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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냄
<한국, 번영의 길>에서 글쓴이 공병호는 말한다. 지난 책 10년 시리즈에서도 꾸준히 주장해왔던 대로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라고 말이다. 하나는 번영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쇄락의 길이다. 당연 우리가 가야할 길은 자율과 경쟁의 원리를 따라 시장의 효율을 살리는 것이다. 두 나라의 사례를 보듯, 국가가 나서 시장에 개입해봐야 얻을 수 있는 건 경제 파탄뿐이다. 큰 정부의 해악은 단순히 현 경제를 망치는 데 끝나지 않고, 우리 미래 또한 그르치기 십상이다.

저자에 따르면 발전의 논리는 명쾌하다. 바로 자율 경쟁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졌던 가장 큰 이유가 사유재산이었듯, 시장의 효율을 높여 발전의 동기부여를 주는 것이 최선의 성장 방식인 것이다.

수백년 전 르네상스도 마찬가지였다. 도나텔로, 보티첼리, 다 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등이 활동했던 피렌체는 예술의 요충지였다. 그러나 당시 도시국가로 피렌체와 쌍벽을 이루던 베네치아엔 걸출한 예술가가 없었다. 나폴리, 밀라노 등 다른 도시와 함께 베네치아는 정부가 예술품 주문을 독점해 창조성이 나올 리 만무했다.

백자 기술도 마찬가지다. 17세기까지 백자 기술은 중국과 조선만 보유했고, 현대 도자기술의 선진국인 일본과 유럽은 17, 18세기에 기술을 익혔다. 임진왜란 당시 다이묘들이 조선 도공을 붙잡아가자 전쟁 후 광해군 시대엔 궁중 연례에 쓸 청화백자 항아리가 없어 전국에 수배할 만큼 도공들이 없었다. 더욱이 조선에서 도공은 실명을 걸고 작업할 수 없는 천민 계층이어서 장인 정신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다이묘들은 차와 도기에 심취해 도공들을 극진히 대접했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조선 도공들이 제작한 아리타야키를 수입해 유럽에 팔아 서양인들도 도자기 매력에 빠졌다. 도자기 무역을 통해 일본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지금도 야마구치 현의 하기야키, 가고시마 현의 사쓰마야키 등은 조선 도공과 그 후예들이 구워낸 유명한 도자기들로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공병호는 만모한 싱으로 경제 성장이 압축되는 인도, 영국병을 걷어낸 대처의 신자유주의, 아직 독일병에서 허덕이는 큰 정부의 어두운 그림자 등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자율과 경쟁의 원리와 얼마나 중요한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인간 문명의 요람 아테네를 말하면서도 최고의 발명품 민주주의와 사유재산제가 있었지만, 창의성이 꽃 피웠던 시대에 진짜 생산 기술인 농업과 수공업 같은 기술은 발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 원인으로 시민과 노예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시민은 노예를 부리며 유순하고 게으르게 만들었고 인센티브가 없던 노예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히는 <한국, 번영의 길>은 21세기 우리 경제의 시스템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율과 경쟁이라는 시장의 질서만큼 진리에 가까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이 책도 한계가 있다. 맹점은 성장론자의 그것처럼 거시적인 밑그림 이후의 구체적 해결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양극화, 비정규직 등 현안에 대한 뾰족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번영의 길>에 이르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10년 후 한국은 번영의 길을 걷고 있을지, 책을 읽으며 함께 고민해보자.

덧붙이는 글 | <한국 번영의 길>, 공병호, 해냄, 2005년 6월.


한국, 번영의 길

공병호 지음, 해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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