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주름 살이 활짝 펴졌습니다. 2년전 눈물만 글썽이던 심복순(73) 할머니는 카메라가 다가서자 "아이구 뭣을..."이라며 손사래까지 치시며 환화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심복순 할머니는 더 젊어진 것 같습니다. 헤어스타일도 더 멋져보입니다. 마음이 부자가 되서 그럴 겁니다.
하늘 높은 여느 가을 날, 2년여 만에 다시 찾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산3-21번지에서는 '막걸리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산3-21번지'에는 지난 50년 한국전쟁의 또 다른 상흔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이른바 '피난민촌'입니다.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세월따라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이룬 곳입니다.
사람이 떠나고 들어오면서 8가구만이 모여 살고있는 주민들은, 어느 순간 '남의 땅에 무허가'로 들어와 살고 있는 '부랑민' 신세가 된 듯 했습니다. 당장에 먹을 것도 걱정인데 언젠가는 쫓겨나야 한다는 불안감이 주민들을 눈물짓게 해 왔습니다.
피난민촌의 아리랑
사연은 이렇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월남 피난민들이 이 마을에 모여든 것은 1954년. 당시 이승만 정부는 피난민 구호대책으로 국유지에 초가집 한 칸씩을 마련해줬습니다.
그러던 중 박정희 정권 초기 부족한 국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국유지를 민간인들에게 매각하기 시작하면서 피난민촌도 어느날 팔려버렸습니다.
산3-21번지 역시 민간인 소유로 넘어간 것 입니다. 주민들은 땅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정부가 피난민촌 주민들에게 한 마디 통보도 없이 땅을 넘겨버린 것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불법건축물에서 살게 돼버린 주민들은, 비가 새는 양철지붕 하나도 땅 주인의 허락 없이는 손도 대지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들의 걱정이 더 심해진 것은 2001년부터 였습니다.
소유주가 집을 뜯어내라며 마을을 둘러 울타리를 치는가 하면, 2003년 경매로 이 땅을 인수하게 된 새 주인은 주민들을 상대로 점유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습니다. "남이 이 땅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고 피난민들이 (정부에) 진정서를 올렸지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2003년 10월 그 날, 마을 어귀에는 그렇게도 이쁜 봉숭아가 활짝 피었지만 심복순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릴 뿐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가 만능해결사나 되는 것처럼 생각했는지 주민들은 마을 입구까지 배웅하며 "잘 좀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건넸습니다.
피난민촌 사라진다... 새 집 지를 땅이 생긴 주민들
주민들의 사정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 곳은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 해 12월에는 문화단체들이 '피난민촌 아리랑'이란 주제로 아카이브 전시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이들의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2년.
2년전 마을 입구에 화사하게 피어있던 그 봉숭화처럼, 2005년 11월 심복순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피난민촌은 이제 사라질 처지입니다. 그러나 이들 8가구의 주민들은 크게 걱정이 안됩니다.
이들에게 새 집을 지어서 살 수 있는 '자기 땅'이 생긴 것입니다.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살펴준 소유주 김윤섭씨, 관할 구청과 주변의 도움으로 피난민촌 바로 옆 '산 323-9~20번지'가 주민들의 땅이 된 것입니다. 김윤섭씨가 산31-2번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대신 자신의 땅인 이 곳을 무상으로 제공해 준 겁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이 땅에 주민들은 새 집을 지을 겁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12월부터 집을 짓기 시작하겠답니다. 날씨가 추울텐데 좀 걱정스럽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이 문제겠냐". 세상을 다 가진 듯 마냥 미소가 머금어 집니다.
물론 피난민촌 주민들에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이 넉넉치 못한 탓에 새 집을 지을 비용이 걱정입니다.
하지만 서러웠던 세월을 생각하면 이제는 행복한 걱정거리가 됐습니다. 주민들은 지난 11월 10일 새 집을 지를 터에서 고사도 지냈답니다. 그리고 막걸리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다음 날도 주민들은 남은 음식을 핑계삼아 한 상 차렸습니다. 2년전 처음으로 자신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린 <오마이뉴스>가 고마웠던지 당시 취재진을 자신들의 잔치 상에 초대했습니다.
이 분들의 활짝 핀 미소가 너무 좋아보입니다. 피난민촌 주민들의 삶이 오늘만 같지는 않겠지만, '눈물만 글썽거려야 하는' 세월이 이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안현주 기자는 광주드림 사진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