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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슈 객잔 어르신.”

창잡이가 우뚝 멈춰 뒤돌아서서 평구로를 불렀다.

“어찌하여 간밤에 장판수를 쫓아 간 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겨우 여기까지 온 것이오? 풀숲에서 자다 나오기라도 한 게요?”

평구로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도망치는 이가 어찌 길만 따라 가겠나? 산속을 이리저리 뒤지다가 이리로 내려온 것이다.”
“그렇다면.”

창잡이가 창을 잡더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건 뭐란 말이오!”

순간 창잡이는 정확히 장판수가 숨어있는 곳으로 창을 날렸다. 장판수는 화들짝 놀라 튀어나왔고 그와 동시에 평구로가 창잡이를 덮쳤다. 장판수를 알아본 짱대는 놀라 ‘어어’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서다가 주저앉았다.

“이 늙은이가!”

창잡이가 평구로에게 깔려 버둥대자 다른 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서 있다가 장판수의 발길질에 맞아 나동그라졌다. 창잡이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 놈이 장판수다! 잡아야 하느니라!”

사내 하나가 정신을 차려 칼을 뽑아들었지만 곧 그의 목에는 서늘한 금속의 기운이 닿아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짱대가 일어나 단검을 뽑아들어 사내의 목에 겨누고 있었다.

“모두 무기를 놓고 물러서라! 누구라도 장판수 형님의 몸에 손 하나 까딱하면 이놈의 멱줄을 따버리겠다!”

짱대가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평구로는 창잡이를 제압하여 팔을 뒤로 꺾고 있었고 두 명의 사내는 이미 장판수에게 제압당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국 잠시 후에는 짱대가 칼을 겨누고, 평구로는 창잡이가 가지고 있던 올가미를 끌러 네 명을 굴비 엮듯이 꽁꽁 한곳에 묶어 두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제기럴! 이래서 왜놈은 믿지 말라고 했거늘! 게다가 난데없이 저놈은 또 왜 나선 것이야! 너희들 이러고도 무사할 듯싶으냐! 가이삿기들!”

창잡이는 난데없이 당한 것이 분한 나머지 욕을 퍼부었으나 평구로의 말 한마디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내 장초관의 얼굴을 봐서 자네들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다. 다음에 무기를 들고 마주치면 그땐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사내들을 뒤로 하고 다시 심양으로 길을 재촉한 장판수는 짱대를 윽박질렀다.

“야 이놈아! 내래 의주부윤께 도움을 청하라 했는데 어찌 하여 저 놈들과 한패가 되어 있었던 게냐!”
“그, 그게 말입니다요.”

짱대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간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사연인즉, 의주부에 가려던 짱대는 어찌된 일인지 문전 박대를 받아 발조차 들이밀지를 못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나루터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 강을 건너려던 창잡이 일행과 마주쳐 그 자리에서 일꾼으로 고용되어 장판수와는 하루 터울로 객잔에 오게 된 것이었다.

“불을 지른 자를 잡아야 한다고 하기에 밥값이나 하려고 따라 나선 것이지 별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수. 이렇게 만날 줄 누가 알았겠소이까.”
“네 놈을 믿은 내가 잘못이다.”

장판수는 심술 맞게 퉁을 놓았지만 한편으로는 임경업에 대해 섭섭함을 느꼈다. 짱대가 분명 호패와 칼집을 보여주었다고 했음에도 아무도 임경업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의주부의 기강을 보아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임경업이 알면서도 장판수의 곤란함을 모른 채 한 것이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늙은이는 누구요?”

짱대가 뒤 쳐져 오는 평구로를 곁 눈길로 슬쩍 보고서는 장판수에게 물었다.

“네 놈처럼 주는 것도 없는 내 뒤를 졸졸 따르는 자라우. 내래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원.”

짱대는 그 말이 재미있다며 낄낄 거렸다.

“아따 제가 형님이 뭘 준다고 해서 따르는 겁니까? 그 뜻이 옳아 보이니 작은 힘이라도 보탤까 해서 따르는 것인데.”

장판수의 눈매는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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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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