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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스님이 괴화 열매를 물들인 한지인 괴황지를 널어 말리고 있다
지산 스님이 괴화 열매를 물들인 한지인 괴황지를 널어 말리고 있다 ⓒ 오창경
얼마 전 우리 집에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었다. 우리 폐교 괴담의 해결사였던 지산 스님이 바람처럼 나타난 것이었다. 몇 년 전, 우리의 친구였던 유영배씨는 '지산 스님'으로 인생 역전의 길을 걷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가 고려 불화의 맥을 잇는 탱화를 그리는 스님이 되었다는 사실까지는 정말 믿기가 어려웠었다. 그동안 그가 간간이 직접 그렸다는 '관음보살도'며 '지상보살도' 등의 사진을 보내주곤 했지만 우리는 반신반의에 가득 찬 눈길로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우리가 폐교살이를 시작하면서 그가 괴황지에 그려 준 달마도를 붙여 놓게 되면서 우리는 그를 진심으로 구도자로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5년 전, 우리 폐교에 휑하니 달마도 한 장을 남기고 떠났던 지산 스님은 그동안 바람결에 간간이 불교 대학에 입학해서 탱화 그리는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뿐 만나지는 못했었다.

'인생 역전'이라는 말이 이제는 유행어가 되었지만 지산 스님의 인생이야말로 역전의 연속이었다. 젊은 날 한 때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서 꿈을 키워갔던 적도 있었고 운동을 그만둔 후에는 사업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기도 했던 그가 이제는 탱화를 그리는 스님으로 정착을 해서 불화를 통해 참 자아(自我)를 찾았다.

지산 스님이 그린 지장 보살도.
지산 스님이 그린 지장 보살도. ⓒ 오창경
예술적 재능은 열정과 노력에 의해서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완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산 스님의 재능은 본인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 발산된 경우였다.

젊은 시절 경험만 믿고 차렸던 사업이 부도나고 빈털터리가 되어 노숙자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그의 발길이 머문 곳은 그림 그리는 도구를 파는 화방이었다. 붓과 물감 등을 보자 몸 속에서 어떤 강렬한 욕구가 솟아올랐지만 붓 쥐는 법조차 모르던 그는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발길은 다시 화방에 앞에 가 있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림 그리는 재료를 사러 왔던 스님을 따라 나선 것이 탱화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산 스님은 본격적으로 탱화를 그리게 되면서 '괘불 탱화'를 그리겠다는 원을 세우고 요즘은 남해의 깊은 산 속 한 사찰에서 수행에 전진하고 있다.

스님이 되기 전에는 다부진 체격과 다소 험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조폭(?)으로 오해 받기가 다반사였던 지산 스님은 수행자가 된 이후에는 장난꾸러기 골목대장 같은 친근감 있는 인상으로 변했다.

"요즘에는 귀신들이 꿈 속에 나타나서 안 설치나, 전화도 없대이?"

우리 폐교에 들어서자마자 지산 스님이 우리에게 건넨 말이었다.

"스님이 그려 준 달마도 덕분인지 잘 지내고 있어요."

"내가 그 달마도 때문에 이렇게 안 왔나? 우리 신도들이 내가 그린 달마도가 인터넷에 나왔다고 하길래 봤더니만 여기서 <오마이뉴스>에 올린 것이더구만. 제선 엄마 때문에 내 요즘 신도들한테 달마도깨나 그려주고 있다 아이가. 뭐 그런 얘기를 써가지고…."

내가 지난 8월 <오마이뉴스>에 '한밤중 폐교괴담, 이보다 더 오싹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를 본 불자들 사이에 지산 스님의 달마도가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이었다.

고려 불화를 그려서 만든 병풍
고려 불화를 그려서 만든 병풍 ⓒ 오창경

"그랬군요. 저한테 괴황지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번에 스님이 설명 좀 해주시죠?"

괴황지는 회화 나무 열매의 즙액을 한지에 9번 바르고 말려서 만든 종이를 말한다. 마을 어귀에 주로 심어져 있는 큰 정자나무 중에 이 회화 나무가 많은 것은 잡신을 쫓고 약효가 뛰어나기 때문에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심은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부적을 그릴 때 쓰는 노란색 종이를 말하는데 요즘은 그런 정성을 들여서 일일이 괴황지를 만들어서 부적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산 스님은 그동안 탱화 그리기에만 전념을 했었는데 내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를 계기로 괴황지를 다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괴황지에 달마를 그려서 부적 삼아 붙여 놓겠다는 신도들의 청을 거절만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실 지산 스님도 괴황지와 달마도의 상관관계와 그 효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했지만 만드는 과정만으로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하기가 어려운 일을 하는 지산 스님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달마도 한 장이 더 걸리게 되었다. 이번에는 마치 처용탈처럼 험악하고 부리부리하게 생긴 달마가 우리 집에 떡 버티고 서서 온갖 잡신의 침범을 막아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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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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