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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31일, 중국 광저우시에 장대같은 비가 쏟아진 날. 판위취(番禺區) 타이스(太石)촌 입구의 빈 벌판에 마을 촌민 200명 가량이 모였다. 옹기종기 우산을 둘러 쓴 촌민들은 굵은 빗방울에도 아랑곳 않고 마을 청년 펑추이셩의 '중화인민공화국 촌민조직법'에 관한 연설을 듣기 시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촌민조직법' 제19조에 명시된 촌민이익과 관련된 내용에 의하면 촌민위원회는 촌에 관련된 일을 반드시 촌민회의 토론을 요청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촌에서는 촌민회의를 연 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었어요! 다 자기네들이 멋대로 말하면 그걸로 그만이었지"

- (9월12일자 중국 <난팡두스바오(南方都市報)> 기사중)

타이스촌의 '반란'

▲ 중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 왕이에 실린 타이스촌 관련한 심층특별보도.
인구 2075명의 한 작은 촌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중국 광저우시 판위취 타이스촌에서 촌민들이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나 촌민위원회의 최고 실력자인 쳔진셩 주임의 파면을 요구하고 나선 것.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일어난 '거사'였다.

주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촌의 집체소유로 돼있는 토지의 상당부분이 촌민들도 모르게 개발업자에게 매각되어 공장부지로 조성되고 있었던 것. 게다가 촌의 재정관련 부분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었다. 관련기관에 해명을 요구해도 이렇다 할만한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하자 촌민들은 법을 무기로 촌민위원회 주임파면 요구를 하기로 했다.

7월 29일, 타이스촌 주민들은 판위취 민정국에 마을 촌민 400명 이상의 서명이 담긴 '촌민위원회 주임 파면요구서'를 제출했다. 이 파면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마을 청년 펑츄이셩은 7월 31일, 마을공터에서 주민들에게 관련 법률을 설명하면서 "촌민들을 속인 간부 파면 요구는 중화인민공화국 법률이 보장하는 절대적으로 '합법적'인 것"임을 강조했다.

파면동의서를 제출한 후 타이스촌 주민들은 펑츄이셩이 말한 것처럼 모든 절차를 '법대로만'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중화인민공화국 촌민조직법'에 의하면 전체 촌민들의 5분의 1이상이 촌 간부 파면을 요구하면 절차에 하자가 없는 이상 상급기관에서 이를 수용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달랐다. 타이스촌의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전쟁, 그리고 작은 승리

타이스촌 주민들이 관련 상급기관에 '파면동의서'를 제출한 후 한 달 뒤인 8월 29일, 드디어 해당 기관인 판위취 민정국에서 답변이 내려왔다. 그러나 답변내용은 '거절'이었다. 촌민들의 서명이 담긴 파면동의서가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라는 게 이유였다.

촌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촌민조직법' 그 어디에도 원본을 제출하라는 조항이 없을뿐더러, 당초 복사본을 교부할 때는 아무 말이 없던 당국이 왜 이제 와서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내세워 트집을 잡느냐는 것이었다.

이어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촌민들은 민정국 문 앞에서 '단식성명서'를 발표하며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 전역에서 타이스촌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난팡두스바오>를 비롯해 중국 내 주요 언론들이 타이스촌의 간부 파면사건을 상세히 보도하는가 하면 인터넷에도 타이스촌과 관련된 내용들이 속속 올라왔다.

주민들은 이어 9월 5일, 민정국의 요구대로 파면동의서 원본을 첨부한 '파면동의안'을 다시 제출했다. 당초 서명자보다 많은 800여 명의 서명 원본이 민정국에 제출됐다. 더 이상 민정국이 트집 잡을 수 없도록 한 것.

민정국은 9월 7일과 8일 이틀간 서명자 신분대조작업을 벌인 뒤 800여 명의 서명인원 중 584명이 법적으로 유효한 신분임을 확인했다. '촌민조직법'이 규정한 간부 파면에 필요한 법정인원인 전체 주민 5분의1을 훨씬 넘는 숫자였다.

9월 11일, 상급기관인 판위취 위워터우전 정부는 드디어 '중대발표'를 했다. 타이스촌 촌민들의 촌 간부 파면동의안을 통과시킨다는 것과 조만간 파면에 필요한 절차를 집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중국판 풀뿌리 민주주의제도라고 할 수 있는 촌민자치가 실시된 이래 가장 '민주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법률은 우리들의 보호신'이라고 믿었던 타이스촌 촌민들이 생전 처음 '법의 위대함'을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하루 만에 끝난 잔치

▲ <런민르바오(人民日報)> 9월14일자 논평. '법에 의거해 진행된 촌 간부 파면사건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 하에 타이스촌에서 벌어진 촌간부 파면사건을 중국 기층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모범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잔치'는 하루 만에 끝이 났다. 9월 12일 오전 9시, 63대의 경찰차량과 천명이 넘는 경찰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이들 진압병력들은 마을 주민들이 교대로 지키고 있던 촌정부의 회계장부가 있는 재무실에 들이닥쳐 무력으로 회계장부를 압수해 갔다. 이 과정에서 48명의 촌민들이 경찰에 붙잡혀갔고 수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다. 타이스촌 사건 발생 후 촌민들에게 법률자문을 해주던 중국의 유명 인권변호사 궈페이시옹도 촌민들과 함께 구속됐다.

회계장부는 간부 파면 절차를 밟을 때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는 자료이다. 촌간부들의 부정부패와 촌 재정의 불투명한 집행 등을 증명할 자료이기 때문에 그동안 경찰들이 여러 차례 강제회수를 시도했으나 촌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번번이 실패하곤 했었다.

이제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파면동의서를 통과시킨다는 발표를 한지 불과 하루 만에 당국은 낯빛을 바꿨다.

회계장부 압수에 성공한 후 9월 14일과 15일, 당국은 현지 관방매체인 <판위르바오>를 통해 "이번 타이스촌 사태는 다른 '흑심을 품은' 소수 불법분자들이 개입한 비합법적인 행위"라면서 "당국은 법에 따라 이들을 처벌할 권리가 있으며 그럴 때만이 법의 존엄과 권위를 지킬 수 있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9월 14일 최고 권위를 가진 관방매체 <런민르바오(人民日報)>가 "타이스촌 사건은 가장 전형적인 촌민자치의 모범사례일 뿐만 아니라 촌민들이 어떻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촌민자치 권리를 이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극찬'한 논평과는 정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평정된 '반란'

회계장부를 압수해 간 당국은 15일 통지문을 통해 "16일 촌민위원회 주임 파면을 위한 파면선거위위원회 구성원 선거를 한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10월 7일에 선거위 주관으로 촌 주임파면여부를 묻는 촌민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것. 당국은 촌민들에게 7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는 동시에 이들 외에 다른 사람들을 선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국이 추천한 7명의 후보는 모두 기존 촌민 위원회 간부들이거나 당국에 협조적인 어용 인사들이었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의외였다. 그동안 파면활동을 이끌어 왔던 핵심 인원들이 대부분 구속된 상태에다 마을 회계장부마저 압수당한 상황에서 치러진 갑작스러운 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이 추천한 7명의 어용후보 전원이 낙선을 하고 주민들의 신임을 받는 촌민들이 파면 선거위 위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이스촌의 간부파면 요구 사건을 다른 분순한 의도를 가진 불순분자들의 책동으로 규정한 것. 당국은 새롭게 구성된 선거위원회 위원들을 위협하고 협박해 하나둘 자진사퇴하게끔 종용했다. 이들의 사퇴로 파면선거위원회는 모두 촌 정부와 관련이 있는 어용인사들로 대체됐다.

이어 9월 21일, 당국은 또 한번의 중대발표를 공개했다. 압수해간 회계장부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촌 간부들의 부패행위나 불투명한 재정상황을 증명해줄만한 어떤 정거도 찾지 못했다고 밝힌 것. 정부발표는 타이스촌 촌민들의 파면 요구안 성립 자체를 불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어 당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촌민들을 상대로 당초 서명한 파면동의안을 철회하라고 압박했고, 그 결과 400명 가량의 촌민들이 파면지지를 철회했다.

결국 9월 29일, 어용인사들로 채워진 타이스촌 촌민위원회 주임파면선거위원회는 "파면 동의안이 법정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법에 따라 자동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현재 타이스촌은 외부인들의 출입이 거의 금지된 채 마을 입구에서부터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불순분자들의 개입'을 막겠다는 이유로.

왜 타이스촌을?

▲ 타이스촌 관련 기사를 다룬 <독일의 소리> 9월 13일자.
지난 9월 5일, 제8차 중-유럽 정상회담 개막전 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은 앞으로 민주정치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직접선거제도를 포함한 민주제도를 아주 확고하고 새롭게 건설할 것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만일 중국인민들이 하나의 촌을 잘 관리할 수 있다면 몇 년 내에 그들은 하나의 '진'(鎭, 촌보다 큰 행정단위)을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라며 중국 내 기층민주제도를 지금보다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같은 날, 후진타오 주석 역시 제 22회 세계법률대회 개막식에서 "중국은 앞으로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민주제도를 건설하고 중국 공민들이 법에 따라 민주선거와 민주적인 결정, 관리, 감독을 하는 것을 보장할 것입니다"라며 원자바오 총리와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후 주석과 원 총리가 이 같은 발언을 하고 있을 때 타이스촌에서는 한창 촌 주임 파면폭풍이 불고 있었다. 중국 언론은 후 주석과 원 총리의 위와 같은 발언내용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왜 타이스촌에 대해 이 같은 무리한 정책을 강행한 것일까.

촌민자치를 연구하는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은 "타이스촌이 위치한 지역은 중국 내에서도 토지개발에 따른 지방정부와 지역 농민들간의 이익분배 문제가 가장 민감한 지역 중의 하나"라며 "타이스촌 사건도 본질은 토지개발에 따른 이익분배 문제인데, 이 과정에서 촌 정부나 지방정부가 토지매각에 따른 보상금이나 이익분배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이익분배 과정에 촌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 상급정부에 이르기까지 아주 복잡한 다단계 이익관계가 존재한다는 것. 그는 "타이스촌 주민들은 바로 이 뇌관을 건드린 것"이라며 현지 정부가 타이스촌 사건을 강경 진압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토지개발에 따른 다단계 이익관계'를 꼽았다.

한편 이번 사건을 보도한 많은 중국내외 언론들도 "만일 타이스촌에서 촌 간부 파면이 성공하면 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근의 다른 촌이나 지역으로 그 문제가 확산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 질 수 있다"는 현지 한 간부의 말을 인용해 당국이 타이스촌 사건의 후폭풍을 염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사회주의 민주정치의 실종

사건 종료 보름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타이스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타이스촌 간부 파면 사건 과정에서 촌민들에게 법률자문을 했던 중국 인권 변호사 궈페이시옹은 현재 구속된 상태로 감옥 안에서 한달이 넘는 단식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중국 농민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섰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이자 인권운동가인 뤼빵례는 9월 16일 경찰들에 의해 심한 폭행을 당하고 끌려간 뒤 근 한 달여 간 생사가 확인되지 않다가 최근에야 그의 생존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번 파면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타이스촌의 수많은 주민들도 당국에 의해 구속, 감금된 상태다.

또한 타이스촌 사건을 가장 근접거리에서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중국 내외 언론에 가장 많은 정보들을 제공해 왔던 중국 광저우 중산 대학교 아이샤오화 교수는 타이스촌에서 취재도중 정체불명의 폭력배들에게 쫓기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지만 여전히 신변의 불안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싱가폴에서 발행되는 화교신문 <연합조보>에 따르면 현재 타이스촌과 관련된 중국 내 보도는 중앙선전부에 의해 보도금지령이 내려졌다는 후문이다.

아이샤오화 교수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묻고 있다.

"왜 일반 백성들은 자신들의 토지에 대한 상황을 묻지 못한단 말입니까? 왜 다른 외부인들이 들어와서 본래 마을 주민들을 감시하고 마을을 중세 유럽의 성루처럼 변하게 한단 말입니까? 완전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를 (당국은) 왜 억압하려 하고 인민들의 생존의 존엄마저 빼앗아 가려 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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