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아파트 인허가를 둘러싼 의혹이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를 흔들고 있다. 이 사건 뒤에는 로또와 맞먹는 개발 이익이 보장된 아파트 인·허가권이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분당 신도시에서 고개 하나 건너에 위치한 광주시 오포읍은 건설업자들이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지역이다. 제2의 분당이라 불리는 이 곳을 두고 건설업자들은 "공사만 시작해도 대박"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곤 했다.
그러나 경기도 광주시는 수도권 지역의 상수원으로 오래 전부터 개발이 제한돼왔다. 그 때문에 지역민들의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 지역 박혁규(한나라당, 뇌물 혐의로 실형 선고) 전 의원과 김용규(뇌물 수뢰 혐의로 실형 선고) 전 시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수질오염총량제다.
수질오염총량제는 할당된 한도 내에서 오염물질 배출 총량을 규제하는 제도로, 목표 수질을 달성하는 범위 내에서 개발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입된 제도로 환경 보존을 위해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4년 7월 지자체 가운데 경기도 광주시가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외형적으로 수질오염총량제는 오염량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 같지만, 광주시는 이 제도를 방패막이 삼아 개발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수질오염총량제로 인해 개발사업이 제한됐던 지역에 숨통이 트이면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것은 당연한 일.
제2의 분당, 광주시 오포읍
더욱이 큰 돈이 되는 아파트 건설사업의 경우 업체가 신청한 수는 4만 세대지만, 이 지역에 배정된 물량은 8000세대밖에 되지 않아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배정 물량이 정해진 만큼 아파트 개발이 가능하도록 '땅의 용도 변경 승인'(지구단위계획 변경)을 받는 것이 당시 건설업체들의 절실한 요구였다. 지구단위계획의 경우 최종 승인권은 경기도지사에게 있다.
이런 탓에 땅의 용도 변경 승인을 받기 위해 건설업체들은 경기도와 정치권에 치열한 로비전을 벌였고, 지난해 11월 대검 중앙수사부가 금품 로비가 있었다는 첩보를 입수해 자체 수사에 나서게 된 것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박혁규 한나라당 전 의원과 김용규 전 시장이 오포읍 신현리에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한 LK건설(시행사) 권아무개 회장으로부터 8억 원과 5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확인됐다. 최정민 전 광주시의원 역시 1억 원 상당의 BMW를 상납 받는 한편, 로비 대가로 토지를 팔아 20억 원의 시세 차익을 남겨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관련자만도 1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6월 재판 과정에서 박혁규 전 의원이 오포읍 고산리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정우건설(시행사)로부터 '지구단위계획 변경 승인'을 청탁받고 2억5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지난 4일에는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최측근인 한현규(경기개발연구원장)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도 정우건설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광주시 오포읍 고산리 390-2번지 일대 31만㎡(약 9만3000평), 광주시 오포읍 고산리 주변에는 '아파트 인·허가'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여기에 포스코가 아파트를 지을 예정인데 정부가 자꾸 허가를 내주지 않아서 사업이 안 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고산리에 있는 ㄱ부동산 관계자는 '분양가를 얼마로 예상하느냐'는 물음에 "전체 9만평 가운데 공공시설 기부체납만 4만평에 이르고, 금융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결코 싸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뒤바뀐 건교부의 결정... 청와대 개입설 부상
포스코건설은 2002년부터 이 곳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성남 분당에 있는 정우건설을 시행사로 내세워 토지 매입에 착수했다.
정우건설은 포스코건설의 지급보증을 업고 무담보로 2000억 원을 빌려 2003년 초반 집중적으로 이 곳의 땅을 사들였다. 매입 가격은 평당 100만~120만 원. 그런데 아파트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땅의 용도 변경 승인부터 얻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자연보전권역이기 때문에 걸리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과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충족해야 할 뿐 아니라 수질오염총량제와 배치되는 점이 없어야 땅의 용도 변경 승인이 가능하다.
정우건설과 포스코건설은 지난 2004년 3월 광주시에 지구단위계획수립 요청을 하지만 권한을 가진 경기도는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논란이 되자 건교부에 질의를 하게 된다. 건교부는 5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이기 때문에 지구단위계획수립이 20만㎡에서만 가능하다"며 사업 승인 불가결정을 내렸다.
사업승인 불가 결정을 받은 정우건설과 포스코건설은 2004년 6월 감사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사업을 주도한 포스코건설은 2000억 원 넘는 사업비와 이자 등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구단위계획; 승인이 좌절될 경우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포스코건설은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규제 적용 대상은 지구단위계획 면적(31만㎡)이 아니라 주택법상 사업승인 면적(실제 주택을 짓는 땅의 면적 - 15만㎡)"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결국 감사원의 지시에 따라 건교부는 입장을 바꿔 지난 2004년 10월 경기도에 '지구단위계획' 승인을 허락했다. 이어 2004년 12월 광주시도 최종적으로 포스코건설이 2050세대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고산리 390-2일대의 31만 여평에 대해 '제1종 지구단위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광주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최종 분양 허가는 보류한 상태다.
땅 용도 변경의 결정적인 계기는 건교부가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과 감사원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은 포스코건설과 정우건설 관계자를 청와대로 불러 건교부 담당자에게 소개시켜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감사원은 건교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구단위계획은 단순한 도시계획이기 때문에 수도권 정비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해석을 내렸다.
청와대는 정 전 수석의 개입에 대해 "특별히 위법 사실을 저지르지 않았다"면서도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 전 수석의 처신이 부적절했던 데다 의혹이 확대될 경우 또 다시 게이트로 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는 다음 주 정찬용 전 인사수석과 건교부와 감사원 실무자들을 불러 로비 의혹을 조사할 방침이다.
개발 이익 앞에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드는 건설업자들 앞에 정치인들과 청와대 핵심 인사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일까? 검찰 수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