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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수 가옥은 겉에서 보면 푸른 잔디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고가로 보입니다.
ⓒ 박미경
"엄마, 귀신집 같애! 귀신 나올거 같아서 무서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람이 안 살아서 그래."
"문화재라면서? 무슨 문화재가 귀신집 같대, 다른 데로 얼른 가자. 으~~~"
"응, 그래, 좀 그렇긴 하다."

아이들과 함께 지난 주말 문화유적지 답사를 한답시고 국가지정 문화재인 양승수, 양동호 가옥을 찾았다가 정말 난감했습니다. '문화재'라고 부르기에 너무 허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이 찾은 양승수 가옥은 지난 1984년 1월 10일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154호로 지정됐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둘러본 양승수 가옥은 문화재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요민속자료 154호로 지정된 양승수 가옥에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도 사람이 살았다고 합니다. 지은 지 얼마되지 않은 듯 나무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보수한 티가 역력한 대문을 여니 '삐그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겨줍니다.

넓은 마당에는 잔디가 파릇파릇 하고 멀찍이 보이는 건물은 고즈넉한 것이 옛사람들의 향기가 묻어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가옥 앞으로 가까이 갈수록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아심이 들더니 집 앞으로 가까이 다가간 순간 저희 가족은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 문화재로 지정된 양승수 가옥안을 들여다보면 이곳이 정말 문화재일까 싶습니다.
ⓒ 박미경
판자가 떨어져나가 휭하게 구멍이 뚫렸거나 푹 꺼져버린 툇마루,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지붕, 구멍 송송난 문짝의 창호지…. 문화재라기보다는 낡고 헐어 누군가 버려놓은 폐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아무리 문화재라도 집이니까 낡을 수 밖에 없지'하고 생각하며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 순간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문화유적답사한답시고 이곳을 찾은 저의 어리석음을 한탄해야 했습니다.

집안곳곳에 얼기설기 늘어져 있는 전선, 버려진 냉장고·선풍기·싱크대, 마음대로 굴러다니는 그릇·밥상·수세미 등 온갖 살림들이 널려있었습니다. 또 곰팡이 냄새 푹푹 나는 헌 이불이며 베개 등 집주인이 미처 챙기지 않은 온갖 살림살이들이 집안 곳곳에 을씨년스럽게 널려있었습니다.

문화재라기보다는 누가 살다가 버려놓고 간 집을 연상케 했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넓은 잔디 위에 우뚝 선 고즈넉한 향기가 묻어나는 고가(古家)였으나 집안 곳곳을 들여다보니 을씨년스럽고 적막해 금방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듯한 폐가였습니다. 소름이 끼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화재 관리를 맡고 있는 해당기관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이곳을 문화재로 제대로 관리 감독해 왔는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곳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라는 걸 알면서도 온갖 잡동사니를 버려두고 홀연히 떠난 것인지 참 궁금해졌습니다.

누군가 문화재 관리에 관심을 갖고 한번쯤 이곳을 찾아봤더라면 문화재가 이렇게 방치되고 허술하게 관리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아이들 보기가 민망해졌습니다.

발길을 돌려 나오다가 멀리 전주에서 화순에 있는 친척집에 들렀다가 전통가옥이라고 해서 보고 가려고 일부러 왔다는 한 가족을 만났습니다.

"무슨 문화재 관리를 이렇게 하느냐?"며 "이곳이 정말 문화재가 맞긴 맞느냐?"는 물음에 저희는 "우리도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얼버무리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차마 우리가 화순에 살고, 이곳은 화순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줘서는 안될 부끄러운 치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을 찾아내 보전하고 계승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화재를 보전하는데 있어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가치있는 문화재를 발굴해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보다 그 문화재가 가치를 인정받고 그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매년 문화유산을 발굴해 몇 건의 문화유산들이 문화재로 지정됐고, 우리 지역은 몇 건의 문화재가 있는 자랑스런 고장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문화재의 가치가 손상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해당 기관들의 노력이 아쉽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의 소식을 알리는 디지탈 화순뉴스(http://www.hwasunnews.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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