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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시전 인근의 대장간.
'구구구구….'
아직 미명도 되지 않은 시각에 대장간 창틀에 앉은 새가 요란스레 울었다. 비에 젖은 깃이 밤을 홀딱 날아 이곳에 도착했음을 알게 해주는 잿빛 비둘기였다.
'전서구(傳書鳩)!'
안 채에서 잠들어 있던 복 서방과 천돌이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천돌이가 방문을 열고 나가 대장간 창틀로 다가갔다.
"본영에서 온 전갈입니다요."
긴요불급한 상황에만 사용하기로 한 전서구였으나 대원군 암살 소식을 접한 직후 대책을 묻느라 본영으로 먼저 전서구를 날린 것은 이쪽이었다.
비둘기가 천돌이의 손등에 올라탔다. 복 서방이 다가와 비둘기 발에 매인 작은 통에서 투전 반도막만한 종이를 꺼냈다. 세필로 쓴 숫자들이 빼곡했다.
어느새 천돌이가 비둘기를 우리에 넣고 <논어집주>를 들고 다가왔다. 복 서방이 서신에 적힌 숫자대로 책에서 행과 열을 찾아 해당하는 글자를 찾은 후 손가락으로 대장간 바닥에 썼다.
"호, 노인(護, 老人)!"
복 서방이 낮게 읊조렸다.
"대원군을 보호하라굽쇼? 아니 이제 와서 말입니까요?"
천돌이가 놀라 대꾸했다.
"넨장할, 오늘이 날짜인데 이 새벽에 전갈이 오면 어찌하자는 말인고."
"손 안 대고 코 풀게 생겼는데 왜 그럴까요. 저희가 할 일을 김병학이 대신하게 되었으니 더 좋은 일 아닙니까요."
복 서방의 말에 천돌이도 의아한 듯 물었다.
"뻔한 얘기가 아니겠느냐. 지금 늙은이가 제거되면 주적이 사라지고, 그리되면 왕, 김문, 조문, 유림, 군웅할거하는 모든 세력과의 한판이 불가피하다는 계산이겠지. 그러니 한동안은 더 있어주어야 할 것이야."
"하긴 저희 같은 놈이 내막을 알아 무엇하겠습니까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입죠."
"그나저나 칼에 베인 자리는 괜찮은 게냐?"
"헤헤…송구스럽습니다요. 헌데 김병학네 검귀 그 놈의 칼솜씨가 예삿솜씨가 아닙니다요. 다음번에 또 마주치면 줄행랑을 놓고 봐야겠습니다요."
천돌이가 농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내심 조씨들과 회합이 있다는 정보를 받고 김병학의 집에 숨어들었다가 당한 며칠 전의 봉변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 뻐꾸기로서도 접근이 어려웠기에 너를 불렀겠다만은 당분간 그 집에 드나드는 일은 삼가야 할 것 같다."
"예. 그놈 칼 부리는 솜씨뿐 아니라 눈썰미도 매서운 것이 뻐꾸기에게도 각별히 조심하라 일러야겠습니다요."
"그래. 그나저나 몸이 괜찮으면 속히 흰범(백호대)들을 불러야 할 게야. 난 뒷방에 아이들을 깨울 터이니 너는 청계천으로 가서 1대 대장에게 무장한 후 노량으로 나가 있으라 이르거라."
"예"
"오늘 진시에 수조가 있다하는데 벌써 묘시경이 가까워오고 있으니 제법 서둘러야 할게야."
"염려 놓으십시오. 제가 누굽니까요. 날래기로야 여기 도성 백호대 중 저를 따를 자가 있겠습니까요."
"예끼 이놈아! 그래서 가슴에 칼자국이나 남기고 다니느냐."
복 서방이 짐짓 장난스럽게 야단을 메겼다.
"헤헤…."
천돌이가 머리를 긁으며 자리를 피하듯 잽싸게 대장간 밖으로 나갔다. 복 서방이 대장간 구석에서 참숯들을 치워내고 밑에 깔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 담긴 보총 한 자루와 마병총 둘, 그리고 세 자루의 오혈포를 헤아렸다. 역시나 모두가 무장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양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 쓸지 모르는 그 때를 위해 우선 자신들에게 무기를 보내달라고 조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복 서방이 쩝 입맛을 다시며 총포와 탄환을 챙겼다.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도성내에 두 개 초나 되는 백호대를 총괄하는 백호대장이 나설만큼 이번 일이 녹녹치 않게 여겨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 엄청난 인파가 모일 그곳으로 백호대를 모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엔 당장 시간이 없었고 준비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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