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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집행부 총사퇴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기자회견장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던 반대파 조합원이 기자회견장에서 밀려나와 부숴진 피켓과 함께 복도에 서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 총사퇴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기자회견장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던 반대파 조합원이 기자회견장에서 밀려나와 부숴진 피켓과 함께 복도에 서 있다. ⓒ 시민의신문 양계탁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사퇴의 변을 발표한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위원장실 앞에서 집행부및 관계자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사퇴의 변을 발표한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위원장실 앞에서 집행부및 관계자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있다. ⓒ 시민의신문 양계탁

민주노동 운동이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뇌물 비리 사건으로 비롯된 위기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일 오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1년8개월 만에 총사퇴를 선언하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는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외부적으로 국민들의 싸늘한 비난 여론 앞에 직면해 있다.

사건은 올해 초부터 예견됐다. 기아차 노조의 취업 장사는 비리의 온상이 된 대기업 노조의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머리를 숙여 사죄하고 자정 운동을 벌였지만 사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월 1일 '사회적 교섭' 참여를 놓고 벌어진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는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와 민주노총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의 취약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말 바꾸기와 내부 반발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이 비리로 구속된 이후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여준 모습은 더욱 실망스럽다. 애초 이수호 위원장은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9일 직무정지를 선언했다가 11일 직무정지를 풀고 '하반기 투쟁 뒤 조기선거'로 입장을 바꿨다.

입장을 변경한 이유는 '지도부 비리를 이유로 정부가 비정규 법안을 강행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이수호 위원장은 당시 사퇴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일부 집행부의 만류로 '한시적 현체제 유지'가 채택됐다.

그러나 비리 집행부에 대한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은 거셌다.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는 사무총국 13명의 집단사퇴와 37개 단체의 공동성명, 18일 중앙위원 9명의 지도부 사퇴 공식 요구는 이수호 위원장을 더이상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수호 위원장은 20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도부의 입장을 그대로 견지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 가져올 조직의 분열과 투쟁전선의 혼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수호 위원장이 사퇴의 변을 밝히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빠져나오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이수호 위원장이 사퇴의 변을 밝히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빠져나오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시민의신문 양계탁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내부는 바닥을 그대로 드러냈다. 도덕성과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노조 운동이 새롭게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보다는 '정파 논리'를 앞세워 서로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단적인 예가 20일 사퇴 기자회견장 풍경. 이수호 위원장 기자회견이 예정된 오전 11시 건설산업연맹 이용식 전 위원장은 '이수호 사퇴' 피켓을 들고 있는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전노투) 소속 노동자들에게 "위원장이 사퇴하겠다는 마당에 지금 뭐하는거냐, (피켓을) 치우라"고 요구했고, 전노투 노동자들은 "제대로 했으면 안 그랬잖아"라며 대립해 물리력이 동원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기자회견은 회견문으로 대체됐다.

이를 두고도 현 지도부는 "위원장이 사퇴하는 마당에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고, 반대 쪽에서는 "그냥 피켓이 있는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되지 않느냐, 기자회견을 취소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고 맞섰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민주노총 산하 연맹 관계자는 "단결과 연대는 없고, 정파 논리만 남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추락한 신뢰 회복 쉽지 않아

사퇴의 변을 밝힌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현관을 빠져 나오고 있다.
사퇴의 변을 밝힌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현관을 빠져 나오고 있다. ⓒ 시민의신문 양계탁
민주노총은 21일 오후 중앙집행위원회 열어 지도부를 대신할 비대위를 구성키로 했지만, 누가 비대위를 맡게 되더라도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계속 민주노총이 내부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으로 내홍이 장기화될 경우 외부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하지만, 민주노총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여기다 정부와의 대화 복원이나 정부가 제안한 국민 대통합 연석회의 참여도 불투명하다. 내부적으로는 조직력을 복원하고, 외부적으로 여론을 설득할 모습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이상 민주노총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소속 연맹의 한 관계자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쌓아올린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제자리를 찾지 어렵겠다는 두려움마저 든다"고 말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 민주노총은 지금 갈림길에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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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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