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아니 땔지라도 절로 익는 솥과,
여무죽 아니 먹여도 크고 살져 한 걷는 말과,
길쌈 잘하는 여기첩과 술 샘는 주전자와, 양부로 낫는 감은 암소.
평생에 이 다섯 가지를 두량이면 부러울 것이 없어라."
이는 전통가곡의 하나인 남창가곡 '소용이'의 노랫말이다. 요즘 말로 바꾸면 "불을 안 때도 저절로 익는 솥, 여물을 먹이지 않아도 건강하게 살이 찌고 잘 걷는 말과 길쌈 잘하는 여자 기생첩과 술이 샘처럼 솟아나는 주전자와 양볶이(소의 밥통을 볶아 만든 음식)를 먹을 수 있는 검은 암소, 평생, 이 다섯 가지를 가진다면 부러워할 것이 없겠구나"란 뜻이다. 요즘도 그런 꿈을 꿀 수 있을까?
가곡(歌曲)이란 무엇인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인 전남대학교 강사 정인봉 씨는 이 전통가곡을 '영혼을 정화해주는 신선의 노래'라고 말한다. 또 '지문무자 지악무성(至文無子 至樂無聲)' 즉 '최고의 문장은 겉으로 드러난 글자 속에 숨어있고, 최고의 음악은 소리의 너머에 있다'라고 한 옛 현인의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장르 중 하나로 평가한다.
가곡은 다른 말로는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하며, 판소리, 불교음악인 범패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이라고 말한다.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는 오래된 노래 중 하나로 거문고, 가야금, 피리, 대금, 해금, 단소, 양금, 장구 등 소규모 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음악이다. 정가인 가곡, 가사, 시조 중 첫 손으로 꼽히며, 가지런한 형식미와 아름다운 선율을 지녔다.
또 가곡은 노래 부르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서 남창가곡, 여창가곡, 남녀창가곡 등 3가지로 나뉘는데 남창가곡은 굵직한 소리의 매력이, 여창가곡은 청아한 소리의 아름다움이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노랫말을 길게 늘여 뜨려 부르는데 특히 홀소리(모음)를 "이~오~우"처럼 늘여 부르는 게 특징으로 노랫말을 알고 듣지 않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다.
이 가곡을 50해 동안 불러온 사람이 있다. 그는 경북대학교 국악학과 김경배 교수인데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보유자다. 지난 11월 10일 제자들이 '늦가을의 풍류'라는 이름으로 정년퇴임 기념봉정음악회를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열은 바 있으며, 신나라(회장 김기순)을 통해 그의 호를 딴 '소하가곡'이란 2장의 음반을 냈다.
이 음반엔 교과서에 실려있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남구만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란 노랫말의 남창가곡 평조 '초수대엽(初數大葉, 동창이)'으로 시작하여 평조 '삼수대엽', 평조 '소용이', 평조 '우락', 평조 '언락', 반수반계 '편락', 계면조 초수대엽', 계면조 '태평가' 따위가 실렸다. 또 여기엔 일반인을 위해 전곡 노랫말을 담은 상세한 해설서까지 곁들여 있다.
서양의 성악인 오페라 아리아는 알아도 우리의 가곡이 있는 줄은 잘 모른다. 그래서 어찌 우리 문화를 자랑스럽다 할 수 있을까? 올해가 가기 전에 조상의 숨결이 스며있는 아름다운 가곡 한 곡 들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나는 김경배 선생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행복에 같이 도취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 어떻게 가곡을 하게 되었나?
"'국악사양성소(현재 국악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이병성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보허자'를 불러주시는데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무게와 그윽한 가락에 반했다. 긴 호흡의 느짓한 우리 가락이 그렇게 나의 어린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가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이병성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는데 방송국에 가서 부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칭찬을 받아 나도 더욱 좋아졌고, 선생님도 늘 내게 연주를 시켰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고등학교 은사님의 한 분인 이주환 선생님께서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예능보유자이신 김월하 선생님을 나의 양모로 맺어주신 것이다. 나는 김월하 선생님을 어머니로 모시면서 가곡을 배웠다. 그분은 가곡, 가사 외에 시조도 기막히게 부르셨는데 그에 반해 나는 미친 듯이 가곡을 공부하고 불렀다. 김월하 선생님에게서 나는 여창 목 쓰는 것도 배울 수 있었는데 선생님을 어머니로 모셨던 것이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 정가 인생 50년을 돌아본다면?
"태릉에 살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성악은 울림이 와서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산, 들, 개울이 있는 곳이면 좋은 연습 장소이다. 한번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했던 불암산에서 연습하던 중 밤에 갑자기 시꺼먼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 시끄럽다며 소리를 못하게 했다. 다음날 낮에 가보니 어느 틈엔가 비닐하우스가 생긴 것이 아닌가. 밤 10시까지 연습을 했는데 그들도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태릉 위 불암산 골짜기는 봄이 가장 좋았는데 개울가에 앉아서 꽃을 보고, 새소리 들어가며 연습을 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초막에 들어가서 연습하곤 했는데 하루종일 소리해도 목이 아프지 않았다. 그때 전곡을 다 외웠다. 그 마을에선 내가 노래부르고 다니는 사람으로 유명했었다. 정가인생 50년은 내게 참 행복한 삶이었다."
옛날 불암산 시절을 회상하며,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행복바이러스가 전염된 듯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 왔다.
- 가곡을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한다. 그에 대해 조언을 들려준다면?
"판소리의 경우처럼 노랫말을 알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가곡은 모음을 길게 늘여 부르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맨 먼저 남창가곡 '소용이'를 먼저 들어라. 다음으로, 언락, 편락, 편수대엽, 언편 등의 순서로 들어가면 훨씬 귀에 잘 들어올 것이다. 자주 듣다 보면 분명 가곡의 매력이 가슴 속에 전해 올 것임을 강조한다."
- 그렇다면 '소용이'를 음반의 처음에 오게 하는 등으로 쉽게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통음악에서는 정해져 있는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수백 년 전해져오는 전통을 그 누구도 깨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음악을 들어야 하는 대중들을 위한다면 순서를 바꾸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제자들과 함께하는 음반을 만들 때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는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한다. 또 무엇이든 개혁이 필요해도 단번에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대신 나는 앞으로 제자들에게 '내가 힘이 되어줄게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라고 하며 밀어주고 싶다."
- 사실 가곡, 가사, 시조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쉽게 설명한다면?
"한마디로 서양음악을 예로 들어 말한다면 가곡은 클래식이고, 가사는 세미클래식이다. 또 가곡은 순수음악 중 순수이고, 조직적, 과학적이며, 꼭 반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완만한 느낌, 차분하고, 웅장하며, 깨끗한 소리이다. 이에 비해 가사는 대중음악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고, 관악 반주만 한다. 또 장형시조를 올리기도 하는데 긴 것은 15분이 되기도 하고, 가곡에 비해 노랫말을 알아듣기가 쉽다. 시조는 완전 정형시로 초중종장만 있어서 짧고 길어야 5분이며, 음이 단순하다."
분명하고 자상한 설명에 나는 감탄한다. 정가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동안 정확하게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명쾌할 수가 있을까?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된 까닭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지금 대구 팔공산 자락에 땅을 사서 작은 집을 짓고 있는데 여기서 소리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삶을 살고 싶다. 또 한 가지는 김월하 선생님의 꿈이었던 정가 교육을 위해 연수원을 짓는 일이다. 두 가지 모두 곧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문화재위원회와 정부 그리고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너무 집착하는 듯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재를 쉽게 생각하고, 가치를 작게 인정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에 비하면 무형문화재는 국가적으로 원형을 보존, 전승하지 않으면 맥이 끊길 우려가 있다. 그리고 관은 대중예술에만 치우치고,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인기에만 영합하지 말고, 감정을 자제시키고, 성정을 바로잡아주는 순수예술에도 관심을 둬주었으면 한다. 경제논리로만 다가서지 말고, 대중예술과의 조화를 이루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