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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히 널려 있는 하얀 수세미
가지런히 널려 있는 하얀 수세미 ⓒ 김정혜

문득 한곳에 시선이 머뭅니다. 우리 집 빨래 줄에 뭔가 하얀 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가을볕이 아까워 햇살 따사로운 오후만 되면 늘 이불을 내다 널곤 했었는데 이미 그 빨래 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것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야?"

손을 갖다 대어 조심스럽게 만져보니 까칠까칠합니다. 생긴 것으로 보나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으로 보나 영판 수세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수세미를 따야겠다고 벼르던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얀 것이 짙푸른 수세미 속에 들어 있었단 말인데. 긴가민가 고개만 갸웃거리다 어머니께로 달려갔습니다.

"엄마! 밖에 빨래 줄에 널린 거 저거 진짜 수세미예요?"
"그럼 진짜 수세미지, 가짜 수세미도 있냐?"

"아니 제 말은 그 말이 아니고. 밖에 달려 있던 그 푸른 수세미 안에 진짜 저 하얀 수세미가 들어 있었어요?"
"그래. 그렇다니까."
"어머 정말인가보네. 거 참 희한하네. 정말 수세미 안에 수세미가 들어 있었네…."

하늘과 맞닿은 듯 피어난 노란수세미꽃
하늘과 맞닿은 듯 피어난 노란수세미꽃 ⓒ 김정혜

나이 마흔 둘에 그것도 시골에 사는 저로선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수세미 속에 진짜 수세미가 든 줄은 처음 알았을 뿐더러 보는 것도 난생 처음입니다.

올봄. 어머니는 물탱크 옆에 수세미를 심으셨습니다. 여름이 되자 수세미는 둥그런 물탱크를 칭칭 감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줄기를 뻗어 나갔고 보기에도 앙증맞은 노란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가을이 되자 길고 짙푸른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오이처럼 생겼지만 오이보다 월등히 큰 수세미
오이처럼 생겼지만 오이보다 월등히 큰 수세미 ⓒ 김정혜

나는 주렁주렁 달린 수세미를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호박이나 오이처럼 먹는 건 줄 알았습니다. 생긴 건 천생 호박이나 오이와 다를 게 없는데 왜 하필 이름이 주방에서 그릇 닦을 때 쓰는 수세미와 같은지 뭔가 그것과 연관성은 있겠거니 가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습니다.

"엄마! 어떻게 수세미 안에서 저렇게 하얀 진짜 수세미가 나오는 건데요?"
"니 어데 가서 내 딸이라 카지 마라. 아이구 창피해서 원… 잘 봐라. 이 짙푸른 수세미가 어떻게 해서 하얀 수세미가 되는지."

소금을 조금 넣고 푹 삶는다.
소금을 조금 넣고 푹 삶는다. ⓒ 김정혜

이미 가스 불 위에 얹어진 커다란 냄비 안엔 푹 익은 수세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수세미를 삶을 땐 소금을 조금 넣고 삶아야 껍질이 잘 벗겨진다고 어머니는 말씀 하십니다. 푹 익은 수세미의 푸른 겉껍질을 벗겨내니 실 모양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하얀 섬유조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얀 섬유질 사이사이 씨를 빼내고 빡빡 문질러 여러번 씻는다.
하얀 섬유질 사이사이 씨를 빼내고 빡빡 문질러 여러번 씻는다. ⓒ 김정혜

어머니는 그 하얀 것을 빡빡 문질러 여러 번 씻어 냅니다. 꼭 호박씨 모양을 한 수세미 씨가 우두둑 떨어져 나옵니다. 어지간히 씨가 빠져 나온 모양입니다. 바구니에 받혀진 그 하얀 것을 밖으로 가져 나온 어머니는 팔을 앞뒤로 마구 흔들며 물기를 털어 내십니다. 이윽고 빨래 줄에 그 하얀 것이 널렸습니다. 바로 수세미입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난생 처음 마주한 수세미가 도대체 어떤 식물인지 궁금하여 몇 가지 알아보았습니다. 수세미는 박과의 1년생 덩굴성식물로 수세외, 수세미오이라고 불린다고도 합니다. 줄기는 갈라지고 덩굴손을 내어 다른 물체를 칭칭 감으면서 올라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잎은 오이 잎과 비슷하고 꽃은 7~10월에 달린다고 합니다.

어린 것은 식용으로도 쓰이지만 성숙한 것은 섬유질이 그물모양으로 열매 안을 조밀하게 채우고 있어 다른 용도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열매 이름이 수세미인 것은 섬유질조직을 수세미로 이용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성숙한 섬유는 주로 선박기관 및 갑판의 세척용 슬리퍼 그리고 바구니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합니다.

수액은 화장품의 원료로 쓰이기도 하고 열매는 통경, 진해, 이뇨 등의 약용으로도 쓰이고 액즙은 향료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식기를 닦을 때 수세미를 많이 이용하기도 했는데 수세미는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많이 사용됐다고 합니다. 산후에 젖이 붓고 아프면서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수세미를 달여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고 합니다.

또 수세미는 성질이 차서 몸에 열이 많아 생기는 가래를 삭이고 뜨거운 피를 식혀 줌으로써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소염작용을 하기도 하며 변비 축농증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증상들을 치료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또 씨와 잎은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이 있으며 껍질과 뿌리는 진통 소염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민간에서는 축농증일 때 수세미 줄기를 잘라 그 수액을 먹는다고 합니다.

하얀 수세미가 가을볕을  받아 잘 말라가고 있다.
하얀 수세미가 가을볕을 받아 잘 말라가고 있다. ⓒ 김정혜

빨래 줄에 가지런히 널린 수세미를 바라봅니다. 촘촘하게 얽혀 있는 하얀 섬유질 사이로 햇살이 반짝입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는 참으로 유익한 식물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식용으로 약용으로 향료로 또 그릇을 닦는 수세미로 또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줌에 정원수로도 사랑받는다는 수세미. 우리 집 빨래 줄에 널린 하얀 수세미가 가을 오후를 유난히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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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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