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림
그림 ⓒ 강우근
자기와 조금 다르다는 것 때문에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차별은 종류도 다양하고 형태도 다양하고 대상도 다양하고 이유도 다양하다. 그런 중에 태어나는 순간 이미 그 차별에 포함되는 태생적 차별도 있다. 인종 차별국가에서 차별받는 인종으로 태어나는 것이 그러하며, 남녀차별이 심한 나라(멀리 갈 게 어디 있나,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이 바로 그렇지)에서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차별하는 사람도, 차별받는 사람도 차별처럼 느끼지 않는 가운데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온통 차별뿐인 세상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지금 당신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의 자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앞으로 지우기 backspace' '뒤로 지우기 delete' '커서를 앞으로 보내기 home' '커서를 끝으로 보내기 end' '페이지업 pgup' '페이지다운 pgdn' 등 컴퓨터의 기능키들은 거의 다 오른쪽에 몰려 있다. 오른손이 사용하기 편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좌우대칭이 같은 듯 보이는 컴퓨터 마우스 역시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뭘 그런 걸 가지고"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의 일상 전체가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로 갈 때 우리는 문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고 오른쪽으로 비틀어 연다. 수도꼭지 역시 오른쪽으로 틀어야 하며, 변기에 물을 내리는 레버 역시 오른쪽에 붙어 있다.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 때, 이때 역시 냉동실과 냉장실 구분이 '상하 구분'이든 '좌우 구분'이든 어떤 경우에도 냉장실 문은 오른손으로 열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언뜻 보면 좌우 똑같아 보이는 가위도 왼손잡이는 불편하고, 오른손잡이가 사용하기에 편하게 만들어졌다. 대개의 오른손잡이들은 가위가 그렇게 생겼다는 것조차 모르고 산다. 전적으로 오른손용으로 만들어진 어떤 '폭력적이고도 무식한' 가위를 왼손잡이가 사용하려면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들어가는 작은 구멍에 왼손의 네 손가락을 억지로 끼워 넣어야 한다.

농기구 중에서 낫과 호미는 왼손잡이가 쓰는 것이 야구에서 왼손잡이가 쓰는 글로브처럼 구분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물건을 흔하게 구입할 수 있냐면 그렇지도 않다. 주문을 하고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한다.

세상은 온통 이렇게 오른손잡이 위주로 만들어졌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매일 쓰는 글씨도 왼손보다는 오른손으로 쓰기 좋게 만들어졌다. 어디서 읽은 글인데 왼손잡이들은 오른손잡이들보다 수명이 5년쯤 짧다고 했다. 오른손잡이 위주로 오른손잡이가 편하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왼손잡이는 스스로 느끼든 느끼지 않던 일상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순간순간의 일이 모두 차별이다. 정말 이거야말로 차별이 없겠지 싶은 부분에까지 두 손에 대한 차별은 도처에 숨어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사람들은(이런 데에 대해 문제와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아온 오른손잡이들 가운데) 뭐 그런 걸 차별이라고 '치사하게 말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큰 불편이든 작은 불편이든 숙명적으로 그걸 겪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이 문제를 조금 더 확대해 보자. 지난여름, 공사 완공을 앞두고 마지막 단장을 하는 청계천을 둘러보며 내가 깜짝 놀란 것 한 가지가 있었다. 거기에 심어 놓은 조팝나무, 줄기사철, 갯버들, 인동덩굴, 쑥부쟁이, 구절초, 다 좋은데 천변 쪽 보도에 심어 놓은 이팝나무가 꽃나무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시원하며, 가장 보기 좋은데, 그 나무가 청계천을 보러 나온 휠체어 장애인의 통행을 가로막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새물맞이 행사와 함께 그게 장애인의 원성을 사고 문제가 되는 것을 보았다.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왼손잡이보다는 오른손잡이 위주로 만들어지고 배치되었듯, 이 세상의 모든 시설 또한 '불편한 사람에게는 더욱 불편하게, 편한 사람에게는 더욱 편하게' 만들어져 있고, 또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왠지 너무도 아깝게 보이고 크게 보이는, 몇 년 후 더 자라서는 청계천을 상징할 나무로 보이기도 하는 저 이팝나무가 내 눈엔 바로 '그 나무 때문에 청계천 나들이가 불편한 절대 소수에 대해 그 나무로 청계천 나들이가 더 행복한 절대 다수'가 가하는 차별의 상징수처럼 보이는 것이다.

차별 중에 가장 나쁘고 폭력적인 차별은 '전체 중에 아주 적은 숫자의 몇 명만 눈감고 입 다물면 나머지 전부에게 다 좋을 텐데'하는 생각을 바탕에 깐 차별이다. 아깝고 아쉽다 하더라도 다른 핑계 대지 말고 서울시는 지금 그 나무를 옮겨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