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강임
삼라만상의 가을 언덕이 단풍으로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 제주의 언덕은 파도를 삼키고 있다. 육지의 언덕이 마을 뒷동산이라면, 제주의 언덕은 파도의 놀이터이다.

남제주군 남원읍에서 바다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해안경승지인 '큰엉'이 있다. 큰엉은 '큰 바위가 아름다운 자연을 집어 삼킨다'는 말로, '엉'이란 제주 사투리로 언덕을 의미한다. '사계절 내내 바위가 자연을 집어 삼킨다'는 큰엉. 제주의 언덕이 이렇게 자연을 집어 삼킨다는 의미로 표현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김강임
남원읍을 지나다가 물허벅을 짊어지고 서 있는 여인 앞에서 차를 세운 것은 저녁 해가 질 무렵이었다. 어디 쪽이 출입구인지 알 수 없어서 기웃거리다가 산책로가 나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책로 옆에는 기암괴석이 펼쳐졌다.

ⓒ 김강임
바다를 사이에 두고 깎아질 듯 버티고 서 있는 암석들. 그런데 이 암석들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언덕이란다. 마치 천년바위 같은 것이 언덕이라니. 내 상식으로는 언덕이란 나지막한 구릉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고 꽃과 나무가 있을 법한데 제주의 언덕은 특별하다.

화산의 흔적이 언덕을 이룬 자연의 특혜. 사면이 바다인 제주의 해안경승지는 모두 화산이 빚어낸 작품들이다. 특히 큰엉은 시꺼먼 기암절벽이 숨구멍을 내 놓고 바다를 들이 마신다. 2개의 자연동굴이 인상적이지만 때 묻지 않은 해안경승지의 맛을 느낄 수 있다.

ⓒ 김강임
"누가 저 바다에 소금을 뿌렸을까?"

큰엉에서 바라본 바다는 온통 설탕을 엎질러 놓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성난 큰엉은 입을 크게 벌리고 달짝지근한 설탕물을 꿀꺽 꿀꺽 마시고 있다. 먼 바다에서 몰고 온 파도 덩어리를 잘게 부수는 바위덩어리는 신이 났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설탕물은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큰엉에 부딪힌다.

ⓒ 김강임
큰엉의 산책로를 걷노라니 고등학교 때 읽었던 <폭풍의 언덕>이 생각났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고등학생이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던 책이다. 높은 언덕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워더링 하이츠 저택. 그 저택 안에서 일어났던 사랑과 증오, 그리고 이별을 생각한다.

ⓒ 김강임
이렇듯 언덕은 많은 얘기를 담고 있다. 더욱이 바다를 끼고 있는 제주의 언덕은 히드클리프의 사랑보다도 더 진하고 달짝지근한 소설의 맛이 깃들여져 있다.

ⓒ 김강임
주상절리가 발달한 큰엉 아래에는 정교하게 조각한 암석이 신의 조각품이다.섬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깊고 푸른 제주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깎아 세운 절벽 위를 걷는 느낌은 아스라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무인도처럼 쓸쓸하다. 그래서 큰엉의 산책로 2km는 길게만 느껴진다. 파도마저 심심해서 마실을 나온 큰엉. 절벽 위를 걸어보니 바다를 통째로 마시는 그 기분이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제주시- 남조로- 남원- 신영영화박물관- 큰엉으로 1시간 정도가 소요 된다.
 주변 관광지 : 신영영화 박물관, 제주민속촌 박물관, 성읍 민속마을, 정석항공관 등이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