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심 끝에, 그리고 이어진 고된 훈련 끝에 2002년 2월 '강산'이라는 새로운 길동무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년 시절부터 유독 강아지를 무서워했던 터라 내가 안내견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986년 봄날 우연히 앓게 된 결막염을 시작으로 점차 시력을 잃게 된 나는 일반 초등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하고 시각장애우들이 공부하는 특수학교로 진학했다. 그렇게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 특수교육을 전공하여 현재는 나의 두 눈이 되어 준 강산이와 함께 전북 익산에서 살고 있다. 강산이는 나의 안내견이다. 나의 두 눈이 되어 내가 어디를 가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나를 안내한다.
강산이와 같은 안내견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1년간의 'Puppy Walking' 안내견이 될 강아지를 1년 동안 맡아서 길러 주고 사회화시키는 자원봉사 활동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안내견이 되어 활동할 때를 대비하여 대중교통이나 다양한 사회 시설에 익숙해지기 위한 준비 단계로, 이 시기에 예비 안내견은 일반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철저한 배변 훈련과 사회성을 배운다.
이 과정이 끝나면 예비 안내견은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 입소하여 본격적인 보행 훈련을 받고, 엄격한 테스트를 통해 안내견으로 선발된다. 여기서 탈락하는 예비 안내견은 일반 가정에 분양되어 평범한 강아지의 생을 살게 되는 반면, 어려운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강아지들은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고자 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된다.
비장애인들은 안내견이 무조건, 어디든 알아서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아니다. 안내견과 함께 보행할 때 주도권은 시각장애인에게 있다. 그저 주인의 명령에 따라 방향을 잡아 이동하며 장애물이나 계단 등의 위치를 시각장애인에게 알려줌으로써 안전한 보행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익숙한 곳에서의 보행이나 자주 가는 목적지를 찾아갈 때는 전적으로 주인을 안내하는 감각도 지닐 정도로 명석하다.
그런데, 이렇게 고맙고 영리한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참으로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안내견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유 없는 출입 거부나 대중교통의 승차 거부 등을 접할 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안내견은 50여 마리에 이르는데 과거에 비하면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대중 매체나 안내견 학교의 홍보 활동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산이와 생활하다 보면 종종 그런 일들을 겪게 된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차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서 강산이의 출입은 절대 안 된다는 강경한 거부를 당했다. 강산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다반사로 빚어지는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린 그 상황. 대개는 안내견에 대한 설명을 듣고 특성을 이해하면 들어가게 해주기 마련인데, 가끔 타협의 여지도 없이 막무가내로 거부를 당할 때면 나도 함께 간 일행도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상해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 카페 역시 그랬다. 어차피 나와 강산이한테는 익숙한 상황이었기에 새삼스런 분노도, 불쾌함도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졌다.
우연한 기회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사건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안내견에 대한 인식 개선의 차원에서 카페의 지점장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강산이를 막무가내로 거부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인 지점장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이 드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국가인권위와 접촉하면서 안내견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지점장의 태도를 호의적으로 변화시켰겠지만, 국가인권위의 조율이 없었다면 지점장과 나는 한순간의 기분 나쁜 기억으로 서로를 평생 오해했을 것이다.
실제로 안내견의 출입이나 승차를 거부할 때에는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법 조항이 이유가 되어 마음에도 없는 출입, 승차를 허용하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특수교육을 공부하다 보면 장애의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 'disability, handicap'이라는 두 가지 용어를 접하게 된다. 'disability'는 기능적인 장애를 의미하는 한편 'handicap'은 사회적인 장애를 의미한다. 장애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많은 장애인에게 있어 'disability'는 생각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힘들게 하는 것은 'handicap', 즉 사회적인 장애다.
장애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성숙하지 못한 행동과,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하게 겪게 되는 사소하고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장애인의 삶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요소인 것이다.
나는 희망한다. 우리 사회의 보다 안정되고 성숙한 시민 의식과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 정책, 신체적인 장애가 내 삶 전체에 장애가 되지 않는 나눔과 배려가 풍성한 따뜻한 사회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