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천정배 법무장관 해임안을 내겠다고 밝혔고, 검찰 안에선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천 장관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라"고 김종빈 검찰총장을 지휘한 뒤 나타나고 있는 파문의 전조들이다.
뇌관은 역시 김 총장이다. 김 총장이 천 장관의 '지휘'를 부당한 것으로 판단해 거부할지, 아니면 수용할지에 따라 파문 반경과 파고는 달라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다수 언론은 "천 장관의 '지휘'를 일단 수용하되 오늘 거취를 표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쉽게 말해 총장직에서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언론 전망의 모순
언론의 전망이 맞다면 그건 모순이다. 천 장관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는 피의자는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형사소송법, 그리고 신체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에 근거해 '불구속 지휘'를 했다. 강 교수가 자신의 사상과 철학에 입각해 주장을 펼쳤고, 자신에 대한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고 밝힌 마당에 구속해야 할 법적 설득력이 없다고 천 장관은 판단한 것이다.
김 총장이 '일단 수용' 의사를 내비친 이유도 이런 법원칙을 부정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따르면 될 일이다. 천 장관이 법적 권한에 의거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지휘를 했다면 김 총장이 거취를 고민할 이유는 없다.
일부 언론은 '검찰권 훼손', '검찰 내부 리더십 손상'을 운위하고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가당찮은 주장이다. 신화에 나오는 법의 신 '테미스'조차 저울을 들고 형평을 잰다는데, 인권기관이라는 검찰을 향해 형사소송법에 따라 처리하라는 주문을 '검찰권 훼손'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천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면 검찰 내부의 리더십에 손상이 간다는 주장은 토 달기에도 부적절한 맹목이요 궤변이다. '형님'의 위신은 '불가촉 권위'라고 우기는 조폭세계가 아닌 이상 법적 권한과 절차에 따른 '지휘'를 받는다 해서 검찰총장이 '형님' 자격을 상실할 이유는 없다.
이처럼 상황은 간명하다. 강 교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부 언론이 소리 높여 주창한 '법과 원칙대로'를 대입하면 상황은 복잡할 것도, 미묘할 것도 없다.
물론 반론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언론은 이렇게 따져 묻고 나섰다.
"그렇다면 그동안 증거 인멸 등의 우려가 없음에도 구속된 숱한 피의자·피고인들에 대해선 왜 눈을 감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중앙일보)
물었으니까 누군가는 대답해야 할 게다. 굳이 나서서 대답한다면 두 가지를 내놓을 수 있다. 첫째, <중앙일보>의 반문은 옳다. 둘째,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과거에도 불구속 수사원칙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강 교수도 관행에 따라 구속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번 일을 계기로 불구속 수사원칙을 확립할 것인가?
그동안 잘못했으니 앞으로도 계속 잘못하자?
'불구속 지휘'를 비판하는 언론이 기실 주목하는 대목은 이게 아니다. 천 장관의 '지휘'가 여권의 조율 끝에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부 언론이 제기한 주된 이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 정권은 강정구씨의 국선 변호인인가"(조선일보). 천 장관의 '지휘'는 법무 장관의 단독 판단이 아니라 정권적 차원에서 조율한 끝에 내린 '정치적 간섭'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언론은 그 근거로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을 대표 증좌로 내세우고 있다. 이 실장이 그제 국감장에서 "(강 교수의 발언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점과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를 연결하고 있다.
'연결공사' 끝에 내놓은 일부 언론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천 장관의… 수사 지휘권 발동이 이런 여권 인사들과의 교감에서 나온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에 정치적 '외풍'이 작용한 셈이기 때문이다."(중앙일보)
여기에 <동아일보>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더하면 일부 언론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전선이 뭔지 대충 윤곽이 나온다. "국보법은 바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법률이다. 인권 측면에서 일부 조항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의 논의와 표결을 거쳐 고치는 것이 옳지, 법률 자체를 사문화시키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조·중·동은 '법적 행위'를 '정략'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국보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여권이 천 장관을 내세워 검찰의 독립성을 해쳤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을 내렸다면 그 다음 수순은 '결의'다. '사생결단'의 각오를 다지는 일이다. 그래서 <동아일보>는 집회장 피켓문구와 같은 내용을 사설 제목으로 올렸다. "김종빈 총장, 끝까지 검찰 독립 수호해야."
분명히 하자, 천 장관이 지휘한 것은 '불구속'이지 '불수사'가 아니다
조·중·동의 주장대로 천 장관의 '지휘'가 여권의 조율 끝에 나온 것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천 장관은 그 의혹을 부인했지만 열린우리당의 문희상 의장이나 정세균 원내대표도 '구속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이심전심'의 의혹마저 완전 배제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할 게 하나 있다. 조·중·동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일 개연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고 해도 가를 건 갈라야 한다. 천 장관이 김 총장에게 '지휘'한 것은 '불구속'이지 '불수사'가 아니다. 천 장관 입에서 "수사를 하지 말라"는 말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강 교수 사상의 문제이니 만큼 그가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불구속 수사원칙도 지키면서 수사하라고 주문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불구속'이면 곧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상황을 오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국보법 사문화'로까지 연결 짓고 있다. 날개 정도가 아니라 제트 엔진을 장착하고 높이 비약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어록'이 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 2년 반 전의 그 말은 검사들만을 향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일부 언론까지 덧붙여 던져야 할 것 같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