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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감독관에게 지급된 금속탐지기
복도 감독관에게 지급된 금속탐지기 ⓒ 김형태
복도감독관은 이 금속탐지기로 시험 도중 화장실에 가는 학생에게 금속탐지기를 들이대고, 이상을 없을 경우 화장실까지 따라가 일일이 칸까지 지정해 줘야 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맡았습니다.

심지어 이 검색기를 들이대는 것이 꺼림칙해 생리현상도 참고 시험을 보았다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10여 년간 수능 감독을 했지만, 이런 것까지 들고 감독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수험생이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아야 하니 참으로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라는 박 선생님의 탄식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복도 감독관 대부분은 내가 교사인가? 경찰관인가? 정체성의 혼란까지 겪어야 했으니까요.

사회 어느 곳보다도 서로 믿어주고 순수해야할 학교가 어쩌다 불신의 표상으로 오롯하여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금속탐지기를 들이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참으로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수험시험장에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하는 일이 과연 교육적일까?
수험시험장에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하는 일이 과연 교육적일까? ⓒ 김형태
이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화장실 가겠다고 나오기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대니 진동이 오고 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휴대전화 있으면 꺼내라"고 했더니 그 학생은 휴대전화를 아예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니, 그 학생은 아픈 다리에 철심을 박았는데, 그것 때문에 금속탐지기가 작동한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알리고 싶지 않은 신체상의 비밀을 토로한 것에 대해 얼굴이 상기되면서 무척 창피해 했고 저도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무안하고 난감했습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그 학생에게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준 것입니다.

가뜩이나 시험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은 이렇게 어느 해보다 살벌하고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무서워진 수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대부분 수능을 처음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어제가 어떻게 기억되고 각인될지 걱정스럽습니다.

지문날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듯이, 몇 명의 부정행위자를 적발한다는 명분 아래 전국 모든 시험장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가며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지 되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고육책으로 금속 탐지기를 동원하기는 했으나 부작용, 인권침해 등을 혹시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이의를 제기할까봐, 또한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볼까 솔직히 고민되고 조심스럽다"고 말합니다.

과연 다음 수능시험에는 이 금속탐지기가 사라질까?
과연 다음 수능시험에는 이 금속탐지기가 사라질까? ⓒ 김형태
보도에 의하면, 교육부와 언론의 수차례 사전예고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를 소지한 채 시험을 본 수험생이 27명이랍니다. 작년 수능 때 휴대전화 부정 파문이 전국을 강타하여 올해부터 휴대전화 소지가 아예 금지됐지만, 이날 부산 정보관광고에서 J고 3학년 K(18)군이 시험 도중 전화벨이 울려 적발되어 퇴장당했고(K군은 휴대폰 알람으로 1교시 시작 시각을 맞춰 놓았다가 휴대폰을 갖고 있던 사실을 잊은 채 시험을 봤다고 함), 서울 경기고에서도 한 수험생이 1교시 언어영역 문제를 다 풀고 화장실에 가려다가, 주머니에 꺼진 휴대폰이 들어 있던 사실이 드러나 감독관과 교육청으로부터 부정행위라는 판정을 받은 뒤 귀가 조치를 당했다고 합니다.

제가 감독했던 고사장에서도 4교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수험생의 가방에서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울려 감독관이 그 학생을 시험본부에 인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걱정하던 어머니가 시험이 끝난 줄 알고 전화를 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왜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느냐고 묻자, 그 학생은 가방 속에 있는 것은 괜찮은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휴대폰 소지 사실이 적발되면 부정행위로 처리한다'는 새 수능 규정에 따라 최종심사에서 부정행위자로 간주될 경우, 올해 수능은 무효처리 되고 내년에도 수능 기회가 박탈됩니다.

그러나 이 규정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입니다. 부정행위를 하지도 않았고 단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효처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들의 대부분은 의도된 행위라기보다 긴장한 나머지 저지른 실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년 수능에 응시할 기회까지 빼앗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벌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일고 있습니다. 또한 휴대폰을 소지하고도 적발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형평성 문제도 제기됩니다.

물론 수능 부정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행위자에게는 엄격한 법적용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인한 선의의 피해자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학생작품 : '신문지속의 푸른 세상' / 나비와 잠자리는 푸른 하늘을 맘껏 날고 싶어도 사건 사고로 점철된 신문지에 갇혀 그럴 수가 없다. 언제 우리 아이들은 푸른 세상에서 마음껏 날 수 있을까?
학생작품 : '신문지속의 푸른 세상' / 나비와 잠자리는 푸른 하늘을 맘껏 날고 싶어도 사건 사고로 점철된 신문지에 갇혀 그럴 수가 없다. 언제 우리 아이들은 푸른 세상에서 마음껏 날 수 있을까? ⓒ 김형태
한 점이라도 더 맞기 위해 눈돌리는 수험생
나는 어느 순간 선생님 아닌
감시자의 신분으로 눈에 쌍불 켠 채 서성인다
무슨 특종을 기다리는 기자도
살내음 좇는 하이에나도 아니건만

시험이란 두 글자를 놓고도
찬반이 분분하다
인간을 어떻게 몇 줄글로 판단할 수 있느냐
성취도 평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물론 시험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학생 및 출제자, 학부모도
모두 시험 없는 천국을 꿈 꾼다

그럼에도 성적으로 인격이 평가되고
시험으로 인생이 좌우되는 현실
시험은 필요악인가?

듣자하니 이스라엘 학교에는 시험이 없다는데
입시지옥 없어 살 맛 날까?

시험의 필요성 접어 두더라도
시험 감독은 정말 불신이 낳은 사생아!
학생을 믿을 수 없고 옆 사람을 못 믿겠다는
그러니 '신뢰 사회'는 노상 물 건너 산일 밖에

인천 J학교에서는 무감독 시험이 빛난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는데
왜 좋다고 고개 끄덕이면서도 정작 받아 마실 생각을 안 할까?

시험 없는 학교, 성적이 인격을 주무르지 않는 세상
아니, 시감 없는 교실만이라도 간절히 소원해 본다
철봉 끝에 달랑한 간의 심정으로

뭐, 백일몽 꾸지 말라고?
- 필자의 졸시 <시험감독을 하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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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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