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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오늘은 진우가 학교에 안 와서 선생님도 아플 것 같아"라고 했더니 눈치 빠른 2학년 나라가 나를 위한다며 칸막이용 하얀 칠판의 더러워진 부분을 자기 지우개로 깨끗이 닦았다. "우와, 아주 깨끗하게 닦였네! "
내가 환호를 하며 좋아하자 다시 나라가 한마디 했다.
"선생님, 다음 스승의 날에도 이렇게 깨끗이 만들어 드릴게요."
"어?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가야 하는데? 어쩌지?
"에이, 안 돼요"하며 네 명이 합창을 한다.
"얘들아, 내년에는 더 젊으시고 예쁜 선생님들이 오신단다. 나는 늙었잖아."
"선생님은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
아! 이 아이들이 또 나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집보다 더 정이 든 분교, 영원히 살 것처럼 다듬고 가꾼 3년의 시간이 창밖에서 달랑거리며 겨우 매달려 있는 단풍잎만큼 남은 시간 앞에 아쉬워하며 이 가을을 보내고 있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아이들이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그럼, 서효가 선생님 볼에 뽀뽀해 주면 안 갈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나라가,
"진짜예요? 1학년 동생들아, 우리 단체로 뽀뽀하자"하며 우르르 달려든다.
아이고 어쩌자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뱉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모든 게 진담이란 걸 또 깜빡 잊은 내 탓이었다. 고학년에게는 농담도 곧잘 통하던 습관이 또 나오고 말았으니.
그렇잖아도 성추행이나 성폭행으로 민감한 시기에 뽀뽀라니... 꼬마들의 진심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저 단풍보다 더 붉어졌다. 흰머리 하나라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날마다 뽑아낸 앞머리 덕분에 갈수록 훤해지는 앞이마의 비밀을 아이들이 알까? 흰머리가 보이지 않아 자기들 선생님이 늙지 않았다고 하는 걸까?
하교하기 전 진우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빨리 나아서 학교에 오라고. 보고 싶다고. 색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옹알옹알 뭐라고 썼을까? 별 스티커를 붙이고 꾸미고 비밀스런 편지가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제일 멋없는 건 내가 쓴 흰 봉투의 편지다. 꽃다발대신에 화단에 핀 과꽃 한 송이, 국화 한 송이, 메리골드 두 송이를 묶어 주며 편지랑 함께 진우와 한 동네에 사는 은혜에게 반 대표로 병문안을 가라고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아이들이 "나도 아플래요. 편지랑 꽃다발 받게요"하는 게 아닌가? 문득 내가 어렸을 때는 귀한 사과를 먹고 싶어서 가짜로 아픈 척 하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명절이 아닌 때에 귀한 사과를 먹는 일은 아플 때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색종이 편지와 꽃 세 송이에 이렇게 감동하는 아이들이 참 예뻤다. 순간 나도 아이들처럼 단순해지고 싶었다. 아니 이렇게 깨끗한 아이들 곁에 있으니 조금은 깨끗해지지 않을까?
"진우야, 내일은 꼭 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깨끗하게, 맑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 아이들이 어른들을 가르칩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