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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 책 표지
<아니메> 책 표지 ⓒ 루비박스
수전 J. 네피어의 <인문학으로 읽는 재패니메이션 아니메>에서 '아니메'는 통상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칭하는 일본식 발음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우리의 경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음으로 양으로 많은 양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수입되어 왔다.

기억을 조금 더듬어 보면, 80년도 방영되었던 한 드라마에서는 일본인들이 고의적으로 일본 애니메니션의 불법 비디오를 제작하여 국내에 유포시키는 에피소드를 방송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정규 프로그램에서 매일 같이 보면서 자라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화적 침략이니 종속이니 하는 당시의 걱정도 기우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 개방에 따라 직접 수입된 작품들이 극장에 오르고 있는 실정이고, 다양한 아니메의 세계는 그 다양성을 바탕으로 여러 계층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단순히 일본에서 제작된 작품이라고 해서 그 가치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에는 점점 더 복잡 다양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만화가 성숙한 매체가 된 지구상 최초의 나라, 일본

이렇듯 복잡하고 다양한 장르의 일본 아니메는 서구인들에게는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가고 있는 모양이다. 단순한 플롯에 뚜렷한 권선징악이 쉽게 드러나는 미국의 애니메이션들과 일본의 아니메는 분명히 다르다. <아니메> 저자의 말을 빌리면 "아니메는 미국의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하며, 감정과 심리 면에서는 더욱 거대한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차이로 인해 일본은 "만화가 완전히 성숙한 표현 매체가 된 지구상 최초의 나라"로 칭송 받기도 한다.

아니메가 글로벌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는, 아니메 자체가 초국가적이고 국적 없는 문화를 다루는 데 특히 잘 맞기 때문이며, 수많은 일본인 평론가들이 얘기하듯이 기본적으로 아니메는 '무국적'이기 때문이다. 아니메의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영화에서처럼 등장인물의 인종에 구애 받지 않는 점도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아주 국수적인 애니메이션들이 상당히 많지만, 본 책의 저자는 특정 작품들만을 토대로 확장되고 풍부해진 무국적의 예술적 공간으로서의 아니메의 역할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다.

종말, 페스티벌, 애수의 삼중주

저자는 이렇듯 복잡하고 다양한 아니메의 세계를 종말론, 페스티벌, 애수라는 세 가지 양식을 토대로 분류하려는 시도를 수행하고 있다. 일본 아니메에 나타나는 포르노그래피나 여성 등장 인물의 역할에 따라, 일본 사회에서의 성 정체성 변화에 대해 얘기하거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에 나타는 종말론적인 이유를 일본의 피폭경험과 관련지어 얘기하는 식으로, 아니메의 세계와 일본인, 일본 사회의 정체성과의 관련성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에 매료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극히 애매한 입장을 취하며, 많은 일본인들이 이 시기를 극히 선택적인 방법으로 기억하려 한다."

그들은 국가적 책임보다는 개인적인 추억에 기대어, 전쟁을 일으킨 주범은 권력과 군부로 몰아세우는 동시에 자기들은 '희생자'로 기억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몇몇 아니메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으며, 저자는 이런 부분과 당시 사회상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이런 전쟁에 대한 극히 애매한 태도가, 때로는 종말론적인 양식으로, 때로는 과거에 대한 애수로 작용하여 아니메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거품경제의 붕괴로 인한 남성의 지위 하락과 보수주의의 쇠퇴에 반발하여, 환상적인 여성 캐릭터를 주체로 하는 페스티벌적 아니메도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예리한 분석이 드러나는 곳은 아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타자의 존재(여기서는 자연과 테크놀로지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어, 모노노케 히메는 차이를 강조하면서 단순한 가치 기준이 아닌 복잡하고 어두운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타잔>으로 제시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결국 인간 중심의 배타적인 세계관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양 문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이 보여주려 했던 것처럼 아니메의 세계는 엄청나게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단일 범주의 구조로 분류하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린다."

아니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서사의 풍부함'이다. 과거-현재-미래를 오가며 어떤 종류의 어떤 얘기든지 만들어지고 보여진다. 이렇듯 풍부한 아니메를 창출하여 일본은 글로벌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실제로 수많은 서구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 부산물이 바로 이런 책일 것이다.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대부분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그런 작품들에 대해, 때로는 일반적으로 때로는 아주 예상치도 못한 분석의 잣대를 들이대어 해석해 내는 저자의 노력은 흥미롭다. 일본의 문화와 사회를 아니메로 읽어낸다는 책 뒷표지의 문구는 이 책을 제대로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이 책은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훌륭하게, 그리고 가끔 어렵고 무거운 문장들을 써가며, 일본 사회와 아니메의 세계의 관련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스스로, 이러한 노력이 쓸데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스스로 표출한다. 이런 의구심은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또한 저자가 접한 아니메의 종류와 깊이를 알 수는 없지만, 작품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눈에 띈다.

어려서부터 알게 모르게 인접한 일본의 아니메를 접해 왔던, 혹은 그 바탕이 되는 동양의 문화권에서 자라난 우리들에게, 서구인이 그 문화적 차이에서 느끼는 경외감이나 이질감에 대한 기술은 그리 흥미로운 것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독자에게 다가설 때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화나 역사는 실제로 일본에 비해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을 되돌아 볼 때, 일본 아니메의 저력과 그 근본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시하는 이 책은 특정 아니메 작품이 아닌 '아니메라는 문화적인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덧붙이는 글 | 도서 제목 : 아니메
저자 : 수전 J. 네피어 지음/ 임경희,김진용 옮김
출판사 : 루비박스


아니메 - 인문학으로 읽는 제패니메이션

수잔 J. 네피어 지음, 임경희.김진용 옮김, 루비박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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