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쉬는 토요일(10월 22일)이라 잠을 늘어지게 자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연어축제가 우리 고장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모처럼 쉬는 토요일이라 9시가 지났지만 일어날 생각을 않고 자고 있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 한 번, 새벽녘에 한 번, 이렇게 보일러를 두 번 돌리는데 오늘은 늦잠을 자는 바람에 보일러 돌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집안 공기가 서늘했다. 자면서도 추운 것은 용케 아는 모양인지 다른 날 같으면 혼자 뒹굴고 있을 이불이 아이들 몸에 돌돌 감겨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시원하면서도 포근해 활동하기 좋던 날씨가 하룻밤 새 초겨울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행사장으로 왔을 때는, 오리털 조끼를 입고 나온 사람도 있고, 솜 잠바를 걸치고 나온 사람도 보였는데, 생활 감각이 부족한 나는 여전히 얇은 스웨터를 걸쳤고, 아이들도 청잠바만 입혀 데리고 나온 바람에 추워서 움츠리면서 걸어 다녔다.
남대천서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눈이 내려 있었다. 정말 신기한 모습이었다. 산봉우리 쪽만 눈이 하얗게 덮여 있고 나머지 아래쪽은 울긋불긋 단풍이 든 산이 저 멀리 보였다. 지난 밤에 눈이 왔으니 추울 법도 했다. 옷만 좀 두껍게 입고 나왔어도 제대로 즐길 수가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양양에 이사온 지 반 년 정도 됐는데 관광지역답게 무슨 무슨 행사가 굉장히 많았다. 행사 노하우가 축적돼서 그런지 대충 축제려니 하는 그런 종류의 축제하고는 달랐다. 정말 볼 것도 많고 경험할 것도 많았다.
먼저 우리는 남대천으로 가서 맨손으로 연어를 잡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남대천의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기를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쯤 하면서 쉽게 물속으로 들어가 연어를 잡는 사람도 있었다.
보는 우리는 추웠으나 일단 물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연어를 잡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물속을 돌아 다녔다. 그런데 연어란 놈이 빠른지 아무도 잡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 한 사람이 연어를 잡고 치켜들었다. 모두 일제히 그 사람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저, 아줌마가 잡았다."
마치 자신이 잡은 것처럼 모두 흥분해 있었다. 말로만 듣다가 직접 연어를 보니까 굉장히 컸다. 고등어 열 마리 정도 크기는 될 것 같았다. 무식하다 할지 모르지만 알래스카에서나 연어가 사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 연어가 사는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연어는 청정수역에서만 서식한다고 하는데 양양 남대천이 바로 그 청정수역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연어 시식 코너로 갔다. 2천원을 내고 연어 튀김을 샀다. 연어를 튀겨서 케첩에 찍어먹게끔 해서 한 접시를 주었다. 연어훈제도 있고, 연어구이도 있었지만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서 튀김옷을 입힌 것이 먹기에 나을 것 같아서 연어튀김으로 선택했다.
연어의 속살은 빨갛고 살은 매우 부드러웠다. 우리가 먹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아이들의 먹는 모습을 찍었다. 커다란 수동 카메라를 제대로 갖추고 의자까지 갖고 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전문가다운 자세로 찍는 걸로 보아 신문이나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람 같았다. 우리 애들이 사진발이 좀 받는가, 해서 기분은 좋았다.
연어에 먹물을 입혀서 탁본 뜨는 걸 구경하고 나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행사장 특설무대로 갔다. 먼저 양양복지회관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로 결성된 민요공연이 시작됐다. 평균 연령 70세 이상인 분들이지만 노래실력 만큼은 수준급이었다. 무대 매너 또한 여러 무대에 선 경험에서 쌓인 노련함이 있었다. 결코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었다.
민요가 끝나고 이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포츠댄스 팀이 나왔다. 아줌마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당장 내일부터 나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몸놀림이 유려하고 신이 나 보였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건강에 좋고 정신건강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공연이라지만 어떤 무대에 서더라도 손색이 없겠다고 여겨질 만큼 민요팀이나 스포츠댄스팀의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양양 와서 느낀 것이지만 취미활동을 꽤 진지하게 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우연히 만난 분재 하시는 분도 분재 하우스까지 자비로 마련해서 열과 성을 다해 나무를 가꾸었다. 일본이나 중국까지 다녀오면서 분재에 대해 더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서예교실만 해도 붓글씨 쓰기를 10년 이상 하면서 평생의 취미로 가꾸는 분들이 많다. 취미라면 그저 심심풀이 정도로 여기는 게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취미를 생업과 맞먹는 비중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런 게 축제의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양 토박이들의 공연에 이어 초청공연인 '퓨전 국악공연'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춥다고 짜증을 내서 내 고집만 피울 수가 없었다. 정말 아쉬운 공연이었다. 장고와 대금 등 우리나라 악기와 서양 악기인 기타, 이런 게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하는 호기심도 생기고, 무대공연에 대한 갈증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옷을 제대로 입혀 나오지 않은 죄로 공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양양 연어축제는 산란기에 맞춰 연어가 고향을 찾는 때인 10월 중순께 열린다. 올해는 10월 22일 용왕제를 시작으로 해서 이틀간 열렸다. 연어축제에는 연어와 함께 사진 찍기 , 연어연구센터를 방문해서 연어 생태에 대해 알아보기, 이외에도 뮤지컬 <연어>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또 이번 연어축제를 관람하면서 얻은 수익 중 하나는 연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생명의 신비를 체험했다는 거다. 연어의 일생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삶의 애환이 느껴졌다. 그냥 물고기의 일종이려니 했던 연어의 삶이 사람들의 삶 못지않게 어떤 울림을 안겨줬다.
이번에 올라온 연어는 3, 4년 전 떠난 어린 연어가 북태평양 알래스카 등지서 살다가 그때보다 10배가 커진 몸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4만6천 여 km 먼 거리에 있는 고향으로 왜 굳이 돌아오느냐 하면, 연어는 회귀본능이 있어 산란기가 되면 알을 낳기 위해서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향서 알을 낳고는 암수 모두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임신 중의 절식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목숨을 거둔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3천여 개의 알이 부화해 어린 새끼연어가 되면 다시 먼 길을 떠났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건 고향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냄새를 쫓아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가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