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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사업으로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선후보로서 급부상할 때부터 생각난 것은 한 단순한 리더십론이었다. 마침 최근 이 시장이 한 대학 특강에서 '위험한 리더'에 대해 강의하였다니 이런 우연이 없었다.
세상에 유행처럼 각종 리더십 이론이 범람하지만, 나에게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유용했던 것은 이른바 '똑게-멍부'론이었다. 세월이 오래 되어서 어디서 들었는지 그 출처도 생각나지 않지만, 이 리더십론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가장 바람직한 리더십과 가장 위험한 리더십
이 이론에 의하면 리더십은 간단하게 4가지 타입으로 분류될 수 있다. 똑게형, 똑부형, 멍게형, 멍부형이다.
'똑게형'은 똑똑하고 게으른 리더를 지칭한다. 이런 리더는 상황판단이 명확하고 조직의 비전을 꿰뚫고 있지만, 일에 있어서는 자기가 잘 나서지는 않는다. '똑부형'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다. 즉, 상황판단이나 비전에 명확하면서 모든 일에 자신이 일일이 나서는 스타일을 지칭한다.
'멍게형'은 멍청하고 게으른 스타일로, 상황이나 조직의 비전에 대해서 딱히 명확하지도 않으면서 일처리에도 잘 나서지 않는 리더이다. '멍부형'은 상황과 비전이 명확하지 않지만 일처리에는 부지런히 나서는 리더를 칭한다.
이 리더십론에서 가장 바람직한 리더는 어떤 형태일까. 흔히 똑부형을 꼽을 수도 있지만, 정답은 똑게형이다. 상황판단이 명확하고 조직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조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공간을 열어주어 조직을 바른 방향으로 끌고감과 동시에 조직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리더이다. 똑부형 리더 아래서는 조직이 바른 방향으로 갈지는 모르지만, 흔한 말로 아래 사람들이 크질 못한다.
하지만 이 리더십론의 핵심은 누가 가장 위험한 리더냐는 것이다. 멍게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답은 멍부형이다. 멍게형은 최소한 상황을 망쳐놓지는 않는다. 멍부형이야말로 명확한 상황 판단이나 방향성 없이 일을 마구 추진함으로써 최소한 다른 조직원이 바로잡을 수 있는 공간마저 막아버리고 조직의 위기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병박 시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이명박 시장이 강연에서 노무현의 리더십을 빗댄 것처럼 이 두 사람의 리더십 스타일은 '부'형과 '게'형으로 일단 명확히 갈린다. 예전 버스 개혁 때 한 블로그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서울 사람 눈에는 잘했던 잘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안 보이고 이명박 시장만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은 탈권위주의라는 몇 안되는 이 정부의 일관된 방향성에서 드러나듯 자신이 게으름으로서 다른 이들의 이해를 드러나게 하고, 그 가운데 타협과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을 이상적인 리더십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반면 이 시장은 무슨 일이든 어떤 과제이든 과감하게 추진함으로써 일단 일의 성과를 내고보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리더십 덕분에 서울시의 해묵은 과제였던 버스개혁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서울시내 한복판을 거슬러 물길이 다시 뚫리는 '역사'가 한해를 멀다하고 이루어지니, 사람들의 눈에서야 이명박 시장만큼 명확히 보이는 리더가 없을 만하다. 이런 이유로 대선후보로서 상종가를 치고있는 이 시장이 '경부운하'라는, 이번엔 전국을 가로질러 물길을 뚫겠다는 더 야심찬(?) 계획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리더십은 '멍'형이라는 데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 비전만 해도 동북아 중심국가에서 교량국가로, 또다시 균형자론으로 옮겨갔다가, 그마저도 잇따른 비판에 흐지부지 되고, 지역균형 발전론만 해도 행정수도 건설 좌절 이후에 찾아보기 힘든 구호가 되어 버렸으며, 국가 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혁 등 각 개혁과제들 역시 '반 개혁 세력' 타령 속에 좌초되고 흔들려 온지 오래다. 이 속에서 일관된 비전이나 방향성을 찾기는 원체 힘들어 보인다.
'멍' 형 지도자만 즐비한 현실
이명박 시장의 서울시도 이에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나하나가 이병박 시장의 브랜드가 될 만큼 유명한 사업들, 버스개혁·시청앞 공원·뉴타운 개발·청계천 복원까지, 굵직하고 떠들썩하긴 하지만 이것들을 아울러 지향하는 비전이 무엇인지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버스개혁을 보면 공공서비스의 공공성을 보다 강화하려는 것 같고, 시청앞 공원을 보면 쾌적한 도시환경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잔디를 까는 통에 이용이 제한되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뉴타운 개발은 과거 개발지상주의를 연상시키다가도 청계천 복원을 보면 생태도시를 추구하는 것 같고,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냥 대형 도심환경개선 조경개발공사가 되어버렸고 생태적 복원의 길은 더욱 더 멀어졌다.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이런 사업들간의 공통점이란 '대형 이벤트'였다는 정도랄까?
결국 이명박 시장의 대학 특강은 멍부형 리더가 멍게형 리더 보고 '위험한 리더'를 논한 셈이다. 하지만 누가 과연 가장 위험한 리더일까?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지난 후 새로운 비전과 전망이 절실한 우리 사회에서 '멍'형 리더들만 즐비한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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