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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구 먹어 폭탄 맞은 것처럼 죽어버린 벼의 모습이 휑하니 구멍뚫린 농민들 마음같기만 합니다.
멸구 먹어 폭탄 맞은 것처럼 죽어버린 벼의 모습이 휑하니 구멍뚫린 농민들 마음같기만 합니다. ⓒ 이규현
가을이 깊어갑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이곳 담양의 들녘도 텅 비워져 갑니다. 높푸른 하늘에 반비례 하듯 노오랗게 물들어 있던 들판의 곡식들이 다 베어져 갑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마음도 풍요로웠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제는 텅 빈 가슴이 되어 버립니다. 저 들녘에 휑하니 부는 바람처럼 구멍난 가슴에 드는 찬바람이 이렇게 시립기만 합니다.

어제는 콤바인 작업을 끝내고 돌아온 후배와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도 짓고 부모님도 모시고 살겠다는 소박한 꿈이 전혀 영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입니다. 이렇게 풍성한 가을, 자신의 꿈도 결실을 맺길 바라는 후배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1350평의 논에 모내기를 하고 거름 주고 농약 치며 새벽 같이 논두럭 풀 뜯어주고, 매일처럼 물꼬 보러 다니면서 애지중지 키워 벼를 수확했는데 모내기 하고 논갈이 비용으로 54만 원 주고 콤바인 작업 비용 주면, 몇 가마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거저거 떼고 나니, 정말 겨우 네 식구 먹고 살 식량과 형제들한테 조그마한 쌀자루 하나 보낼 정도밖에 안 되니, 정말 이제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한숨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내가 농사 지으러 다니면서 늘상 벼들에게 속삭이듯, '너희들 잘 크냐' 하고 문안인사 하면서 느끼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건강 외엔, 농사 지어서 남은 게 하나도 없네요",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삶의 편린들은 우리에게 감상이 아닙니다. 냉혹하기만한 현실 속에서 대형비닐하우스를 하다가 도저히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한 후배는 밤봇짐을 싸서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안타까운 이런 현실들이 일상이 되다 보니 이제 가을이 되면 더욱 더 비어가는 들판처럼 우리네 가슴들로 텅 비나 봅니다.

길가에서 따사로운 가을 빛에 나락을 말리는 농민들! 저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무거운 벼가마니를 몇 번씩이나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해야 합니다. 비라도 올라치면 비닐 가져다 씌워주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곡식인데 식량 대접을 못받습니다.
길가에서 따사로운 가을 빛에 나락을 말리는 농민들! 저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무거운 벼가마니를 몇 번씩이나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해야 합니다. 비라도 올라치면 비닐 가져다 씌워주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곡식인데 식량 대접을 못받습니다. ⓒ 이규현
더욱이 올해는 멸구가 많이 먹어 수확량도 더 떨어지고 추곡 수매는 폐지되어 나락 값마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처럼 급강하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만 원이 넘던 40킬로그램들이 조곡이 지금은 3만 5천원대이니 해도 너무 합니다. 농협에서는 4만 2천원대에 사들이고 있지만 내심 경영상의 문제를 고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나오는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대개 300평당 벼 수확량이 500킬로그램 정도 됩니다. 900평이 한 단지로 보통 되어 있으니, 이를 기준으로 하면 1500킬로그램 정도의 조곡이 나오게 됩니다. 40킬로그램으로 40개 정도를 잡더라도 줄잡아 160여만원의 조수익이 나오게 되죠. 기본적으로 경운, 정지 비용이 15만 원 정도이고, 육묘이앙 비용이 30만 원이 넘습니다.

거기에 수확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5만 원 정도이고 농약 한 번 할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이 4~5만원, 비료값과 농약값 등을 더하면 생산에 필요로 되는 기계 사용료만해도 벌써 100만 원이 넘지요. 자기 땅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한 단지당 보통 4가마 정도의 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니 그럴 경우엔 남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해일 거 같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농사 지어서 뭘 남길 바라는 것보다는 그저 묵정논 만들기 싫어서 억지로 농사를 짓게 되는 것이지요. 폭탄 맞은 것인 양 멸구 먹어 죽어버린 논바닥처럼 휑하니 뚫린 농민들 가슴팍으로 무거운 나락들이 얹어집니다. 이젠 노인들밖에 없어 40킬로그램이 채 못 되는 콤바인 포대를 들기도 힘에 버겁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젊은이들의 몫입니다. 하루에 7~8단지를 수확하는데 한 단지마다 60개 정도씩 나오니 500여개 정도의 나락을 들었다 내렸다를 해야 하는 고된 일입니다.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몸은 천근만근인데 그래도 농협의 미곡처리장에 산물벼로 가져가는 게 저 좋기 때문에 멀리 있는 미곡처리장까지 운반해 가다 보면 어느덧 밤은 깊고 때론 날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름값 등의 인상으로 건조비가 무지 상승하여 중량이 많이 빠진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농민들에겐 죽을 맛입니다. 오랜 세월을 농사만 지어 오신 영감님의 말씀이 너무도 가슴 시리게 다가옵니다.

"저 놈들이 바로 내 자식이여. 긍게 행여 논갈이 할 때도 높은 데는 낮춰주고 낮은데는 높여줘서 모두 다 거름물이며 뭣이든 다 골고루 잘 받아먹게 맹글고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왔어. 근디 이제 저놈들이 웬수구만… 웬수여…."

우리 농민들은 평등과 평화가 삶의 한 가운데 배어 있는 사람들인데, 그토록 한평생을 농사짓듯 모두에게 평등하게 살아 온 농민들의 가슴에 이 가을은 나락값 하락과 대책없는 농정으로 못을 박고 있습니다. 저무는 햇살과 함께 불어오는 찬바람이 쓸쓸한 들녘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10월 28일 담양군청 앞에서 다시 벼 야적 시위를 한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함께 하는 거구요. 더 안타까운 것은 국민들마저도 이젠 농민들의 마음을 이전처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최근 중국 농산물의 안전성 문제 등에서 보듯 우리 농산물이 우리 밥상에서 제 자리를 차지하고 아울러 일하는 농민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실천해 나갔으면 합니다.

이 글은 멀티채널을 꿈꾸는 인터넷 담양신문 "담양저널(www.dyj.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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