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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머리가 맑지 못하다. 어제 마신 막걸리 때문일까. 나는 술에 약하다. 막걸리 한두 사발만 마시면 취한다. 물론 작은 사발이다. 그런데 어제는 조금 과했던 모양이다. 네댓 사발은 족히 마셨던 것 같다. 술기운 탓인지 어제는 내가 평소보다 말이 많았던가 보다. 얼마나 내가 말을 많이 했으면 그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까지 했을까.

"인터뷰를 누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나는 어제 그를 인터뷰했다. '○○○촌국수집'에서였다. 나는 좀 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집을 원했다. 이게 어디 예사 인터뷰인가. 1000꼭지 돌파 기념 인터뷰가 아닌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1000꼭지 기사를 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막걸리로 목을 축이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3년 6개월 동안 하루 한 꼭지 꼴

▲ 이종찬 시민기자입니다.
ⓒ 박희우
그가 누구일까? 궁금해 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물론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미리 1000꼭지라는 힌트를 주었으니 말이다. 이종찬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독자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그는 유명한 사람이다. 사는 이야기, 여행기사, 음식기사, 문화기사, 서평 등 어떤 글이든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다.

"1000꼭지 돌파, 참 대단하십니다. 언제부터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셨습니까?"
"2002년 5월 16일부터입니다."
"오늘이 11월 18일이니 3년 6개월만입니다. 하루에 한 꼭지 꼴로 썼다는 얘기인데 열의가 대단하십시다. 한 꼭지 쓰는데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세요?"
"3시간 정도는 잡아야겠지요."

3시간이라? 그는 글쓰기에 관한 한 베테랑이다. 그는 1980년도에 등단한 시인이다. 함석헌 선생이 운영하는 <씨알의 소리>에 '개마고원' 등 2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시만 쓰는 게 아니다. 소설도 쓴다. 그는 올해로 문단경력 26년째다. 따지고 보면 그는 반평생을 글만 써온 사람이다. 글이라면 이골이 났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한 꼭지 쓰는데 3시간이 걸린다?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글은 대충 쓸 수가 없어요. 일반 신문기사와는 확연히 다르니까요. 대충 썼다가는 기사로 채택되지도 않아요. 설령 채택된다 해도 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십상이지요."

우리는 공업고등학교 동창!

▲ 자못 심각한 표정입니다.
ⓒ 박희우
막걸리가 몇 잔 돌았다. 술기운이 슬슬 오른다. 그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재미있게 늘어놓는다. 나는 짓궂게도 그의 과거를 묻는다. 그의 과거와 나의 과거는 일정부분 겹친다. 나는 그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공장일기'를 즐겨 읽었다.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 역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화공과였고 나는 전기과였다. 우리는 한 울타리에서 공부했다. 졸업도 같은 해에 했다. 1978년도였다. 그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70년대는 중화학 시대였다. 공고졸업생은 중화학공업의 최대 역군이었다. 그가 말했다.

"저는 1978년 3월에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박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그때는 병역특례제도라는 게 있었습니다. 5년이었지요. 공장에서 5년만 근무하면 병역이 면제되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3년이 많은 8년을 근무했습니다. 병역특례제도라는 게 그랬어요. 영장이 나오는 날부터 5년이에요. 저는 영장이 3년이나 늦게 나왔어요. 그래서 8년을 근무하게 된 겁니다."

아마도 그의 특이한 경력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은, 어떤 글이든 사람냄새가 풍긴다. 밑바닥 사람들의 살아가는 냄새가 물씬 배어있다. 나는 그의 글을 사랑한다. 향토색 묻어나는 경상도 토속어가 그의 글속에서 꼼지락거린다. 나는 그가 <오마이뉴스>에서 오래도록 글쓰기를 바란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표정이 밝지를 못하다. 그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1000-1000클럽 만들면 어때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에게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으면 해요.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지요. 가령 100(기사 꼭지 수)-100(잉걸 이상 기사>클럽이나 500-500클럽, 1000-1000클럽 등을 만들어 그곳에 등록되는 분들에게는 ○○전문기자라는 명함을 만들어 주고 원고료도 2배로 준다든지 하는 거지요. 특별취재비 형식으로 그런 분들에게 보조를 해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 하고요."

▲ 한명라 기자와 이종찬 기자입니다.
ⓒ 박희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는 나와는 다르다. 나는 직장이 있다.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서 글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아니다. 글 쓰는 게 직업이다. 누가 보아도 그는 유능한 사람이다. 그는 분명 <오마이뉴스>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1000꼭지 달성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그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1000꼭지 달성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는 글쟁이로서 글을 놓는다는 것은 목숨을 놓는다는 것과 같아요. 제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1000꼭지를 넘겼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의미는 아닐 터입니다. 1000이라는 숫자에는 제 삶의 모든 것과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희망이 새록새록 숨 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앞으로도 <오마이뉴스>라는 원고지 위에 글을 쓸 것입니다. 2000꼭지 아니 3000꼭지를 넘어설 때까지요."

그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공기가 제법 찼다. 친절하게도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집 앞에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고 했을 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들른다는 것이었다. 그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떠났다. 나는 그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었다.

'친구야, 자네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제일 많은 기사를 송고한 시민기자는?
신종철 기자 1561건 송고...500건 이상 게재한 시민기자 22명

가장 많은 기사를 쓴 시민기자는 과연 누구일까. 현재까지 1000건 이상(생나무 기사 제외, 11월 16일 기준)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자는 모두 5명이다.

그중 법률계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해주는 신종철 기자가 가장 많은 기사(1561건)를 송고했고, 그 다음으로 사회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이민우(1181건), 지역민방과 언론 관련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김철관(1163건), 남도의 섬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주고 있는 이돈삼(1142건) 기자 순이다.

그 다음 '비음산' 기사로 1000번째 기사를 보내온 이종찬 기자가 다섯 번째. 포토에세이를 꾸준히 게재하고 있는 김민수 기자(926건)를 포함해 500건 이상 기사를 쓴 기자는 모두 22명이다.

덧붙이는 글 | 어제 인터뷰 장소에 한명라 시민기자님도 참석했습니다. 자리를 빛내주신 한명라 시민기자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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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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