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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량은 결국 장판수의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그 무모한 계획에 대해 막막한 심정은 감출 수 없었다. 비록 장판수가 일을 마친 후에 심양으로 와서 사람들을 조선 땅으로 데려온다고 하나 앞날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판수가 잠시 눈을 붙이겠다고 자리에 누웠을 때 계화가 상을 들고 문간에 들어섰다.

“허! 이게 다 무엇이오?”

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 세 마리와 술병이 얹혀 있었다.

“부윤께서 하인을 시켜 준비해놓은 것입니다. 아까는 대접이 박했다며 이리로 들이라 일러두었다 합니다.”

차예량은 형이 오면 같이 먹겠노라며 손을 저었지만 장판수는 그 상을 덥석 받았다.

“보아하니 나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는데 닭이 눈에 들어오겠네? 내래 기렇게 하겠다고 나중에 말하면 찬 없는 꽁보리밥도 달게 자실 터이니 일단은 먹고 봅세. 산길을 다니며 칡뿌리면 씹어 대었더니 이런 게 그리웠다우.”

차예량은 닭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장판수는 별로 즐기지 않던 술까지 부어서 죽 마셔대더니 계화에게 닭다리를 찢어 권하기도 했다.

“괜찮습니다.”
“어허, 어찌 이걸 우리만 먹고 말란 말이네? 괜히 내외할 것 없으니 어서 들게. 차 아우도 그러지 말고 어서 들게나.”

세 사람은 잠시 동안 삶은 닭이 놓인 개다리소반을 사이에 두고 닭을 찢어 씹어 삼키느라 조용히 입을 오물거렸다.

“계화야. 넌 앞으로 어쩔 작정이냐.”

차예량의 느닷없는 질문에 계화는 닭다리 뼈 하나를 손에 든 채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난 심양으로 갈 참이다. 가서 조선 사람들을 데려올 작정이다.”

그 말에 계화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저도 마땅히 참회하는 심정으로 따라 갈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 네가 아녀자의 몸이라 갈 곳이 없어 그리하는 것이라면 편지 한통을 적어 줄 터이니 한양으로 가서 내 종친 댁에 몸을 의탁해라.”
“아닙니다. 저도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리해야 옳다고 보옵니다.”
“니래 심양에 가서 뭘 할 수 있갔어? 방해만 될 뿐이야.”

장판수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계화는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심양에는 가족과 떨어져 붙들려간 아녀자들도 많습니다. 그들을 위무하고 데려오려면 아녀자의 재주도 만분지일이나마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맘대로 하라우.”

장판수는 더 이상 신경 쓸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닭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쭉쭉 빤 후 자리에 누워 버렸다. 하지만 차예량은 그렇지 않았다.

“심양으로 가서 일이 잘못되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찌 고집을 부리느냐? 참회하는 심정이라는 것은 또 무어냐? 네가 언제 뭘 잘못 한 거라도 있었다는 것이냐?”

계화는 닭 뼈가 가득 놓인 소반을 천천히 치우며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그런 건 아니옵고...... 절 거두어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것입니다.”

차예량은 순간적으로 계화의 간절한 목소리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의 가슴은 계화와 함께 있고 싶다며 쿵쾅거리고 있었지만 앞일을 생각한다면 정녕 그럴 수는 없었다.

“차 아우, 그렇게 하라우. 사서 고생을 하갔다는 데 말릴 재간이 있갔어?”
“장 형!”

차예량은 자신의 속을 몰라주는 장판수가 야속해 소리쳤지만 장판수는 능청스레 눈을 감고 잠을 청했고 계화는 굳은 표정으로 소반을 든 채 조용히 방에서 물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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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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