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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갑 다섯통을 종이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내준 독자의 성의에 고마움을 느낀다.
성냥갑 다섯통을 종이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내준 독자의 성의에 고마움을 느낀다. ⓒ 강인춘
기왕지사 성냥개비로 그린 그림 이야기로 시작했으니까 하나 더 하겠습니다.

"나만의 붓, 성냥개비"라는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하고 나서 그 글을 바로 제 블로그에 옮겨 실은 후였습니다.

"신기합니다."
"TV방송국인데요.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별것을 가지고 다 그림이 되네요."
"저도 따라 해보니까 쉽진 않군요."

이런 댓글들이 블로그 '쪽지'를 타고 많이들 올라왔습니다.

글쎄 제 생각엔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들은 꽤나 신기한 것으로 받아들였나 봅니다. 왜 있잖아요? 그림 그리는데 꼭 연필이나 펜, 붓으로만 그리는 게 아니잖습니까? 흔히 붓 대신 페인팅나이프나 손가락, 수건 등으로 캠퍼스에 칠한다거나 문질러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많이 있지요.

모두 작가의 개성에 따라 그 도구도 달라진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은 '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를 처음 들어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지에 제가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린 사람은 제가 알기로도 몇 사람 됩니다. 지금도 현역으로 열심히 만화를 그리고 있는 박수동 화백이 그 옛날 '주간 선데이'지에 연재한 '고인돌'이 바로 성냥개비로 그렸고, 또 모 제약회사 광고이사인 윤아무개씨가 가끔 성냥개비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론 저 역시 10여 년 전에 본격적으로 성냥개비 그림을 그려 책을 냈고 지금도 그 재미를 잊지 못해 가끔 성냥개비만 보면 먹물이나 수채화 물감을 찍어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독자가 보내준 성냥개비로 그린 그림
독자가 보내준 성냥개비로 그린 그림 ⓒ 강인춘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명이란 것이 나날이 발전하면서부터 '성냥'이라는 물건이 하나 둘씩 이 땅에서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옛날만 같았어도 육각 성냥갑으로 된 'UN성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었지요.

그리고 다방이나 음식점에 가면 카운터 옆에 자기네들 상호를 찍어놓은 미니 성냥갑들을 놔두고 아무 손님이나 집어가게끔 그렇게 흔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글쎄 그런 성냥들이 우리 생활 주위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 봐도 성냥은 없고 그 자리를 일회용 라이터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다시 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성냥을 찾으려고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을 모두 뒤져보았습니다. 그러나 책상 서랍 구석에서 겨우 성냥 몇 개비를 찾았을 뿐입니다. 할 수 없이 아파트 입구에 있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성냥이요? 일회용 라이터를 쓰시지요. 왜 성냥을?"

남의 속도 모르는 주인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었어요. 몇 군데 가게를 더 돌아 다녔지만 모두 허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큰 할인매장에 가봤습니다.

"성냥이요? 그런 거 없는데요."
"요즘은 성냥 찾는 사람이 없어서…."

모두 한결같은 대답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재래시장이 있는 5일장에 가서 이 잡듯이 뒤져 보았으나 없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어디냐구요? 경기도 일산이지요. 일산에도 없는데 서울시내라고 있겠어요?

참 암담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가스로 불을 켜는 기계적인 재미도 있겠지만 손으로 그어서 불을 켜는 낭만(?)도 이젠 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좀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인터넷을 뒤지면 성냥 공장을 찾을 순 있겠지만 성냥개비 산다고 인터넷까지 뒤지기는 솔직히 싫었습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 '답글' 쓰는 곳에 "성냥 구할 곳이 없을까요?"하고 글을 올렸더니 여기저기서 보내주겠다는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설마 보내줄까?' 한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마가 진실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웬 택배상자가 와 있었습니다. 시흥에 있는 모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여성 분이었습니다. 상자를 뜯어보니 성냥이 다섯통씩이나 들어있었습니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온라인에서 오간 말이 실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더더구나 보내주신 분의 성의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한동안 얼떨떨했습니다.

그 뒤에도 아는 친지 분들이 어떻게 구했는지 각종 성냥갑을 소중히 싸들고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성냥공장들이 모조리 문을 닫은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림화구 옆에 쌓여있는 각종 성냥갑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화구 옆에 쌓여있는 각종 성냥갑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강인춘
그동안 보내주신 성냥개비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집 뒤 편 창고에 쌀가마니가 가득 찬 것처럼 배가 부릅니다. 이제 성냥개비 걱정이랑 하루아침에 사라졌습니다. 그 놈 가지고 매일 수 십 개비를 그려도 일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 제 화구 옆에 잔뜩 쌓여 있습니다. 성냥개비 주신 분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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