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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입에 거미줄치랴' '목구멍이 포도청'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사는 것을 다룬 속담이 유난히 많은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과감하게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힘들어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한다. 하루하루 돈벌이에 허덕이지만 나에게도 찬란한 내일이 올 거라는 꿈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 오늘도 일터에서 땀방울 흘리는 사람들의 '돈벌이' 이야기를 들어 봤다.
*참가자
김미영(33, 회사원, 기혼 여성, 맞벌이, 3살배기 딸 1명) / 김지영(40, 회사원, 기혼 남성, 맞벌이, 초등학생 아들 1명) / 김태희(33, 교사 11년차, 미혼 여성) / 최육상(35, 중소기업 대표, 미혼 남성, 사회)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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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 웨이터에 노가다까지... 파란만장 생업전선 10년
최육상(이하 육상): "오늘 하루도 회사에서 힘드셨을 텐데 또 일 얘기를 꺼내서 죄송하네요(웃음). 다들 어떻게 사회생활 시작하셨어요?"
김지영(이하 지영): "85학번인데 운동하느라 10년 만에 졸업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지 올해로 10년째예요. 택시운전, 대리운전, 노가다, 호텔 웨이터에 사업까지 하다가 홀랑 날리고 서른셋에 달랑 23만원 들고 상경했죠. 지난 7년 동안 직장을 네 번 옮겼으니까 나이에 비해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죠. 지금은 병원관리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기획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김미영(이하 미영): "돈벌이에 있어서는 제가 가장 고참인 것 같네요. 여상 졸업하고 19살 때 취업했으니까 벌써 14년째예요. 92년 첫 월급이 43만 얼마였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김태희(이하 태희): "올해로 교사 11년 차니까 나이에 비해 경력이 긴 편이죠. 운 좋게 빨리 사회에 진출했어요. 지방의 농업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고 지금은 경기도 소재 고교에서 근무하고 있죠. 아직 미혼이기 때문에 부모님과 동생들 부양하는 것 말고는 경제적으로 애로사항은 없어요."
육상: "전 대학 졸업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좀 했어요. 그런데 IMF 때문에 취업 전망이 불투명해 역으로 99년에 창업했죠. 캐릭터 디자인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디지털콘텐츠 사업으로 넓혀가고 있어요. 6년차 사장인 셈인데, 말만 그렇지 돈벌이에 급급한 건 마찬가지예요."
지겨운 돈벌이 대신 차라리 독립운동을!?
지영: "다들 젊은 30대네요. 전 올해로 마흔인데 나이 때문인지 지난 일을 많이 생각하게 돼요. 20대에는 '사회 변혁'에 온 몸을 바쳤어요. 근데 결혼하고 나니 처자식을 굶겨서는 안 되겠다, 빈곤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나 혼자 가난한 건 괜찮지만 처자식이 그래서는 안 되잖아요. 정말 30대에는 미친 듯이 일했어요.
상경하고 나서 처음에는 아내와 떨어져 살았는데 그 때 소망이 우리 가족이 모여 잠잘 수 있는 방 한 칸 갖는 거였어요. 그래서 열심히 돈 모아서 방 마련했죠. 그랬더니 그 다음에는 아들한테 방 하나 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방 두 칸짜리 전셋집 만들었죠. 그 다음에는 23평 빌라 구입, 그 다음에는 아파트 구입, 이렇게 되더라고요. 앞만 보고 달려온 거죠."
미영: "20대에 사회단체에서 잠시 활동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그때 생각했던 가치와 충돌하기도 해요. 요즘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읽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일제 시대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이라도 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럴 때마다 돈벌이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영: "지금은 회사라는 개념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회식만 해도 과거에는 그런대로 즐거웠는데 지금은 어지간하면 빠지려고 하거든요.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개인 생활도 파편화되고 회사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요. 예전에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추구했다면 지금은 한 사람의 열 걸음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요즘에는 회사 사람들하고 친구하기도 힘들잖아요?"
태희: "전 돈벌이 자체보다는 교육 철학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특히 전인교육과 입시교육 사이에서 오는 가치 충돌은 무시 못 하는 스트레스죠."
나도 멋지게 사표 던지고 싶다, 하지만...
육상: "저희 회사 직원들도 그럴지 모르겠지만(웃음) 가끔 사표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나요?"
지영: "저의 샐러리맨 생활은 '사표를 품은 삶'이었어요(웃음). 제 생각과 배치되는 일 앞에서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표를 던지려고 하면 제일 먼저 아내와 아들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미영: "두 번째 직장이 부동산 관련 잡지사였는데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아랫사람이 퇴근 못하는, 아주 이상한 분위기였어요. 그래도 저는 6시 땡 하면 꿋꿋하게 퇴근했죠(웃음). 어느 날 그다지 급하지도 않은 제안서 만드느라 야근을 하다가 차도 끊어질 것 같아 내일 마무리하겠다고 했더니 오늘 꼭 끝내라는 거예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회의실 책상에 제안서 뭉치를 '탁'하고 던지면서 '저 내일부터 회사 안 나옵니다' 그러고 나왔어요. 정말 그 길로 끝이었죠.
그때 같이 일하던 세 살 많은 남자 동료도 함께 그만뒀죠. 그 분은 치약하고 칫솔도 사무실에 두지 않고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언제든 사표를 던질 마음이었던 거예요. 그때 저는 결혼도 안 해서 별 문제 없었지만 그 분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거든요. 제가 가정파괴범(?)은 아니었나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죠(웃음)."
태희: "사표 내는 교사는 거의 보기 드물죠. 간혹 학교에 적응 못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정 안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해요. 그래도 다른 직업에 비해 신분 보장이 확실한 편이죠. 그래도 요즘에는 교사 중에서도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어요. 들리는 말로는 계약직인 기간제 교사를 전체 교사의 30% 선까지 늘릴 거라고 하더군요. 또 국가공무원 신분인 교사를 지방직화하겠다는 말도 있고. 앞으론 교사라도 마냥 '철밥그릇'은 아니지 않나 싶어요."
지영: "나이가 마흔이다 보니 대기업에 다니던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정말 몇 안 돼요. 대부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했죠. 특히 IMF 때 많이 그만뒀는데 구조조정이다 명퇴다 어수선한 분위기도 한 몫 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계속 있지 못한 것 같아요."
비상식적으로 돈 버는 사람들, 다 쪽박 차라~
육상: "돈벌이는 굳이 샐러리맨이 아니더라도 참 더럽고 치사한 것 같아요. 기업체를 운영하는 저 같은 입장에 봤을 때는 이재용씨가 삼성 경영권을 승계하려고 하는 걸 보면 꼭 저렇게 해서 기업을 꾸려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분명 있는데 말이죠."
미영: "샐러리맨들도 그렇죠. 접대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주변엔 술 접대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요. 아침에 술 냄새 풍기면서 출근하고, 저녁엔 또 접대하러 나가고, 집에는 매일 늦게 가고…. 그런 걸 볼 때마다 맘이 좀 그래요. 도대체 돈이 뭐 길래 라는 생각이 들죠."
태희: "정말 털어 놓긴 부끄러운 일인데요, 사회 초년병 시절 첫 학교에서 교장의 비리(?)를 돕는 일을 할 경우가 있었는데 정말 이러면서 돈 벌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죠."
지영: "개인적으로도 돈과 얽혀 상식적이지 못한 일을 많이 겪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돈 잘 버는 걸 보니까 가치관의 혼란이 생기더군요. 저렇게 하면서까지 돈 버는 사람들이 많다는….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쪽박 차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랄 뿐이죠."
육상: "뉴스에서 고위층 비리다, 재벌 2세 경영 승계다, 부동산 재벌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일하기 싫어져요. 이렇게 애써서 기업하면 뭐하냐는 생각도 들고. 직장 다니는 분들은 저보다 더 화날 것 같은데…."
지영: "전 경제사범과 강간범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해요. 특히 경제사범은 그 한 사람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예전에 지방 도시 호텔에서 웨이터 일할 때 상류층의 존재를 실감했어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호텔에서 각종 모임이 있는데 모임 이름만 바뀌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거예요. 방학 때면 그 사람들 자녀들이 스키 타러 오고…. 역시 사회 주류는 공고하게 존재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영: "건축 회사를 1년 정도 다녔는데 사장이 명문대 출신에 매너도 좋고 괜찮았죠. 그런데 악착 같이 돈을 챙기는 거예요. 갑근세, 보험료 뭐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하다 못 해 자기가 내겠다고 한 회식비까지 나중에 다 챙겨가더라니까요. 얼마 못가 부도가 났는데 1년 후쯤 보니 새로운 회사를 하나 경영하고 있더라고요. 하청업체 돈 다 떼먹으면서도 다시 회사 차릴 돈은 빼돌려 놓았던 거죠.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면서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태희: "학교도 조직이다 보니 부조리가 없지는 않죠. 첫 학교가 특히 심했는데 교장이 학생들 급식비와 난방비, 심지어는 의약비까지 떼먹었어요. 전인교육 한다는 학교에서 아이들 코 묻은 돈을 떼먹는 현실이 슬펐죠."
월급쟁이가 봉이냐... 의사·변호사에게도 유리 지갑을
육상: "기업을 하다 보니 정부 정책에 민감해져요. 바람이 있다면 중소기업들이 좀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자금을 활용할 수 있게 금융권 문턱이 좀 낮아졌으면 해요. '대마불사'라고 많은 자금이 대기업에만 집중되잖아요."
태희: "월급쟁이를 '유리 지갑'이라고 하잖아요. 세금만이라도 제대로 걷었으면 좋겠어요.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소 같은 데는 모든 거래를 신용카드와 직불카드로만 하게 하면 어떨까요."
지영: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들의 소득 신고액을 보니까 한 달에 50만 원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제가 한 달에 보험료 등 세금으로 40만 원 정도를 내는 그게 말이 되냐고요. 샐러리맨의 세금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편한 수만 쓰지 말고 말도 안 되는 소득신고로 사실상 탈세를 하고 있는 전문직들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해야 해요. 소규모 사업자들은 그야말로 한 달 생활비 벌기에 급급한데, 매출에 따른 탄력적인 세제 정책이 있어야죠."
미영: "샐러리맨들이 대출 받으려면 정말 첩첩산중이에요. 대출 한 번 받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서민들이 저리로 대출 받을 수 있게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내일의 꿈이 오늘의 우리를 밀어 간다
육상: "그래도 다들 꿈이 있으니까 고되지만 밥 벌어 먹고 사는 것 같아요. 전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 역사 인물인 고선지 장군을 알리는 문화콘텐츠 사업에 집중할 거예요. 십 년 동안 열심히 일한 다음 자연을 벗 삼아 글 읽고 쓰면서 삶의 여유를 맘껏 누릴 거예요."
미영: "지금 결혼도 했고 애도 있지만 야간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해서 지금 업무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요.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써온 시와 글을 묶어 책으로 내고 싶어요. 그 책을 딸에게 선물해 당당하게 살아온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엄마가 아닌 '인간 김미영'의 모습을."
태희: "어쨌든 교사 자리 그만둘 때까지는 열심히 할 거예요. 2~3년 내에 서당을 알아보고 한문학 공부를 시작할 거예요. 그리고 은퇴하면 우리 나라 역사서 중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번역본을 완성해 관련 논문이나 글을 발표한다, 수명이 다하면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너무 평범한가요?"
지영: "인생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적게 벌어서 적게 쓰는 삶을 살려고 경상남도 산청의 교육생태마을에 입주할 예정이에요. 내년 3월 집이 지어지면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9월에, 저는 1~2년 정도 직장 생활을 더하다 완전히 정리하고 내려갈 계획이죠. 죽을 때까지 가는 여행인 셈이죠."
육상: "재미없는 '공장' 얘기지만, 그래도 밝고 희망차게 하시네요. 그럼, 우리 밥벌이를 위해 건배 한 번 할까요? 건배!"
모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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