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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아이완
처음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간 으레 써 왔듯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가 감동을 받았거나 삶의 깨달음을 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안의 사람’이란 꼭지임을 재차 확인했을 땐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나로 하여금 지금 이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이지? 내 삶의 전환점을 이루게 한 계기는 무엇이지? 과연 그 무엇에 해당하는 사람은 누구였더라… 누구였더라?

특별한 어느 한 사람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은 오래 전부터 해 왔지만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성별이어서 내가 ‘동성애자’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따로 불려야 한다는 것은 몰랐더랬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 스물다섯 살 때였고, ‘동성애자 인권운동’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안 것도 그해였다. 같은 동성애자들을 직접 만난 것도, 밤새워 사람들의 글을 읽고 또 내 이야기를 글로 써 게시판에 올려본 것도, 동성애 관련 서적을 구해 읽은 것도 모두 1996년, 그 해에 처음 해 본 일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해에 나는 이미 동성애자 인권운동 모임의 대표를 맡은 상태였고 또, 이른바 한국 최초의 동성애 전문지로 설명될 월간지 < BUDDY >의 창간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학생 운동 경력도 여성 운동이나 여타 다른 인권 운동을 한 경험도 전무했던, 그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묻혀 조용히 살기만 했던, 평범하기 짝이 없던 한 ‘아이’의 인생이 갑자기 완전히 변한 것이다.

나는 왜 변했을까? 이렇게 큰 변화를 감당하게 만든 정신적 스승은 누구일까? 원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다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어린 시절엔 많은 위인전기들을 경외의 눈길로 읽었고, 노트며 수첩 한 귀퉁이에 명사들의 격언을 적어 놓곤 했지만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 어떤 선각자의 뒤를 좇고 있지는 않은 듯 느껴졌다. 흔히 하는 말대로 성적 소수자 인권운동이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 중에서도 꽤나 한적하게 외진 길을 걸어가는 셈 아닌가. 그 길을 혼자 찾아낸 것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한데 그렇다면… 대체 그렇다면?

의문이 꼬리를 물어 생각이 점점 깊어져서야 비로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애당초 그건 한 사람도 두 사람도 아니었다. 이름을 일일이 부르지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이 ‘내 안의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나는 그들의 대부분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이들도 많다. 엄밀히 말해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들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동성의 상대에게 사랑을 느꼈던 사람들, 그렇게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들, 자신의 존재를 설명해 줄 아무런 이론적 지지도 없었지만 자신의 삶을 억척스레 살아 낸 사람들, 때론 숨고 부끄러워하고 도망가기도 했지만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에서는 혼잣말로 나지막이 진심을 읊조리고 눈물 흘렸을 사람들, 그렇게 나보다 먼저 살기도 했고 지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너무나 늦었지만, 또한 너무나 분명하게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박한 깨달음이 주는 힘은 상상보다 훨씬 더 강했다. 1996년 그 첫 해에 느꼈던 진한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예상보다 동성애자가 많구나’ 하는 놀라움이나,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위인이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아는 놀라움 따위가 아니다. 비록 근래엔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의 삶이 쉽게 상업화되어 버리곤 하지만, 사람들이 있음을, 바로 여기에 살아가고 있음을, 비록 눈에 다 보이진 않아도,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어느 곳에 살아도… 사람들이 있음을, 세상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에 부딪히며 제 몫의 삶을 어떻게든 살아 내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만히 헤아려보는 일은 여전히 나를 경건하게 만든다.

처음엔 분명 동성애자 인권운동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양성애자,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인권과 HIV 감염인과 AIDS 환자의 인권도 보듬게 되고, 또 조금 더 나아가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조금씩 나와 비슷한 처지의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만의 것이 아닌 권리에도 애정을 가지고, 내가 몰라도 되던 것들도 알고 싶어지고, 사람을 사람답게 봐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치게 되었다. 때로 울분으로 절망하거나, 능력 부족에 좌절하고, 인권활동이란 말에 두려움을 느끼며 일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쉬 버리지 못했던 건 아마도 그때의 감동에 대한 빚이 아직 남은 탓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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