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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수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알듯 말듯 한 자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뉘기요?”
“허! 절 모르겠습니까? 방서방이요. 방서방! 예전에 차선달님과 함께 잠시 얘기를 나누지 않았소이까?”
장판수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자신을 단번에 알아본 이상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여기는 보는 눈이 많으니 자리를 옮깁시다.”
강이 가까이 보이는 자신의 집으로 장판수와 짱대를 안내한 방서방은 대뜸 장판수가 바라는 바를 얘기했다.
“당장이라도 강을 건너려는 것이 아닙니까? 일전에 차선달과 여인네까지 무사히 강을 건너 심양으로 갔습니다. 허나 이리저리 채비도 해야 하니 오늘은 쉬고 내일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인네? 기럼 계화도 따라갔단 말이네?”
스스럼없이 모든 것을 얘기하는 방서방에게 장판수는 내심 의아함이 느끼긴 했지만 깊은 의심은 들지 않았다.
“뭐, 어차피 여독이 쌓여 하루쯤은 어디에서라도 묵고 내일 방도를 찾을 참이었습네다. 이렇게 만나 좋은 방도를 일러주니 저희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네다.”
방서방은 멋쩍은 표정으로 웃으며 어딘지 모르게 부산을 떨었다.
“어이구 뭘 그런 말씀을 다 하시나! 그럼 통발에서 붕어라도 건져와 푹푹 쪄 드릴 테니 여기 편히 계시구랴.”
방서방이 나간 후 짱대는 장판수에게 가까이 붙어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
“내 한양에서 눈치하나로 살아온 사람인데 저 방서방이라는 이를 보니 믿을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소이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장판수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혹시나 허튼 짓을 하면 당장 그 자리에서 요절을 내면 되지 않네? 지금은 두고 보며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너야 할 입장이니 너무 사람을 안 좋은 쪽으로만 보지 말라우.”
“허...... 그래도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난 영 믿음이 안 가는구먼.”
“됐어.”
장판수는 벌러덩 자리에 눕더니 코까지 골며 편안히 낮잠에 빠졌다. 짱대는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태연한 장판수가 불안하기만 했다.
“에구 벌써 주무시나.”
한참 뒤 방서방이 붕어를 약초와 함께 한 가득 쪄서 솥 째 들고 들어왔다. 고소한 냄새에 눈을 뜬 장판수는 잘 먹겠다는 인사도 없이 찐 붕어를 뼈째 씹어 먹었다. 짱대가 붕어 두 마리의 살을 발라먹은 사이에 장판수는 여섯 마리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어째 먹는 게 신통찮네? 방서방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붕어 쪄온 다고 그런 말한 거 아니네?”
짱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장판수를 본 뒤 방서방을 쳐다보았다. 방서방은 붕어를 먹던 손을 멈추고 장판수에게 짱대의 소개를 부탁했다.
“뭐, 별사람 아니니 신경 쓸 거 없소. 한양 장똘뱅인데 가다가 도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말입네다.”
자신을 무시하는 장판수의 태도에 짱대는 섭섭함을 느꼈지만 그런 그가 어쩐지 밉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방서방이 나간 뒤 장판수는 거나하게 트림을 한 후 다시 벌러덩 누워 중얼거렸다.
“이보라우 짱대.”
“예.”
“니 말이 맞아. 일부러 해본 말에 자네를 보는 눈길을 보니 저 치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기래서 말인데...... 내일 배를 타고 건너지 말고 의주 감영으로 가서 부윤을 찾아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전하라우.”
깜짝 놀란 방서방이 손을 내저었다.
“어찌 의주부윤이 저 같은 걸 만나주겠습니까?”
장판수는 허리춤에서 낡은 칼집과 자신의 호패를 끌러 건네어 주었다.
“이걸 보여주라우. 이걸 보여주고도 의주부윤을 만날 수 없다면 내 운이 다한 것인데 별 수 있갔어? 그리고 지금 당장 물건 하나만 구해다 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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