta
7. Vita Nostra
8. Climb
9. Remorse
10. Penance
11. The Mission
12. River
13. Te Deum Guarani
14. Refusal
15. Asuncion
16. Alone
17. Guarani
18. The Sword
19. Miserere


줄거리 :
175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 오지에 있는 그들의 영토 경계 문제로 합의를 본다. 바로 그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제수이트 신부들은 과라니족을 감화시켜 근대적인 마을로 발전시키고 교회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신부들 중에 악랄한 노예상이었던 멘도자(Mendoza: 로버트 드니로 분)는 가브리엘 신부(Gabriel: 제레미 아이언스 분)의 권유로 신부가 되어 헌신적으로 개화에 힘쓰고 있었다(중략).

덧붙이는 글 | 어제 다섯 시간 이상 청계사까지 걸어서 왕복하며 친구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잉걸엄마는 이 기사 쓰지 말라고, 어디선가 살고 있을 그 친구 아내였던 여자, 그 여자가 이 기사 보면 어쩌겠냐고, 말립니다. 잉걸아빠는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제는 추억도 자기 마음대로 떠올리지 못하나? 그 여자가 보건 말건, 내가 이름을 밝혔어, 아니면 욕을 했어? 당신까지 왜 이래? 안 그래도 마음 짠한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