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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로 열심히 말을 전해주는 사회자
수화로 열심히 말을 전해주는 사회자 ⓒ 양중모
장애인 영화제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영화를 관람하러 온, 길게 줄을 선 장애인들로 포위된 듯한 상황이 못내 거북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여기 저기 많이 다니면서, 지체 장애인들과 스스럼없이 얘기해보았고, 우리 아파트 옆 복지원에는 시각 장애인들이 살고 있어 그들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과 함께 사는 법에 대한 공부는 여전히 미숙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다.

무료라는 말로 같이 데려온 친구와 나, 그리고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 앞 뒤에 서 있거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 수화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가장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건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보통 길을 지나가다가 휠체어를 타거나 수화를 하는 이들이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그들에게 살짝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다른 이들에 비해 몸이 조금 불편한 뿐이지만, 때론 부담스러운 시선도 느껴질 것이 분명한데, 그들이 사회에 자주 나와 노출되어 살아가기란 보기보다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20일 장애인 영화제 개막식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상시에는 장애인들을 사회 속의 이방인이라 생각했는데, 그 곳에서는 나와 내 친구가 이방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들 수화로 대화를 하는 상황이었기에 수화를 할 줄 모르는 친구와 난 오히려 어색해져 이방인이 된 듯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야, 이거 우리가 여기 있으니까 되레 어색하네."

처음 장애인 영화제에서 관람료를 받지 않고 선착순으로 신청만 하면 무료 입장시켜주겠다는 말에 좀 의아해했었다. 비록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인기가 많았던 영화나 최신 개봉작들도 있기에 비장애인들도 많이 몰린 텐데, 그러다 정작 장애인이 영화를 못 보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난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장애인 영화제라는 것이 오로지 장애인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영화를 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청각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스크린
청각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스크린 ⓒ 양중모
사실 한국 영화에 자막이 나오는 극장이 극소수인 만큼, 이런 영화제에서 가장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장애인이라는 게 내 기본적 생각이었다. 그래서 짧은 생각에 무료라는 말을 듣고 비장애인들이 몰려 정작 장애인들은 보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럴까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잘 생각해보면, 장애인 영화제를 통해 정말 이루어야 할 것은 장애인들에게만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런 어색함 없이 함께 문화생활을 공유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갈 기초를 다져주는 것이었다. 그런 기회가 많이 있었다면, 그 곳에서 내가 그렇게 어색하게 멍하니 서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자꾸 보이고, 자꾸 들으면서 처음에는 어색하다고 느꼈던 것들도 점차 익숙하게 느낀다. 나 역시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어색함에 빨리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편했다. 하지만 개막식부터 청각 장애인을 위해 자막이 나오고, 수화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간간이 지나다니는 자원봉사들까지도 간단한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것을 보면서, 영화 관람 후 전철을 타러가면서 가는 길에 수화를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어도 별다른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장애인 이동권 등 장애인이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에 대해 그걸 고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으면 뜻을 같이 해주는 사람은 많아도,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직 많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기가 불편해 자주 접할 수 없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우리들 마음 속에 '그들은 나와 다르다'는 선입견이 또한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애인이 보다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영화관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 시설이 보다 잘 갖추어졌을 때를 대비해 우리도 이제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들과 섞여 있으면서도 그들을 가끔 곁눈질로 쳐다보는 것이 아닌 그저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 말이다.

아직 그런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이 나라이기에 더 늦기 전에 제 6회 장애인 영화제에 가서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조심해서 쓴다고 했는데, 장애인들이 감정이 상할만한 내용이 포함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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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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