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이후, 특히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작전계획의 변천 과정을 보면 크게 3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냉전시대 북한의 남침시 이를 격퇴하고 38선 이북으로 되돌림으로써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재건하는 것에서, 유사시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계획이 공식화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1990년대에는 '선제공격전략'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예방전쟁' 개념이 도입됨에 따라, 작전계획이 선제적 군사개입의 형태로 바뀌어 왔다는 점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확산하는 적대 국가들에 대해 "필요하다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부시 독트린'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작전계획이 적용될 수 있는 '우발' 개념에 미국의 일방주의가 관철되면서 우발 상황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우발 상황이 주로 북한의 남침이나 우발적인 무력 충돌, 그리고 북한의 붕괴 등을 의미했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의 발생',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미국의 정밀 폭격과 이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대응'도 우발 개념이 포함시켰다.
물론 한미연합군의 작전통제권 내에 있는 군을 동원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할 경우, 한국과 미국 대통령 사이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미연합군의 작전통제를 받지 않는 주한미 제7공군이나, 한반도를 책임구역에 포함시키고 있는 미 태평양 사령부가 북한을 공격하려고 할 경우에는, 지휘계통상 미국 대통령의 재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추진할 경우 주로 공군력과 해군력이 활용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김영삼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북폭을 추진했던 사례나, 부시 행정부가 일부 강경파들이 북폭을 추진할 때에는 한국 정부와 협의 없이 기습 공격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례 등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1단계: 대통령 재가의 제도화
세계적 수준에서 냉전이 해체된 이후,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북한의 남침보다는 우발적 무력 충돌과 미국의 북폭, 그리고 북한이 붕괴되고 이에 대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전쟁과 평화의 자기 결정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작전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와 평시의 구분 권한, 작전계획의 수립 및 변경 권한 등 평시작전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계별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다. 1단계는 작전계획의 수립 및 변경시 대통령의 재가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현재 작전계획의 수립 및 변경 절차는 대단히 기형적이다.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에 따라 작전계획 수립 권한을 갖고 있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본국의 전략 지침을 받아 작계를 수립·변경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미국 국방장관이 보고하면, 미국의 국방장관은 이를 미국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아 미국 측 안으로 결정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미국의 절차이다. 이후 미국은 한국의 국방장관 및 합참의장과의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검토를 거치지만, 작계 수립 및 변경의 한국측 결정권은 국방장관의 전결사항으로 처리돼,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지 않고도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작계 5029의 문제점을 뒤늦게 발견해 '중단'을 지시한 것도 이와 같은 제도적 부실함 때문이다.
이는 한미동맹의 종속성 및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미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근본문제로서, 작계의 수립 및 변경 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형태로 국내적 절차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개선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조치이다.
2단계: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환수
2단계는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의 환수이다. 한국은 1994년 12월 평시작전권을 환수했으나, 평시작전권의 핵심적인 사항들은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에 의해 주한미군 사령관이 계속 보유하고 있다. 평시작전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전시 작전계획의 수립, 조기경보를 위한 연합정보관리,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주관, 연합교리의 개발과 발전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은 온전한 평시작전권조차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작전권 환수의 사전 조치로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을 환수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기획 능력을 높여 전시작전권 환수를 실질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작전계획을 수립·변경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변화하는 남북관계 및 한반도 안보환경에 능동적이고 자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질 수 있다. 한국이 조속히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을 환수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러한 조치는 최소한 노무현 정부 임기 내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단계: 전시작전권 환수
3단계는 전시작전권의 환수이다. 한국이 전시를 포함한 작전지휘권을 온전히 환수해야 한다는 것은 주권의 온전한 회복과 함께 전쟁과 평화의 자기 결정권을 갖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통해 전시와 평시를 구분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할 수 있고, 전쟁 발발시 자동으로 미국의 지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의 한국 영토·영해·영공 사용을 제약할 수 있는 근거가 확보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과 협의 없이 단독으로 북폭을 단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12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정부에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위한 공식 협상을 제안했고, 미국도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21일부터 열릴 예정인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전시 작전통제권이 연합군사령관에게 주어져 (이를 두고) 자주군대가 아니라고 표현되는 것은 지나치게 자학적인 국방인식"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미국과의 협상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발목을 잡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앞으로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2007년 대선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여러 가지 정황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에 전시작전권을 환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기 내에는 '기반'을 구축하고, 차기 정권이나 그 다음 정권에서 환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시작전권 환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들도 있다. 우선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전시작전권을 환수받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주는 식의 어설픈 '주고받기 협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작전권 환수의 기반을 닦겠다며 대폭적인 국방비 증액과 군비증강을 정당화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이미 남북한의 군사력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진 상황에서, 작전권 환수를 비롯한 자주국방의 요체는 '국방비 증액'이 아니라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한 무형의 전력을 강화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작전계획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