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에서는 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자기 집을 갖고 홀로 사는 노인층이 증가하고 있다.
1998년 호주 통계국 자료에 의하면, 호주의 65세 이상 노인 80%와 80세 이상의 고령층 절반 이상(남 75%, 여 50%)이 혼자 살거나 노부부끼리 기거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약 5.9%만이 양로원이나 보호시설에서 여생을 보낸다.
이중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은 육체적 질병과 장애, 치매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로 인한 사고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시청각 장애를 겪고 있는 한 80대 노인의 경우, 일주일에 두 번씩 정부 파견 도우미가 집안 청소 및 간단한 쇼핑, 공과금 납부 등을 대신 해주고 있지만 사고가 생길 경우 실상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말기 암으로 투병중인 노부부가 간병인 또는 가족 없이 생활하는 경우도 발견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호주 노인들은 자식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사느니 차라리 길에서 천막을 치고 기거하겠다며 독립적인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0월 서부 호주 퍼스에서 개최된 전국 가택현황관련 모임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가난했던 과거에는 피치 못해 한 집에 모여 살 수밖에 없었지만 경제사정이 좋아진 요즘은 아들 내외, 손자의 집에 얹혀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조사 결과에 의하면 곧 노년을 맞이하게 될 50~59세 연령층의 약 3분의 1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보다 자신의 여생을 위해 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노년층의 분위기는 노년기의 지속적인 수입을 위해 나이에 제한 없이 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하도록 적극 권장하는 호주정부의 영향도 크다.
호주 정부는 2004년, 기존 55세 정년퇴직이라는 일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에 돌입했다. 일이 힘에 부칠 경우 퇴직을 고려하기보다 반일제나 임시직으로 전환하여 서서히 은퇴를 맞이하도록 한다거나, 은퇴 전이라도 연금의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수령할 수 있게 하여 보다 안정된 노후설계를 장려한 것.
그러나 노년들의 일자리는 보장됐을지 몰라도 쇠약해진 노년들의 건강 돌보기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호주 정부 "노인 간병 가족에게 보수 주겠다"
이로 인해 호주 정부는 노인인구 급팽창에 따른 노인 케어 수요 폭발에 대처하기 위해 노인복지시스템의 대대적 손질을 시작했다.
인구 통계국의 1998년 조사에 따르면 1998년 현재 호주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인구의 12%인 230만 명이지만 2031년에는 510만 명, 2051년에는 630만 명으로 팽창돼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가운데 85세 이상 인구는 현재의 4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기존 노인복지제도로는 이들을 충분히 부양할 수 없다는 것.
호주 정부가 검토 중인 노인복지정책의 개선 골자는 국가와 사회가 주축이 되어 노인을 부양하는 현 제도를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을 받는 개인부양정책으로 그 축을 바꾸는 데 있다. 즉 정부가 일차적으로 맡아하던 노인 보호와 간병을 배우자나 중년의 자녀, 성인 손자들, 친척, 친지, 친구 등 여력이 닿는 주변사람들에게 위탁하는 방침으로, 간병을 맡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줄리 비숍 노인복지부 장관은 10월 말 대언론 담화를 통해 "향후 10년간 베이비 붐 세대가 노령인구로 편입되는 시점에는 노인케어에 대한 선택 범위가 다양한 범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며 "보호와 간병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가 개별적으로 원하는 케어(Do-it-yourself aged-care plan)를 직접 선택하면 거기에 물적, 인적 지원을 뒷받침하는 '맞춤 케어'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인들은 간병이나 생활 보조에 필요한 인적 지원뿐 아니라 질환 완화에 도움이 되는 특수침대나 휠체어 등 보조 기구를 구입하거나, 환자 위주의 집안 개조, 노인용 시설 마련을 원할 경우 정부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직접 지급받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게 된다.
노인 케어 비용을 놓고 가족끼리 싸운다면?
정부가 추진 중인 노인복지제도의 변화에 대해 호주 인들은 비교적 건강한 배우자나 중년의 자식들, 손자 손녀들이 간병을 자처할 경우 사회 전체의 다양한 연령대가 노인 문제에 동참하고 책임을 서로 나누게 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판단력이 흐린 노인을 상대로 케어비용을 놓고 금전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비숍 장관은 최근 각 언론기관을 통해 "노인들이 착취를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이라며 "노인이나 가족들이 필요의 우선순위와 선택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경우 주치의나 전문복지사 등 중재인이 개입하여 문제 해결을 돕고, 보호자들 간에 분쟁이 생길 경우에도 중재인이 개입해 케이스별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주도하던 노인복지정책이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경우 안전사고나 범죄가 늘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휠체어에 의지하는 94세의 노모를 보살펴오던 64세의 아들이 욕실에서 미끄러져 사망한 뒤 노모마저 뒤따라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 모자의 시신은 한 달 만에 발견됐다. 그런가하면 간병에 지친 49세의 아들이 거의 앞을 못 보는 83세의 노모를 둔기로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4일 대법원에서 유죄판정을 받은 일도 있어 가족 중심 노인 보호의 단적인 문제사례로 지적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시스템의 큰 변화를 앞둔 노인들의 심경도 편치만은 않다.
퀸즐랜드 주 타운스빌에 거주하는 올해 65세의 한 할머니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경우 편의에 따라 보호자나 간병인이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 불안하다"며 "또 노인들이나 비전문가 가족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할머니는 "제도를 정착시키기에 앞서 가족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정규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나 훈련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노령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 정부의 노인 맞춤 케어 정책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호주 정부는 "보수 지급을 전제로 하는 가족과 친지 중심의 노인 케어는 이미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실시중인 제도"인 점을 강조하며,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