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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억새군락
억새군락 ⓒ 한성수
토요일(10. 29),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여서 학원에 보낸 후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대암산입구인 남양동 아파트 앞에 내렸습니다. 따사로운 가을햇살과 향기로운 공기는 이 특별한 날을 더 아름답게 해서 우리를 축복해 주는 듯했습니다. 입구에는 억새에 가린 야외화장실이 있는데, 청소를 해서 깨끗하고 휴지가 비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며 좋은 향기마저 나서 등산객을 미소 짓게 해 줍니다.

이제 완만한 길이 이어집니다. 등산로라고 하기보다는 산책로가 오히려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여섯 살 가량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등산객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뜨입니다. 산에는 이미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등산로에는 길을 따라 자주색 꽃이 피어 있는데, 벌이 부지런히 날아오릅니다.

꽃향유와 벌
꽃향유와 벌 ⓒ 한성수
나는 빠알간 청미래덩굴 열매(일명 망개, 명감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주로 망개라고 불렀다)에 눈길을 줍니다. 중학교 때, 소 먹이러 가서 동네아이들과 망개싸움을 하다가 나무그루터기에 걸려서 다리가 똑 부러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망개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열매는 너무나 탐스럽게 익었습니다. 또 초롱꽃 종류로 보이는 자줏빛 꽃이 참 아름답습니다.

청미래덩굴(일명 망개)열매
청미래덩굴(일명 망개)열매 ⓒ 한성수

초롱꽃 종류인 것 같은 데?
초롱꽃 종류인 것 같은 데? ⓒ 한성수
그런데 산새와 풀벌레는 우리부부의 걸음을 따라 축가를 계속 불러주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나는 길가에 핀 여러 꽃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릅니다. 더러 눈에 익은 꽃도 있지만 대부분은 낯설어서, 꽃 이름을 찾아 '정보의 바다-인터넷'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더러 모르거나 틀린 꽃이름이 있을 것인데, 여러분이 바로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산비장이
산비장이 ⓒ 한성수

산부추
산부추 ⓒ 한성수
이제 산 등성이가 보입니다. 등성이에는 나옹화상이 지었다는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글을 어느 회사에서 달아놓았는데, 아내는 잠시 소리를 내어 읽습니다. 오른쪽은 용지봉 가는 길이고, 대암산 정상은 왼쪽입니다. 단풍을 바라보며 억새밭을 거니는데, 철모르는 철쭉이 억새 사이에서 점점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철모르는 철쭉
철모르는 철쭉 ⓒ 한성수
이제 정상을 향하는데, 자줏빛 '개쑥부장이'와 하얀 '구절초'가 수줍게 피어 있습니다. 단풍은 붉거나 노랗고, 가을 꽃은 하얗거나 자줏빛이며, 망개 열매는 빨갛게 잘 익어서 원색의 가을 산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들풀처럼 욕심 없는 이 무능한 남편 때문에 아내는 지난 15년동안 무던히도 속을 태웠을 것입니다.

개쑥부쟁이
개쑥부쟁이 ⓒ 한성수

산구절초
산구절초 ⓒ 한성수
정상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앉아서 밥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내는 억새군락을 보며 탄성을 지릅니다. 가까운 야트막한 도회지 산에 이런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정상에서 본 용지 봉에도 붉거나 노랗게 단풍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내려가야 합니다. 단풍사이로 보이는 창원의 아파트는 탁한 공기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산정상에서 단풍사이로 본 우중충한 시내
산정상에서 단풍사이로 본 우중충한 시내 ⓒ 한성수
40대 중반인 우리의 인생도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5년을 무탈하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대! 살다보면 더러 힘들고 아픈 일도 겪게 되겠지요. 그 때는 이 못난 남편에게 기대십시오. 나는 그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내어드리리다. 세월이 우리의 생명은 떼어 놓을 지라도 내 정신은 죽음을 넘어서 그대와 함께 할 것입니다.'

이런 맘을 아는 지, 아내는 내 손을 꼬옥 잡습니다.

'이 산을 내려가면 다시 생활고에 가을 단풍에 탄성을 발한 그대의 입술은 한숨소리로 채워질 것이지만,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깨끗해진 그대의 귀에는 차들의 소음으로 가득찰 것이지만, 향기로운 가을바람으로 뻥 뚫린 그대의 코는 다시 음식냄새로 막힐 것이지만, 나 그대에게 언제나 아름다운 가슴을 가득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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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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