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지역 농민들이 23일 '쌀 관세화 유예 협상 비준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처리에 반발해 농기계 시위를 잇따라 벌였다.
경찰과 전농 광주전남연맹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경 부터 영광군, 나주시, 함평군 등 전남지역 16개 시군 농민 2000여명이 수백대의 농기계와 트럭으로 고속도로와 국도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영광군 농민 100여명은 농기계 등 50여대를 몰고 이날 오전 11시경부터 영광IC 부근에서 상경을 시도했다. 이에 경찰이 막았지만 트랙터 5대가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을 전체를 10여분 이상 점거했다. 함평에서도 농민 80여명이 서해안고속도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마찰을 빚었으며 20여분 동안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농민들, 전남지역 곳곳서 도로 점거 시위
또 무안, 화순, 보성, 고흥, 나주, 곡성, 강진, 순천 지역에서도 800여명 이상이 농기계와 트럭 등 300여대를 동원해 도로 점거시위를 벌였다. 특히 광주로 향하던 화순지역 농민 100명은 경찰이 막자 너릿재 부근 도로를 점거한 채 벼와 볏짚, 폐타이어 등을 태우며 정부의 쌀 정책 등에 항의했다.
나주 농민 120여명도 오전 10시경부터 100여대의 트럭터와 트럭으로 광주-목포 간 국도 3곳을 점거했다. 농민 최영주(43·나주 남평)씨는 "농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을 우리가 맞이한 것 같다"며 "소 키우라고 해서 소를 샀더니 수입소를 들여오고, 전업농 육성하겠다면서 논을 사라고 하더니 이제는 쌀을 완전히 개방하려한다, 왜 죽으라고만 하느냐"고 비난했다.
시위에 나선 나주 농민들은 오후 4시 영산포 삼거리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비준안 본회의 통과 소식에 흥분해 남평 RPC(미곡종합처리장)을 폐쇄하겠다면서 남평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과 경찰의 마찰이 빚어졌다.
경찰의 제지로 남평으로 향하지 못한 농민들은 오후 6시 20분경까지 나주여고사거리-교동사거리 부근까지 도로를 점거하고 규탄대회를 열었다.
농민들은 "농업말살, 농민말살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며 강력 반발했다. 안영현 나주시농민회 회장, 정만식 부회장, 이기열 산포면지회장 등 6명은 비준안 통과에 항의하며 삭발을 하기도 했다. 또 이들 농민들은 이양기 1대와 나락 10여가마를 불에 태웠다.
이 과정에서 한 농민이 자신의 트럭을 불타고 있는 이양기를 향해 돌진해 불상사가 발생할 뻔했다.
"미친 운전사는 끌어내려야... 나주의 망월동을 만들자"흥분
규탄대회에서 농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분노를 폭발시켰다. 나승범 나주농민회 정책실장은 "비준통과는 120여명의 의원들만 했을 뿐"이라며 "우리는 결코 비준해 줄 수 없다, 투쟁은 이제부터"라며 의지를 다졌다.
나 실장은 "이제 우리는 나주의 '망월동'을 만들 각오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며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 농민의 현실이요, 노무현 정권 퇴진운동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유상옥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장은 "농업이 무너져 다시 살리려면 100년이 걸린다, 국회는 미쳤다"면서 "미친 운전사에게 운전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친 운전사는 노무현 정권이다, 이런 운전사는 끌어내려야 한다"고 규탄했다. 안영현 나주시농민회장은 "오늘은 정부가 그렇게 말살을 해왔던 농업과 농민을 포기한 날이다"며 "이제는 훨씬 더 크나큰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규탄대회에서 김성자 나주여성농민회장은 '나주농민 시국선언문'을 통해 "한칠레 FTA투쟁 처럼 국회비준만 되버리고 나면 농민들이 제풀에 쓰러져 망연자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더욱 강력한 대정부투쟁을 전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쌀 개방 압력에 굴복한 사대매국 정권과 국회의원, 농민말살에 앞장 선 매판관료를 '농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응징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광주시당과 전남도당 앞에서는 이날 오전 30여명의 농민들이 면담을 요구하며 사무실 점거농성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24일 광주시농민회는 광주시청 앞에서 야적시위 등을 계획하고 있으며, 농민단체들은 이후에도 야적시위 등을 지속해 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