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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 명소인 포항시 대보면 호미곶.
해돋이 명소인 포항시 대보면 호미곶. ⓒ 포항해경
포항시 대보면의 호미곶은 손꼽히는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지만 100년을 걸쳐 바닷길을 밝혀온 대보등대와 국내에 하나뿐인 등대박물관도 있어 더욱 유명하다. 국내 최대의 대보등대는 일본이 발주하고 프랑스인이 설계하여 1908년 12월에 점등한 걸로 기록돼 있다.

대보면 호미곶은 육당 최남선 선생도 대한십경의 하나로 기록할 정도로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왜 하필 이 곳에 등대를 만들었을까? 호미곶의 등대박물관 입구 비석에는 '1901년 일본수산강습소실습선이 이 부근에서 좌초, 침몰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한국의 바닷길을 오갈 자국의 필요에 의해 대보등대를 만든 것이다. 호랑이 꼬리처럼 생긴 지형은 심한 풍랑이 오면 선박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화물선이 높은 파도에 떠밀려 암초에 좌초됐다는 소식을 듣고 22일 오후 대보면 구만리의 사고 현장으로 갔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한꺼번에 4천 톤 가량의 철재를 운반하던 선박(압항부선 SK-8호)은 암초에 걸린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남쪽을 향한 뱃머리에 암초가 단단히 걸린 모양.

23일 사고선박 선원 구출 장면
23일 사고선박 선원 구출 장면 ⓒ 포항해경 제공
구만리 앞바다의 '교석초(다리돌)'. 마고할멈의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다.
구만리 앞바다의 '교석초(다리돌)'. 마고할멈의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다. ⓒ 최찬문
수중등대
수중등대 ⓒ 최찬문
마을 어르신에 따르면 구만리 앞바다에는 풍랑이 잦고 암초도 많아 선박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구만리에는 다른 마을과 달리 뱃길안내를 위한 수중등대를 암초 위에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도 선박이 '교각초(다릿돌)'에 좌초되어 일어났다.

잦은 선박사고 때문일까? 구만리에는 다릿돌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에 마고할멈이 영덕군 축산 쪽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돌다리를 놓아가다가 닭울음소리가 날 때까지 다 놓지를 못했다'는 애통한 내용이다.

이와 더불어 구만리 해안 언덕에는 일본인의 선박사고를 기념하는 비석이 아직도 우뚝 서 있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이 세운 기념비에는 '1907년 9월 9일 범선 '가이요 마루'호를 타고 실습에 나섰던 일본수산학교(현 동경수산대) 강습선이 태풍을 만나 이곳에 좌초하여 학생 3명과 교수 1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일본말로 이러한 내용은 담은 작은 비석 하나가 있고 큰 기념비에는 비문 중 '메이지(明治)'나 '다이쇼(大正)' 같이 연대를 표시한 부분은 알아볼 수 없도록 한 흔적이 보인다. 지금도 매년 동경수산대 학생들이 실습선을 타고 이곳에 참배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공교롭게도 한·일 회담 문서가 공개된 날에, 해양 환경학과 4학년 학생 27명이 이곳에 방문했으며 내후년에는 대대적인 '조난 100주년 기념행사'를 이곳에 할 것을 밝혔다.

1907년 일본수산대(현, 동경수산대) 강습선이 태풍으로 암초에 좌초된 기록을 담은 기념비
1907년 일본수산대(현, 동경수산대) 강습선이 태풍으로 암초에 좌초된 기록을 담은 기념비 ⓒ 최찬문
일본인 조난 기념비 옆으로 죄초된 화물선이 보인다.
일본인 조난 기념비 옆으로 죄초된 화물선이 보인다. ⓒ 추연만
아픈 현대사의 현장을 보니 씁쓸한 생각이 절로 든다. 8.15를 맞은 주민들은 일본에 대한 항거로 이 기념비는 넘어뜨렸으나 1970년대에 다시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 지금도 이 일본 비석은 보존 논란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올해 6월 광복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도 '일제 잔재'로 현장실사를 벌이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일제시대에 구만리에 정어리기름공장이 열 개 넘게 있었다고 한다. 큰 바다에 노출된 지역인 탓으로 다른 곳과 달리 높은 파도와 샛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지만 이 곳은 예로부터 고기가 많이 잡힌 지역이라는 것이다.

'까꾸리개'라 불리는 갯마을도 있다. 이 지역에 풍파가 심하면 고기들 특히 청어(靑魚)가 뭍으로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갈구리(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어쨌든 아픈 역사를 간직한 구만리에도 풍요와 웃음이 넘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구만리 마을에서 본 앞바다
구만리 마을에서 본 앞바다 ⓒ 최찬문
해국이 곱게 핀 구만리 바닷가
해국이 곱게 핀 구만리 바닷가 ⓒ 최찬문
화산암인 갯바위 모양이 흡사 공룡이 걷고 있는 모습이죠
화산암인 갯바위 모양이 흡사 공룡이 걷고 있는 모습이죠 ⓒ 최찬문
갈매기
갈매기 ⓒ 최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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