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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토실토실 잘 익은 벼에 깜부기가 하나 보입니다. 예전엔 참 많았답니다.
아주 토실토실 잘 익은 벼에 깜부기가 하나 보입니다. 예전엔 참 많았답니다. ⓒ 김규환
무쇠 낫이 있었지만 날렵하고 가벼운 왜낫이 등장한 이후 벼 베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예년엔 보통 하루, 어른이 혼자서 1마지기 200평을 벤다고 했다. 새로 나온 낫은 1.5배에서 2배까지 이르게 되었다. 평야지대는 벌써 신식 탈곡기가 선보여 일찍들 가을걷이를 마쳤지만 시골마을은 여전히 더디기만 했다.

아침부터 바빴다. 온종일 집을 비워야하므로 쇠죽을 두 배나 퍼줬다. 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푸고 계셨다.

"엄니 오늘은 어디로 가요?"
"긍내기로 갈텡께 채비를 하거라."

"근디 홀태는 이라우?"
"그냥 가면 될 것이여."

"그냥 가면 오늘도 심들게 다 지고 내려올라그요?"
"아녀. 거그 가면 다 방벱이 있응께 포장허고 가마니나 지고 가그라."
"알겄구만이라우."

밥과 솥단지 포장, 가마니를 챙겨 산골로 들어갔다. 골골 들어가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산과 산 사이에 있던 극락골 논은 내가 젖을 빨고 있을 때 화전하여 일군 터라고 한다.

냇가에 있는 돌도 농기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냇가에 있는 돌도 농기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김규환
해발 500m가 넘어 누구도 접근하기 싫어하는 곳이다. 6.25 때와 당시에도 헬기가 뜨고 내리기를 반복하여 언제 간첩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지독히 외딴 곳이다. 그곳엔 우리집을 비롯하여 세 집의 논이 있었다.

다섯 살 때 무섭다며 아버지 밥 심부름을 안 간다고 하면 "조상님들이 있는디 뭔 소리여, 우리 아들을 지켜줄 것인께 아무 걱정 말고 댕겨와~"하며 등을 떠밀었던 선산에 있는 논이다.

모내기를 하면 모래땅보다 더 거칠어 손가락이 들어가지도 않았고 심어 놓은들 뜬 모를 두어 번은 해야 뿌리를 박는 척박한 땅이다. 아버지가 쟁기를 지고가기 힘든 해는 괭이와 호미로 파서 심기도 했다.

논이랬자 찬물만 들어왔다. 수온을 높여주려고 물길을 논 안에서 수십 번 빙빙 돌려보았지만 허사였다. 벼가 익지 않던 해도 많았다. 그러나 익기만 하면 들판 논과 달리 낫으로 베기도 힘들게 뻣뻣하고 벼이삭도 굵고 알찼다.

나락을 베어 둔지 닷새가 지났다. 마른 짚은 아직도 푸르스름하다. 누렇던 벼이삭은 한번 뒤집어놓았지만 귀와 단단히 붙어 있어 탱글탱글하다. 오늘은 산골짜기 다랑이 논이라 왕복 십리나 되는 먼 거리를 무겁게 지고 오르내리기 위해 일부러 묶을 일마저 없다.

베어둔 벼-장성 금곡영화마을에서
베어둔 벼-장성 금곡영화마을에서 ⓒ 김규환
이슬이 깨기를 기다렸다가 한데 모아나갔다. 어린 우리가 차곡차곡 쌓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간신히 들 수 있는 큰 돌을 계곡에서 하나 주워 반반하게 깔린 포장위에 조심히 내려놓으셨다. 나와 형제들도 하던 일을 마치고 끙끙거리며 각자 돌을 주워왔다.

이제부터 우린 온 종일 여기에 앉아서 죄 없는 돌에 볏단을 마구 쳐야 한다. 한 줌을 들어 넓게 펴고 앉은 채 사정없이 내리친다. 첫 번째는 살짝 치고 두 번째부터 다섯 번까지는 온힘을 다해 두들겼다.

"착착" "철철" 알갱이와 깜부기가 떨어지며 얼굴을 때린다. 얼굴을 훔치고는 재차 잡아 다시 때리기를 반복한다. 덜 여문 것 몇 개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이삭을 확인하여 죄다 털고는 볏짚을 한쪽에 쌓아 둔다.

네 배미 다락논이라지만 일곱 가마니는 나오니 몇 번을 털어내야 할지 모른다. 많이 쥐고 털면 벼이삭이 꿈쩍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적게 잡고 털면 하루가 아니라 이틀이 지나야 하니 난감한 일이다. 아귀힘과 후려치는 힘이 센 아버지와 어머니, 형들은 다소 양이 많다지만 손아귀에 들린 벼는 양이 뻔한 것 아닌가.

털어내는 족족 검불과 벼를 구별하여 잘 마르게 한쪽에 널고 온 식구가 한눈팔지 않고 열중하고 있는 산골짜기엔 다람쥐와 담비, 멧새만 오갈뿐 적막하기 그지없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람쥐가 소풍나왔나 봅니다.
다람쥐가 소풍나왔나 봅니다. ⓒ 김규환
나는 오줌을 누러 간다며 잠시 짬을 내서 보로 갔다. 보엔 아까 봐뒀던 독배(돌배)가 빨갛게 익어있다. 가시가 있는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잡고 열댓 개를 땄다. 하나를 깨물어보니 호두처럼 단단하다. 개복숭아처럼 크기만 컸지 아그배만도 못한 열매다.

몇 시간을 털었을까 배가 출출해지니 쌀에 된장과 고춧가루를 풀고 가재 몇 마리를 잡아서 함께 끓여먹고 오후 새참은 남아있던 밥에 무생채를 비벼서 몇 술씩 뜨고 매달렸다. 그렇게 하루를 붙잡고 있는 사이 '웃고 내려가서 울고 밥 한다'는 극락골엔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부랴부랴 챙겨 가마니와 부대자루에 나눠 담아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깊은 밤이었다. 개상(볏단을 태질 하는데 쓰는 농기구. 굵은 서까래 같은 통나무 네댓 개를 가로대어 엮고 다리를 박은 도구)과 탯돌(타작할 때 태질에 쓰는 돌)은 집에서 쉬고 있었다. 둘 없이도 산골짜기 추수가 끝이 났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올벼를 찧어 햅쌀밥 먹을 생각을 하며 곤히 잠을 잤다.

아그배는 앵두만한 크기인데 돌배는 복숭아 씨보다 크지만 거의 씹히지가 않습니다. 술 담그면 참 시원하고 깔끔한데 요즘엔 만나기 힘들더군요.
아그배는 앵두만한 크기인데 돌배는 복숭아 씨보다 크지만 거의 씹히지가 않습니다. 술 담그면 참 시원하고 깔끔한데 요즘엔 만나기 힘들더군요.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이번 주말 벼 탈곡을 직접 체험하러 장성 금곡영화마을에 내려갑니다.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림같은 마을입니다. 같이 가실 분은 011-9043-4549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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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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