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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대 후반, 군사정권 아래 왜곡 된 학교사회를 통렬히 비판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 사이더스
"영어명사엔 딱 다섯 가지 밖에 없다. 자, 따라 해봐라. 고, 추, 보, 집, 물!(고유, 추상, 보통, 집합, 물질명사의 앞 글자) 이기 뭐꼬? 고추가, 지를 만나면 물이 나온다 이말 아이가. 아, 새끼 좋단다. 와, 니는 안 나오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 영어 선생님의 대사-


단순히 영화의 한 장면이라 치부하고 웃어넘길 수만 있을까.

70~80년대 중·고등학교(특히 남자학교) 시절. 스스로 인기 있다고 착각하는 '남자' 선생님 중에는 이처럼 짓궂은 음담패설을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나른한 오후 수업시간, 행여 졸기라도 할라치면 밤새 자위행위(실제 이보다 저급한 표현을 써가며)를 얼마나 했기에 그 모양이냐며, 자신은 그 나이 때 하룻밤에 수십 번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성적 우월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체육시간, 남들보다 체력이 다소 약한 아이들에겐 "그래 가지고 나중에 결혼하면 밤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다른 학생들의 웃음거리로 전락시켰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에겐 "결국 공부 잘하는 녀석이 '그 일'도 잘 한다"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정권이 강요한 3S, 특히 성문화

밤마다 술과 성(性)의 향연으로 '뼈와 살이 타는 밤'을 즐겼다는 독재자가 저문 후 등장한 신군부. 신군부 정권은 인구에 회자되는 3S(Sports, Sex, Screen) 정책으로 국민들, 특히 민주화 열기에 달아오른 젊은이들의 열정을 무마하려 애썼다.

당시 스포츠는 제쳐두고라도 섹스와 스크린은 절묘한 궁합이었다. 인간의 가장 은밀한 호기심과 만난 영상매체는 남성들에게 성적인 환상을 심어주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고 이는 사회 저변으로 확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억눌린 시대 분위기에서 어린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오로지 성적 분출이었고 기성세대 역시 그 쪽으로는 다분히 관대했다. 소위 '음란물'을 소지하다 적발된 학생에겐 그 내용을 문제 삼기 보단 '꼴에 남자라고'하며 "나중에 다 알게 된다"는 식의 가벼운 질책뿐이었다.

덕분에 아이들 사이에선 그런 경험이 일종의 무용담이 되어갔다. 쉬는 시간이면 음란물을 압수당하기 전 미리 보았다는 친구들의 증언이 과장되어 전파됐고, 미처 눈으로 확인 못한 아이들에게 성(性)은 상상속의 판타지로 굳어졌다. 거기에 때론 선생님도 빼앗은 책을 은밀히 즐기더라는 제보가 더해지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 당시 떠돌던 소위 '황홀한 사춘기'나 '붉은' 비디오테이프 등이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나같이 근친 등 비정상적인 내용 일색이었지만 누구하나 그 내용 자체에 대해 지적하진 않았다.

훈계라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가 다였고 그 후에 붙는 이야기는 "여자들은 다 똑같다" "좋은 대학과 직장을 가지면 죽도록 하게 된다"는 식의 막연한 동기(?) 부여와 뒤틀린 가르침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고만고만한 성적 지식을 늘어놓으며, 성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이기 일쑤였다.

ⓒ 스투닷컴 '일쌍다반사' 中
군 생활 음담패설의 시작 "너 애인 있어?"

그렇게 학창시절 만들어진, 굴절된 성지식을 채 고치기도 전에 향하는 곳은 군대. 그 곳에선 피학적 음담패설의 재판정이 기다리고 있다. 더플백을 멘, 겁먹은 이등병에게 날아오는 첫마디는 어쩌면 그리도 변하지 않을까.

"너 애인 있어?"

다행히(?) 없을 경우엔 그럼 "누나나 여동생이 있냐?"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만 운이 없게도(?) 사귀는 이가 있을 경우엔 십중팔구 그녀와의 성관계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추궁당해야 했다.

이 세상에 그토록 사람을 참담하게 만드는 심문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 있었던 사적인 부분을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털어 놓아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 그러나 폭압적 분위기는 긴 시간을 허용치 않았다.

쭈뼛대거나 우물거리다간 진실을 말할 때까지 대가리를 박고 있어야 했기에(이때 실제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이실직고(?)를 하고 그 횟수와 장소를 재구성해 들려주는 '눈치 빠른' 병사도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은밀한 치부를 낱낱이 까발린 병사에겐 "군 생활 적응 잘 하겠네"라는 칭찬과 함께 더 '상세한' 묘사는 취침시간이나 보초근무 때 들려 달라는 주문이 돌아온다. 그 일련의 과정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다만 남은 것은 '수위조절' 정도일 뿐.

그리고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대부분의 이들은 깨닫게 된다.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더라도, 쩔쩔매며 애인과의 은밀한 사생활을 털어놓는 이등병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자신도 낄낄거리고 있음을.

군대는 원했다. 혹시라도 여가시간, 인문과학 서적을 들춰보는 따위의 고상하고 골 아픈 소수보다는, 함께 모여 괴상한 몸짓의 춤을 추며 선정적인 내용으로 개사 된 유행가 가락에 킥킥거리는 다수의 웃음을.

사회생활이라고 달랐을쏘냐

사회에 나왔을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친한 사람끼리의 암묵적 동의가 허락 된 자리가 아니라도 음담패설에 낯설어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선 곤란하다. '유신정신 이어받아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사춘기를 희생한 이들에게 음담패설은 '남자답게' 보이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에티켓이다.

혹시라도 자리가 어색하면 학창시절 들었던 '허리하학적인' 이야기를 들고 나와 분위기를 풀어나가야 하고, 그런 대화를 즐기지 않는 이들이라 해도 상대의 음담패설에 얼굴을 붉히며 홀로 고고한 척을 해선 안 된다. 교실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끊임없이 교육받은 '공공의 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과 청년 그리고 장년이 되어서까지 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기본욕구다. 또 스스럼없는 자리라면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킨다면, 성에 관한 가벼운 농담은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구실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군사정권 아래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낸 이들에겐 올바른 성에 관한 담론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그들에게 강요되었던 건 오로지 '남자다움' 한 가지였고 성에 대한 잡다한 농담은 그 남자다움을 지탱시키는 품위 유지 기능 중에 하나였다.

훔쳐보기 강요한 '그 시대'도 반성하라

세상의 많은 가치들은 그 대상이 멀고 추상적일수록, 더 강렬한 욕구와 더 간절한 바람을 갖게 한다. 겉으로는 개방되었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올바른 성문화에 접근이 어렵던 그 시절. 그들에게 허락된 건 단지 훔쳐보기였다.

그렇게 얻어진 뒤틀어진 지식은 '아는 척, 경험이 많은 척'을 통해 위로 받기 시작하며 사실은 무지하기 짝이 없지만 절대 그렇게 보여선 안 되는 이중적 태도를 만들어냈다. 획일적 가치를 강요하던 군사정권은 성문화에 있어서도 '폭력과 무지'라는 이중의 잣대를 들이대는 우를 범했다.

억눌린 성장기의 기억은 때론 뒤틀린 문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 가위눌림 당하며 끊임없이 재생산 되는 음담패설의 역기능은 화장실 낙서의 일상을 뛰어넘어 일일이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많은 사회적 폐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때문에 그릇된 문화나 개인의 행동을 오롯이 시대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자칫 구조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음을 알지만 그 시발점이 되었던 근원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시태 탓은 아니라 해도 그 시대는, 최소한의 가책은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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