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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새를 닮은 극락조화
제주 서귀포감귤박물관에는 새의 꽁지처럼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극락조화(極樂鳥花)이다. 그 이름이 그럴 듯 하다. 극락조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꽃을 보면서 나는 그 새에 대해 상상한다. 상상 속으로만 찾아 오더라도 싫지가 않다. 꽃과 새의 관계 앞에서 빠져드는 즐거운 혼동 때문에 낯설지도 않다.
극락조는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새라고 알려져 있다.
이 새는 불교와도 인연이 닿아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칼라빈카(Kalavinka)라 부르는데, 아미타경이나 정토만다라 등의 불경에서는 상상의 새로 그려진다. 여기에는 극락정토의 설산(雪山)에 살며, 머리와 상반신은 사람의 모양이고, 하반신과 날개, 발과 꼬리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의 '관음도'와 같은 불화에도 극락조를 볼 수 있다.
극락조에 얽힌 전설이 흥미롭다. 옛날 남태평양 외딴 섬에 왕후 귀족들의 연회장에서 독사와 새들의 결투가 벌어졌다. 맞붙어 싸운 것은 아니다. 새가 노래를 잘 하면 독사는 그 노래를 듣다가 잠에 빠져 패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음성 박자가 흐트러지면 독사가 새의 목을 물어 뜯는 시합이었다. 이 슬픈 결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새는 바로 극락조였다.
극락조의 수컷은 새끼가 태어나면 스스로 새 생명의 먹이가 된다. 그 새끼는 또 다시 아비의 노래를 기억하며 유전자에 남겨진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봄날의 새색시를 닮은 희망꽃
극락조화는 남아프리카가 고향이다. 꽃은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한다. 파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집에서 키우는 경우도 있다. '영구불변'의 의미도 있어 고달픈 인생살이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꽃이 되기도 한다.
꽃모양이 마치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양 같다. 극락조가 날아왔다면 이처럼 아름답게 앉아 있었을까? 길쑥한 꽃줄기 끝에 달린 화포는 영락없이 새부리이다. 한눈 팔다가는 새부리에 찔릴 수도 있겠다.
보면 볼수록 새와 닮은 모습이 신기하고도 하고 화려한 색상이나 생김새가 봄날의 새색시를 닮았다. 그런데 꽃말은 '사랑을 위해 멋을 부린 남자'라고 한다. 남자도 사랑을 하면 이처럼 멋쟁이가 될까? 황홀한 자태에 취해 다리가 풀리는 사람이 어디 여성뿐이랴.
극락조화를 바라보면서 즐거운 상상을 한다. 허둥대던 하루가 잠시 멈추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어디든 떠나고 싶다. 극락조가 사는 파라다이스 언덕은 아니겠지만, 따뜻하게 살아가는 세상 속으로 다가가 얼굴을 비비고 싶다.
하릴 없는 중생들이
고해에 잠든 사이
극락강 여울에 깃을 씻고
까마득한 어둠을 날아온
새여
이승에 잠시 날개를 접고
꽃으로 쉴 양이면
세상 괴로움 모두 거두어
푸등푸등
날아오르라
무명(無明) 구천(九天)을 다시 날아
연화정토
해탈문 보일 때까지.
- 손해일의 시 <극락조화>(極樂鳥花)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