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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6·25는 북한에 의한 통일전쟁" 이라는 발언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천정배 법무장관이 강 교수를 구속 수사하려는 검찰에게 사상 최초로 법무장관의 검찰지휘권을 행사하여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에 대하여,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일반의 찬반양론이 격돌하면서 한국 사회를 일대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강정구 교수의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여 년 전인 1986년에 <한국전쟁의 기원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란 책이 번역 소개되었다. 그 책의 저자인 미국 시카고 대학의 친한파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미국 정부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한 실증적 연구에서, 1945년 해방 이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남북한은 이미 내전상태에 있었음을 밝혀낸 바 있다.

그 기간 동안 남한 전역에서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좌파와 우파간의 국지적인 게릴라전이 6·25로 인해 전면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강정구 교수는 자신의 "6·25는 북한에 의한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에는 그것이 잘된 것이거나 잘못된 것이거나 하는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 의한 이른바 적화통일,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했던 북진통일,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던 유엔에 의한 한반도 통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주체들이 통일전쟁을 꾀하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천부 인권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학문과 사상, 양심의 자유를 보장할 때 비로소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물리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여 타인에게 강제하려고 할 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타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런 행위를 실정법에 따라 제한하고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사회학자의 학문 연구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주장에 대해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특수상황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보수 언론과 극우인사들 그리고 6·25 관련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북한에 의한 침략전쟁이 되었건, 민족내부의 내전이 되었건 어쨌든 북한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그 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남한에 생존해 있으며, 또 그 전쟁으로 인해 불귀의 객이 된 사람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6·25 전쟁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입힌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생생한 피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가져온 북한의 전쟁 촉발을 가치중립으로 해석하려는 주장을 이미 존재론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도 더 지난 50년이 넘은 일에 언제까지 사로잡혀 살아갈 것인가? 이제는 서로 다른 상대의 생각과 주장을 용인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때도 되지 않았을까 ?

노무현 정권의 통일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장난

노무현 정권이 집권 이후 제일 처음 처리했던 국가적 사안은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발의하고 통과시켰던 '대북송금 특검'의 수용이었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국가적 사안에 대해 정리하고 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개진했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하는 노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며 비공식 청와대 대변인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의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은 한 인터넷매체와 한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검 받아주고, 민주당 홀대하고.. 그죠? 그렇게 함으로써 지역구도가 근본적으로 해체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딴지일보 2003.10.20)

여기서 유 의원은 노 대통령의 짐짓 원칙적인 태도와는 다르게, 대북송금특검 수용의 목적이 영남권에 진출하고자 하는 노 정권의 정치적 노림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실토해 버리고 말았다.

인터넷매체 중에서도 특유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띠고 있는 <딴지일보>와 생맥주를 마시면서 했던 취중인터뷰 탓이었을까? 유 의원으로서는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노 정권의 천기를 누설했던 것이다. 다만 파문이 불거지지 않고 묻혀버렸을 뿐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이중행태

노 정권 출범초기에 욱일승천하는 듯하던 진보개혁의 사회 분위기를 타고 북한 조선노동당의 서열 23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알려진, 독일의 한 대학에 적을 둔 송두율 교수가 입국했다. 그리고 검찰이 송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사안과 관련하여 사법처리하려하자 한국 사회는 들끓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송 교수를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자신의 개인적 소신과는 다르게 검찰의 구속수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천정배 법무장관이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해 검찰에게 불구속 수사를 공개적으로 지휘하고 나섰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송두율 교수 사건 당시는 노 정권의 출범초기였다. 당시에 막 출범하던 정권으로서는 검찰이라는 또다른 거대한 권력과 마찰을 빚어 정권 장악 능력과 관련해 국민들의 염려를 사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또 강금실 장관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고, 재야법조인으로 있다가 관료로 발탁되었던 인물이니 정치적 고려를 할 필요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처리했던 것이다. 또 당시는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 출범 초기의 상황이 아니다. 노 정권의 국가장악 능력은 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현저히 열악한 국민 지지도가 말해주듯이 이미 판명난 지가 오래이니 더 이상 신경쓰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리고 천정배 법무장관은 국회의원 3선 재임 중에 관료로 발탁된 정치인 출신 장관이다.

형사소송법 원칙상 검경의 모든 수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웬만한 사안에서는 대부분 인신을 구속해서 수사하려는 검찰의 그간 관행은 사실 오랜 독재정권에서 관행화되었던 것으로서 법원의 판단 이전에 이미 행정부인 검찰이 반쯤은 판결을 내리는 것이었다.

형사소송법은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피의자에 한해서 구속수사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강정구 교수는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현직 교수로서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또 그의 주장은 이미 오랫동안 자신의 일관된 논리에 따라 되풀이되어 왔던 것으로서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는 것이다.

또 검찰청법상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사상 초유의 일이다보니 생경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천 장관의 검찰지휘권 행사를 두고 오로지 천 장관만의 개인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진보와 보수 등 모든 국민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국가적 중대사안에서 여권 내부의 깊숙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일개 법무장관 개인의 소신에 따라 이번 사안에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은 10·26 재보선을 앞둔 시기인 것이다.

여-야는 통일문제를 둘러싼 장난을 멈추어야 한다

천정배 장관은 검찰에 '공개서면' 형식을 통하여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면담이나 전화통화를 통하여 밖으로 불거지지 않게 내부적으로 조율해왔던 그간의 관행에 비추어본다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노무현 정권은 국회의원 재보선을 앞두고 지지층에 대한 여론몰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노 정권은 대선 당시의 공약과 달리 집권 이후에는 끊임없이 보수층에 대한 구애를 시도해왔고, 급기야는 자신이 중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대통령직을 넘길 수 있다고 하면서까지 보수층과 한 몸이 되려고 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한나라당에 의해 일언지하에 반복해서 거절당했다.

그러자 노 정권은 다시 지난 대선 당시의 지지층을 결집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층과 한 몸이 되는 것은 어차피 당장은 어려운 일이니, 일단은 재보선에서 한 두 곳이라도 승리하기 위하여 지난 대선에서 자신들을 지지했던 계층을 끌어들이려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고 있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대응은 어떤가? 노 정권의 대응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강정구 교수 사안이야 말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과시할 만한 호재다. 그런데 그들은 천정배 법무장관의 해임결의안을 내겠다고 하면서도 즉시 국회에 발의하지 않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원칙으로 따지자면 사안이 불거진 즉시 다른 고려없이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사안을 노 정권과 똑같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국회의원 재보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할 호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재보선까지는 아직도 10여 일 이상이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국회에 천 장관의 해임결의안을 제출해서 표결 처리한다면, 열린당과 민노당 민주당 일부가 합세하여 국회의석 과반수가 넘어서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강정구 이슈는 그대로 묻혀버리고 만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재보선 지역의 여론을 면밀히 살피면서, 천 장관 해임결의안이 제출되어 국회에서 격돌하고 이것이 선거판세에서 자기 당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필요에 따라 통일문제가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총선에서 탄핵 역풍에 힙입어 50석도 못되던 열린우리당은 3배가 넘는 150석 이상을 차지하면서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어느 정파도 심지어 열린우리당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적 대격변이었다.

그러자 노 정권은 국민들의 열기에 스스로 놀라서 정말로 개혁을 추진할 듯이,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나섰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이던 천정배 법무장관은 4대입법의 통과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노 대통령은 작년 8·15 기념사를 통하여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한다"고 말하면서 지지층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연말에 이르러서는 "국가보안법이 지금 당장 철폐되지 않는다고 해서 대세에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4대입법의 추진을 흐지부지 철회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던 천정배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오히려 법무장관으로 영전되어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중 그는 10·26 재보선을 앞두고 또다시 자신의 직위를 활용한 정치적 여론몰이에 앞장서면서 여권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송금 특검, 송두율 교수 사안 , 강정구 교수 사안 등 통일 문제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원칙없이 아무렇게나 농락당해서는 안된다. 노 정권 뿐만이 아니라 정권 만큼이나 국가적 책무를 감당하고 있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권과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선거를 앞둔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통일문제를 농락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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