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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오버더퍼가 지은 '두 개의 한국' 표지
돈 오버더퍼가 지은 '두 개의 한국' 표지 ⓒ 길산
돈 오버더퍼가 전하는 '청와대 도청인사' 사건의 발단은 1996년 9월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된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건으로 남북간 긴장상황이 고조되고, 곧이어 터져 나온 크리스토퍼 당시 미 국무장관의 "'모든 당사자들'의 추가적인 도발행위 자제를 요구한다"는 발언으로 한미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던 시기, 국내 한 일간지에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 경우 육해공군 차원의 보복 공격을 가하기 위해 한국군이 북한 내 12개 공격 목표를 선정해 놓았다"는 기사가 보도된다.

이 내용은 최근 전 미국 국무부 통역관이었던 김동현(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씨가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강연 도중 언급하면서 지난 8일자와 9일자 <경향신문> <한국일보> <동아일보> 등 국내 주요 언론에 'YS, 잠수함 침투에 대북 타격물 선정' 등의 제하로 보도되어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이와 같은 북한 공격 계획에 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던 미군 사령부는 이 때 신문 기사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칙적으로 한국군에 대해 전시 '작전 통제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주한미군 사령부이기 때문이다.

돈 오버더퍼는 이 책에서 "남한 국방부 관리들은 서둘러 이 계획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미국 측은 사전 협의나 동의 없이는 한국군이 북한에 대해 군사 보복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시원스런 확답을 받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레이니 주한 미국 대사와 존 틸럴리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 공로명 외무장관, 김동진 국방장관 등이 당시 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남한을 방문한 존 도이치 미 CIA국장과 공로명 외무부장관 일행들 간에도 이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과 워싱턴으로 찾아간 김동진 국방부장관 사이에서도 같은 문제로 논의가 이어지는 등 한국 측을 상대로 다각적인 의견이 교환됐지만,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하게 된다.

공로명 전 장관 "그런 이야기 들어봤지만 나는 모르는 일"

장관 전화의 도청 가능성을 제기하는 돈 오버더퍼.
장관 전화의 도청 가능성을 제기하는 돈 오버더퍼. ⓒ 김범태
그러던 중, 11월 초 김영삼 대통령은 갑자기 공로명 외무장관을 해임한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공 장관이 김 대통령의 강경한 대북 정책에 이견을 표시했다는 보도가 떠돌고 있을 때였다.

저자는 이 책 565쪽과 566쪽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공 장관의 사임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지만, 그와 가까이 지내던 남한과 미국 관리들은 안기부가 김 대통령에게 건넨 공로명 당시 장관의 발언 기록이 화근이었던 것으로 믿었다"고 전한다.

전화 도청을 통해 수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발언 기록에는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정책에 공로명 장관이 개인적으로 이견을 표시했던 내용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돈 오버더퍼는 이같은 내용을 뒷받침하며 "남한의 한 전직 외무장관은 취임 당시 보좌관들로부터 '전화통화 내용이 도청될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라고 자신이 겪은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같은 역사의 한 단면에 대해 공로명 전 장관은 18일 기자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그런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알 수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이 같은 비화가 사실이라면 도청은 대통령이 장관을 해임하는 결정적 단초가 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관까지도 도청을 이용해 경질하는 주인공이 된다.

이처럼 같은 정부 아래서도 물고 물리는 도청에 담긴 질곡의 이야기를 단순히 어느 외국인 기자가 남긴 한국 현대사의 비화로 남기기에는 그 무게가 왠지 너무 무겁다.

두개의 한국 - 개정판

돈 오버도퍼 & 로버트 칼린 지음, 이종길 외 옮김, 길산(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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