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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지면에 드러난 성곽 일부
절개지면에 드러난 성곽 일부 ⓒ 이용찬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산 1-1번지 성황산(133m)에 위치하고 있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53호 고부 구읍성에서 백제 중방성인 고사부리성 성곽이 발견됐다.

고부 구읍성은 읍성의 정비와 복원 자료를 추가로 획득하기 위해 지난 2003년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추정 건물지역을 시굴 조사해 건물지와 관련된 기단 열, 초석과 적심석 등의 유구를 발굴해 2004년에 조선시대 고부읍성의 조영기간을 짐작하게 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24일 고부 구읍성 발굴현장에서 열린 2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에서 (재)전북문화재연구원 최완규 원장은 "지난해 1차 발표에 이어 고부 구읍성에 대한 2차 발굴조사에 착수한 지 1년여 만에 백제시대에 최초로 축성된 성문터와 성벽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최 원장은 석축성의 북동성벽, 동성벽, 남성벽 등 절개지면 위에 나타난 성벽들을 돌아보며 추가로 설명했다.

이날 발굴현장설명회에는 윤덕향 전북대 교수를 비롯해 이강승 충남대 교수, 이영문 목포대 교수, 최병현 숭실대 교수 등 문화재 관계자들이 참석해 시대별 성곽 형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시대별 유물전시 현장
시대별 유물전시 현장 ⓒ 이용찬
전북문화재연구원 김종문 학예연구실장은 "북문터는 대전 계족산성 남문지, 순창 대모산성 북문지 같은 백제 성곽처럼 성문을 구성하는 좌우 성벽이 서로 어긋난 어긋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주변 성벽도 백제성곽의 특징인 외면을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해 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 "북문터에서 출토된 '상부상항(上部上巷)' 명의 도장이 찍힌 기와는 공주-부여지역의 백제유적과 익산 왕궁유적에서 출토된 인각와와는 달리 '오부오항(五部五巷·수도를 5부로 나누고 각 부를 다시 오항으로 나누었던 것)'까지 표식한 장방형 모양의 도장을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라고 전했다.

현 성곽은 토축성이지만 백제시대 당시에는 석축성으로 최초로 축성됐다가 이후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성벽을 개ㆍ보수해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북문화재연구원측은 "이번에 처음 출토된 '오부오항'명 기와, 그리고 백제시대의 축조방식이 그대로 보이고 있는 점으로 미뤄 기존에 고부지역을 백제시대 중방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학설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고부 구읍성에 대한 구체적 성격과 역사적 정체성을 파악키 위해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발굴현장을 둘러보는 시민들과 전북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
발굴현장을 둘러보는 시민들과 전북문화재연구소 연구원들 ⓒ 이용찬
정읍시 고부면은 고대시대에는 고사부리라고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신라 경덕왕 16년 고부로 고쳐 부령 희안 상질을 영현으로 삼고, 고려시대에는 태조 19년(936년) 영주라 고쳐 관찰사를 두었다가, 광종 2년(951년) 안남 도호부라 고쳤으며, 현종 10년(1019년) 다시 고부군이라 칭한 후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고부군으로 내려오다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14년 정읍군에 병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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