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은 결혼 10년차 부부를 통해 가족과 부부의 의미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질문했고, 지난주 종영한 <웨딩>은 이제 막 결혼에 골인한 신혼부부를 통해 결혼의 의미를 풀어봤다. 물론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장밋빛 인생>이 결혼의 끔찍한 일면을 부각시키면서 부부의 의미를 찾아갔다면, <웨딩>은 결혼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드라마다.
<웨딩>을 보고 있으면 '결혼은 정말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마도 결혼하지 않은 미혼 여성이나 남성이라면 당장이라도 결혼해서 승우와 세나처럼 살고 싶어질 것 같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부부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보여준 드라마라고 본다.
비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 서서 언제 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애틋한 모습이나 한 우산 아래서 따뜻하고 밝은 집을 향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은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장면이다. 자신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자상한 남편, 귀엽고 사랑스런 아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웨딩>이 그려 보이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 결혼만 하면 저들처럼 행복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승우(류시원 분)는 따뜻하면서도 믿음직스럽고 거기다 외교관이라는 굉장한 직업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왕자다. 그리고 세나(장나라 분)는, 부잣집 딸이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고 착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역시 공주다. 공주와 왕자가 만났는데 아름답고 근사한 건 당연한 이치.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 전에 마법에 결렸는지 자신의 배우자를 왕자와 공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연기력이 뛰어나서인지, 아니면 콩깍지가 씌어서인지는 모르지만 결혼 전에는 모두들 자기 아내는 정말 착하고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자기 남편은 정말 성실하고 따뜻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걸 한다.
결혼은 현실이고, 판타지가 끼어들 틈이 없다. 아마도 <웨딩>처럼 살 걸로 생각했던, 판타지가 컸던 사람일수록 현실로부터 얻는 충격에 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처럼?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와 반성문처럼 사는 게 결혼이고, 그들의 관계가 보통 부부의 모습일까?
<장밋빛 인생>에서 그려 보이는 결혼생활은 비참하고 구질구질하다. 결혼하고 싶은 맘이 싹 가시게 할 만큼 결혼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제목 그대로 '장밋빛 인생'을 그리며 결혼했는데, 현실은 제목과는 판이하다.
맹순이가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데 올케 '반성해'는 맹순이가 누워 있는 집에서 아기 돌을 준비하면서 맹순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빈정거리고, 죽어가는 올케를 복도에서 만났는데도 올케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정은 보이지를 않는다. 올케가 다 죽어간다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조금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 남보다 못한 시누이다. 이런 시누이까지 남편을 가족으로 맞으면서 덤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장밋빛 인생>의 현실이다.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낸 립스틱을 찍어 바르고, 남편의 헐렁해진 속옷을 잠옷으로 대용하고, 거실 한 가득 부업거리를 쌓아놓고, 이렇게 입을 거 못 입고 먹을 거 못 먹으면서 악착같이 살아왔는데,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고 병까지 들어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헛되게 만들어버리는 결혼. 이 정도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동생 맹영에게는 독신으로 살아가라고 할 법도 한데, 맹순이는 동생에게 결혼을 재촉한다.
"너 이렇게 혼자 살다 늙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양로원밖에 더 가겠어?"
맹순이는 자기 결혼생활이 결코 행복하지 않지만 그래도 양로원서 외롭게 죽어가는 것보다는 속 썩이는 가족이라도 가족들한테 둘러싸여서 죽어가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결국 결혼을 하는 이유는, 외롭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맹순이는 병들어 죽어가는 마당에 남편의 지극한 병간호를 받고 있다. 바라던 대로 된 것 같다. 힘든 날을 대비해 그렇게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살아왔는데, 그 힘든 날이 되니까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게도 남편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생명수라는 물도 구해다 주고, 산으로 들로 약초도 캐다 정성스레 다려주고 맹순이의 병간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장밋빛 인생>이 도달한 결혼의 의미는 노후대책이다. 발에 꽉 끼는 신발의 고통이 지극하지만 그걸 벗었을 때 찾아오는 해방감과 시원함을 위해서 하루 종일 꽉 끼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처럼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심술, 자유라고는 없는 구질구질한 삶, 이런 걸 다 감수해내는 이유는 늙고 병들었을 때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위해서다.
결혼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 보이면서 부부는 행복을 나누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행복한 일은 함께 하지만 힘든 일은 혼자 감수해야 한다는 <웨딩>의 결혼관과는 사뭇 다르다.
둘 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 결혼은, <웨딩>의 일면도 있고 <장밋빛 인생>의 일면도 있다. 좋은 것만 있으면 누구나 다 결혼하고, 또 나쁜 것만 있으면 결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동전의 양면처럼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반씩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를 통해서 보면, 결혼하고 좋은 점은 외로움이나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신 걱정이 많아졌다. 결혼 전에는 오직 내 문제만이 나의 문제였는데, 지금은 아이들 기말고사기간이 되면 나 또한 시험 전의 초조감에 시달리고, 남편의 직장 문제도 내 문제 중 하나가 돼버려 걱정이 많아졌다.
외로움의 자리에 걱정이 대신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결혼을 해서 좋다고, 안 해서 좋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외로움보다는 걱정하는 게 낫다는 사람은 결혼에 어울리고, 차라리 외로움이 낫다는 사람은 독신에 어울린다. 결론은, 결혼에는 긍정과 부정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