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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이 많이 들어간 호박죽.
팥이 많이 들어간 호박죽. ⓒ 김은주
지금 만들 요리, 호박죽도 이 아줌마에게서 배운 요리다. 처음 우리가 만나는 자리에서 함께 호박죽을 먹으면서 너무 맛있다고, 방법을 물었다. 그 아줌마는 자기 집에서 직접 만들면서 내게 시범을 보이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고맙고 그리운 아줌마지만 이사를 몇 번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겼다. 허나 이맘때 호박죽을 끓일 계절이 돌아오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호박죽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강낭콩이 몇 알 들어간 노란 호박죽을 학교 식당이나 시장 골목 리어카 식당에서 사먹곤 했는데, 이 아줌마가 끓인 호박죽은 내가 지금껏 먹었던 호박죽하고는 조금 달랐다. 호박죽이 노랗지가 않고, 팥이 많이 들어가 팥죽처럼 보였다. 그러나 먹어 보면 호박 맛이 느껴지는, 호박죽임을 알 수가 있었다. 맛도 학교 식당에서 먹었던 그 호박죽보다 몇 배는 좋았다. 이 호박죽의 비결은, 팥을 많이 넣는다는 것이었다.

늙은 호박이 많이 나오는 요즘 같은 철이면 어김없이 겨울내 먹게끔 호박 서너 통을 샀다. 그리고는 하루 날 잡아 호박을 손질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겨울 반찬으로 김장을 하고, 다른 나라들은 잼을 만들기도 하고 피클을 만드는 곳도 있다. 우리 집에서는 호박 다듬는 게 겨울을 준비하는 큰 일 중 하나였다. 겨울 간식을 위해 호박을 준비하는 것이다.

큼직큼직하게 자른 호박.
큼직큼직하게 자른 호박. ⓒ 김은주
먼저 호박을 반으로 갈랐다. 나눠진 호박을 또 반으로 나누어 호박을 8등분을 하고는 씨를 털어낸다. 여기까지는 별로 어렵지가 않은데, 딱딱한 껍질 벗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이 일을 계속 해오다 보니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과일 벗기듯이 하면 칼에 손이 베일 수도 있고 위험천만이니까 호박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껍질 위에 칼을 올려놓았다가 무 자르듯이 껍질을 벗겨내면 그래도 좀 수월했다.

큼직큼직하게 잘라서 1회용 비닐봉지에 호박죽 한 번 끓일 정도씩만 담아 냉동실에 얼렸다. 호박죽이 어려울 것 같지만 호박만 준비되면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만들기가 간단하면서 간식으로는 정말 좋았다.

물은 호박과 팥이 잠길 정도로.
물은 호박과 팥이 잠길 정도로. ⓒ 김은주
큼직큼직하게 자른 호박을 커다란 솥에 넣는다. 호박죽이 끓으면서 넘칠 수도 있고 젓기에 편하려면 좀 큰 솥이 좋다. 그리고 팥을 깨끗하게 씻어서 호박이 들어 있는 솥에 쏟아붓는다. 물은 호박과 팥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붓고 센 불에서 끓인다.

호박이 끓고 있는 동안 불려 놓았던 한 컵 정도의 쌀을 분쇄기에 물과 함께 넣고 갈면 뽀얀 물이 생기면서 쌀이 갈아진다. 곱게 갈수록 더 빨리 골고루 익게 되니까 최대한 곱게 가는 편이 좋다. 이때 찹쌀로 갈아서 해도 되고, 슈퍼에서 파는 찹쌀가루를 물에 타서 써도 되는데 맛은 찹쌀을 불렸다 쓰는 게 나은 편이다. 또 맵쌀을 쓸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찹쌀의 끈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맵쌀을 써서 "후루룩" 부담 없이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호박이 다 으깨질 때까지 저어준다.
호박이 다 으깨질 때까지 저어준다. ⓒ 김은주
호박과 팥이 완전히 다 익어서, 호박은 거품기로 저으면 완전히 으깨질 정도가 되고, 팥도 손가락으로 누르면 힘없이 으깨질 정도가 되면 이제 쌀가루를 넣고 거품기로 저으면 된다. 이때 설탕을 넣어서 단맛을 가미해야 호박죽이 더 맛있어진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해서 1분 정도 더 끓이면 호박죽이 완성된다.

우리 집은 이렇게 겨울에 가끔 호박죽을 끓여 먹었다. 냉동실에 호박을 많이 잘라뒀기에 겨울 내내 쉽게 해먹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호박죽을 많이 끓여서 냉장 칸에서 보관하면서 차갑게 먹어도 또 나름대로 특별한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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