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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평구로는 찌른 순간 손의 감촉이 무디었음을 느끼고서는 크게 당황했다. 장판수가 몸을 돌려 피하는 바람에 평구로의 칼은 나무에 깊이 박혀버린 채였다. 평구로는 있는 힘을 다해 칼을 뽑아내려 했지만 칼은 단숨에 뽑히지 않았고 그 사이에 장판수는 넓은 곳으로 몸을 피하고 있었다. 겨우 칼을 뽑아낸 평구로의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고노야로!”
당황한 평구로의 입에서 일본말이 튀어 나왔다. 장판수는 발의 위치를 바로 하고 칼을 앞으로 당겨 자세를 바로 잡았다. 평구로는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전진 해 장판수와의 간격을 좁혔고 장판수는 다시 몸을 뒤로 물리며 후비고 들어오는 평구로의 칼날을 가볍게 쳐 내었다. 평구로는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않고 자세를 풀고서는 칼을 칼집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확실하군.”
비록 먼저 칼을 거두었지만 장판수는 평구로가 행여 기습이라도 가할지 몰라 그를 조심스럽게 주시하며 조용히 칼을 내려트렸다.
“자네가 이겼다.”
평구로는 패배를 자인했지만 장판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좀 더 공격할 수도 있지 않았네?”
“아니다. 내가 지금처럼 공격한다면 자네는 막기만 할 것이다. 내가 몸을 돌보지 않고 공격해 온다면 둘 다 죽을 것이다. 그건 나로서는 바라지 않는 일이다. 다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왜 아까 그 상황에서 날 찌르지 않았냐는 거다.”
평구로가 말하는 상황은 자신의 칼이 나무에 박혔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 가볍게 평구로의 옆이나 뒤로 돌아 찔렀다면 승패는 자명한 일이었지만 장판수는 그러지 않고 뒤로 물러서 다음 공격을 기다렸을 뿐이었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지체 없이 찔렀을 거라우. 자네는 조선 사람도 아니고 역적 놈들과 뜻을 같이하는 왜인이 아니네? 하지만 그냥 찌르기 싫었네.”
“그냥?”
“그렇다우. 그냥...... 내가 왜 자네를 죽여야 하나? 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우.”
평구로는 옅게 웃으며 맨바닥에 앉았고 장판수도 바닥에 마주 앉았다.
“그 할일이란 게 심양으로 가 포로로 잡힌 조선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인가?”
“기래. 내래 이제는 너희들과의 악연을 끝냈으면 한다우.”
평구로는 고개를 내려트린 채 한숨을 쉬었다.
“결국 사람은 잡지 못하고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군. 장...판수라 했던가? 그 칼은 가져가라.”
장판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칼은 필요 없다우. 칼을 지니게 되면 쓰게 되고 그러면 지금처럼 원한만 사지 실제로 되는 일은 없었어.”
“앞으로 위험할텐데.”
장판수는 등을 돌리며 말했다.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우.”
평구로도 서서히 일어서며 품속을 뒤져 작은 꾸러미를 꺼내었다.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아무런 속죄도 하지 못했다. 지금 장판수 당신을 만나 내가 해야 할 일 하나가 생겼다.”
평구로가 꺼내든 꾸러미 안에는 작은 사금파리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이쪽으로 두청의 졸개들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잠깐 이 늙은이의 얘기를 들어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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