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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사
불혹을 눈앞에 두고 있어 그런지 '마흔 번째 생일'이라는 단어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고학년 문고'라고 표시돼 있는 걸 보면,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에게 눈높이를 맞춘 창작동화일텐데 그만 내가 더 재밌게 그리고 슬프게 읽어 버렸다.

이 책은 입만 열면 "진짜 짜증 나" 라는 말을 내뱉는 '제멋대로' 언니의 동생 가영이가 주인공이다. 아니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가영이네 식구다. 다만 가영이의 눈과 마음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뿐이다. 가영이네는 모두 다섯 명으로 수가 많지 않은데도 언제나 시끄럽다. 할머니의 치매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그런 할머니의 증상을 치매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몸이 편찮은 것으로만 이해하는 아빠는, 아픈 할머니는 하루 종일 엄마가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은 자주 일어난다. 축구를 아주 좋아하고 잘 하는 가영이는 여자라는 이유로 축구시합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머리 아픈 상황에 둘러싸인 가영이는 설상가상으로 첫 월경을 맞아 몸까지 아프다.

어느 날 부부싸움 끝에 엄마는 외갓집으로 가 버리고,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고 만다. 아빠는 병원에 찾아와 우는 엄마를 쫓아낸다. 그 날은 바로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날이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별거를 한다.

불혹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여유 있게 바라보고, 사려 깊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데, 가영이 엄마는 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일까?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사실 할머니는 아빠의 어머니인데, 왜 언제나 홀로 살고 계신 외할머니를 둔 엄마가 모든 걸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도 해 본다.

아빠가 엄마에게 한 번이라도 위로의 말을 하고, 그 힘겨운 마음과 몸의 고단함을 덜어 주었더라면, 서로 더 좋은 화해의 길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오로지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엄마 책임이라는 아빠의 생각에는 대화를 나눌만한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 가영이는 생각보다 어른스럽다.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불행하지는 않다. 엄마 아빠 때문에 힘들었지만 나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공부도 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딸이지만 나 혼자 살아가야 할 시간이 따로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끝내면서 빼놓지 않고 하던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호랭이도 아니고 곶감도 아니야. 제일 무서운 건 시간이지.'


세상에 많이 있을 다른 가영이들도 함께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가 싸우고 이혼을 하려고 해도, 부모의 시간은 부모의 시간이고, 우리의 시간은 우리만의 시간이라는 것을.

덧붙이는 글 |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최나미 지음, 정용연 그림/ 청년사 / 8500원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사계절(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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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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